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디자인, 평범해 보이는 오늘 하루도
왜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하게 될까? 닌텐도에서 '위' 기획 담당자였던 다마키 신이치로가 체험 디자인에 대하여 쓴 책. 회사에서 게임 개발을 준비하게 되면서 동료분이 추천해준 책인데, 게임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통용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사람들은 가설을 세우고 이에 따라 시행해본 후, 나의 가설이 맞았을 때 환희를 느낀다. 이는 과학적인 가설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릴 때 두 발 자전거를 처음으로 탈 수 있게 되었을 때 자발적 체험으로 '진리'를 터득하게 되었을 때의 일련의 과정을 가리킨다. 그리고 게임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게임 속에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이 길을 갈지 저 길을 갈지 선택을 한 다음 나의 가설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유저는 기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게임에서 이러한 직감 디자인으로 짧은 기간 내에 잦은 성공으로 유저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고 계속 플레이하게 유도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유저가 본인의 가설대로 일이 돌아간다고 해서 지속적인 즐거움 만을 느끼진 못할 것이다. 예측 가능한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면 금방 지루함을 느끼고 피로 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니까. 이때 유저가 틀린 가설을 세우게 하고 (단 유저는 가설이 옳다고 확인하고) 이를 시행했을 때 가설이 오류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놀라움을 줄 수 있다. 여기서 효과적인 것은 '터부의 모티프'를 활용하는 것이다. 터부의 모티프로는 본능적으로 원하는 성, 음식, 재물, 인정의 욕구가 있고 외면하고 싶은 것으로는 불결함, 폭력, 혼란, 죽음이 있다. 사행심과 우연의 모티프를 활용한 카지노일 수도 있고 사적인 부분을 드러내는 터부의 모티프도 있다. 이와 같은 모티프를 활용하여 예상이 빗나가도록 하여 피로와 싫증을 불식시킨다.
게임은 생활필수품이 아니기 때문에 직감 디자인에 놀람 디자인을 적절히 배치하여 유저가 지속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아무리 긴 시간 플레이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 해도, 도대체 게임을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에 매료된다. 샤리야르도 천일야화를 듣기 위해 세헤라자데를 살려두지 않았는가. 게다가 게임은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 아닌 내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입장이 된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감상을 하며 정보를 얻다가도, 나만의 방식으로 조작하여 정보를 얻고, 그리고 전투에서 능동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유저가 스스로 이야기를 이끌게 만들고, 그 와중에 수집과 반복, 선택과 재량, 번의와 공감을 통해 유저를 성장시키고, 종국에는 유저 자신의 의지로 운명을 개척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하여 이러한 체험을 통한 성장을 깨닫게 한다. 영웅의 이야기를 다룬 신화에서 대부분의 영웅이 집으로 돌아가듯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가 체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게임을 하는 이유를 제공해준다.
작가 다마키 신이치로가 이야기하는 체험 디자인은 비단 게임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통용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길을 갈 때도, 어떤 선택을 할 때에도 직감 디자인처럼 수많은 시행착오와 연습을 통해 성장을 하고, 때로는 시련과 슬럼프, 또는 가끔씩 찾아오는 행운과 기회로 놀람을 느껴 어떨 때는 우울감을, 어떨 때는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삶을 지속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나의 인생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쭉 따라가며 어느새 뒤를 돌아보면 성장해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니 말이다. 평범해 보이는 오늘 하루도 나의 가설이 맞아떨어진 연습하는 날들의 하루이고, 우울의 늪에 빠진 오늘 하루는 어쩌다 발생한, 그리고 곧 지나갈 이벤트이며, 결국에는 나의 여러 선택과 번의와 반복으로 한층 더 나아진 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