3. 커다란 로봇(1)
“이 로봇은 뭐냐?”
“혹시 박사님이 보낸 로봇이냐?”
사람들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대짝이를 보고 한 마디씩 했다.
“박사님을 찾아온 손님입니다.”
“그래...”
다들 대짝이의 우람한 덩치에 조금 위축된 것 같았다. 하지만 박사님과 오래 생활하면서 당황스러운 일을 많이 보아온 사람들이라 별다른 동요는 하지 않았다.
오늘 손님들이 찾아온 이유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어제 긴 아저씨에게 설계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나 보다. 박사님의 소식보다 먼저 설계도를 찾았다.
마을에서 솜씨 좀 있다는 아저씨 세명이 나란히 거실에 앉았다. 마을의 큰 공사나 박사님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앞장서서 도움을 주는 분들 이어서 그리 어색한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들 비장한 표정이었다.
“여기 몇 장 찾았어요.”
나는 어제 찾은 설계도를 꺼냈다. 다들 멍청한 눈으로 종이를 노려보았다. 설계도라는 것이 숫자와 기호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나도 기본적인 숫자 말고는 암호같이 써놓은 박사님의 글씨를 읽을 수 없었다.
“뭐가 어제 터진 과일선별기냐?”
“여기 세 번째요.”
필요한 기계는 한두 개가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어제의 폭발 때문에 다들 눈이 한 곳으로 갔다.
“긴 아저씨는 댐에 가셨나요?”
“응, 어제 일도 있고, 영 찜찜해.”
“깡통아, 여기 있는 글씨는 무슨 뜻이냐?”
“흐음... 여기 있는 볼트의 치수가 아닐까요?”
설계도를 가운데 두고 온갖 것을 추측해댔다. 이렇게 수리가 가능할까? 걱정이 앞섰다.
“깡통아.”
다음에 도착한 사람은 긴 아저씨의 친구이자 마을의 수다쟁이 베베 아줌마다. 베베 아가씨라고 불러달라고 매번 당부하지만, 척 박사님도 긴 아저씨도 촌장님도 아줌마라고 부른다. 베베 아줌마는 작년에 만들어 놓고 몇 번 사용하지 않아서 사용법이 가물가물한 이동용 급수기를 들고 왔다.
“이런 기계는 고장이 나도 폭발하지 않아요. 전력도 없고, 직접 돌려서 물을 끌어올리는 거잖아요.”
“그래? 아, 너무 걱정돼서 건드릴 수가 있어야지. 안 되는 건 맞지?”
“네, 이 작은 수동 모터에 기름칠 정도만 해주면 될 것 같아요.”
“그래? 지금 해줄 수 있는 거야?”
“저는 해드릴 수 없어요.”
내 손을 보아라. 작은 모터에 기름칠을 할 수 있는 섬세함이 있다면 내 모습부터 고치지 않았겠는가.
“저기 아저씨들에게 부탁해 보세요.”
“할 일이 많을 텐데, 당장 쓰지도 않을 것을...”
생각해보니 그렇다. 잠깐, 그럼 내겐 할 일이 없어서 이런저런 일을 부탁하는 건가?
“할 수 없지, 여기 두고 갈 테니 나중에 조금만 손봐줘. 박사님이나 긴이 돌아오면 말이야.”
“네.”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대짝이는 참 늠름하구나. 덩치도 크고, 과묵하니 믿음직스러운걸.”
내가 거실과 창고에서 설계도를 몇 장 더 찾아올 때까지 베베 아줌마는 자리를 뜨지 않고 있었다. 아저씨들에게 정말 부탁할 일이 있나 했지만 아저씨들이 설계도를 들고 집을 나설 때도 따라나서지 않았다.
“박사님을 찾아왔다고?”
집구석구석을 살피던 베베 아줌마가 대짝이에게 말을 건넸다. 아줌마의 목적은 아저씨들이 아니었나 보다.
“네에...”
나에겐 틈만 나면 길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아줌마가 웬일인지 대짝이에게 상냥했다. 느린 대짝이의 말투에 토씨 하나 달지 않고 싱글벙글 웃어댔다.
“그러면 박사님이 올 때까지 여기 있을 거니?”
“네...”
“그럼 오늘 하루만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아니, 그냥 일을 시킬 욕심이었구나.
“깡통아, 너도 한가하니 같이 가자.”
“저는 할 일이...”
쓰지도 않는 급수기를 들고 온 것도 날 부르러 온 것이군. 우리는 베베 아줌마의 기에 밀려 아줌마네 정원으로 끌려갔다.
<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