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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르도 Jun 16. 2020

아바나의 첫인상은 꽃무늬 망사 스타킹

늦게 나오는 캐리어 그리고 공항 여직원, 택시 잡기

작고 시끄러웠던 비행기에서 내려 처음 마주한 아바나 공항은 굉장히 어두운 편이었다. 천장에 달린 형광등의 밝기는 안개 시트로 감싼 듯 살짝 어두운 편이었다. 환하게 빛나는게 아니라 어떤 가림막에 한번 걸린 듯한 막혀진 밝음이랄까. 조명 커버를 청소하지 않는 건지, 원래 조명이 약한 건지는 알 수 없다. 한 달간 지내면서 알게 되었는데, 쿠바의 모든 시설 내 조명은 약간씩 어둡다. 휘황찬란한 자본주의의 광채에서 한 발짝 멀어진 느낌이다. 화려하고 웅장한 규모에 조명도 밝은 인천 공항과 대비되는 아바나 공항이다. 살짝 어두운 조명 아래 우리는 쿠바에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입국 수속은 간단했다. 멕시코 시티에서 비행기를 탑승하기 전에 구매했던 쿠바 입국 비자만 있으면 된다. 이 비자는 체류 허가를 증명하는 유일한 서류이므로 분실하면 안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입국 비자의 구매 가격은 쿠바에 도착하는 방법에 따라 다르다. 배를 타고 왔을 때, 멕시코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을 때, 캐나다에서, 미국에서 비행기를 탔을 때 저마다 가격이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쿠바의 출입국 시스템은 아날로그적이다. 모든 절차는 수동이며 사람이 담당하고 안내한다. 자동화는 없다. 여권에 붙은 이 종이가 내 체류 허가를 증명하는 유일한 단서다.


출입국 심사는 간단하고 빠르게 마쳤으나 캐리어는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30분 넘게 기다리고 있자니 캐리어 이동마저 손수 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된다. 기다리면서 이리저리 둘러봤다. 도대체 컨베이어 벨트 뒤에는 어떻게 돌아가나 싶어서 찾아봤는데, 정말 사람이 모두 하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나온 캐리어를 모두 사람들이 옮기고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렸다. 캐리어도 한꺼번에 오는게 아니라 왔다가 다시 조금 기다리고 또 비행기에서 조금 옮겨왔다. 그러니 한참 걸리지. 가방이 올 때만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갔다. 캐리어는 조금 나왔다가 전혀 나오지 않다가를 반복했다.


캐리어를 기다리는 동안 처음 보는 쿠바 사람들을 구경했다. 멕시코나 타국에서 돌아오는 쿠바 여행객 혹은 비즈니스맨들 그리고 쿠바 공항 직원들 모두 신기했다. 쿠바인은 대체로 햇빛에 잔뜩 그을린 구릿빛 피였고, 대체로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무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던 중 쿠바 공항 직원 중 어느 여자 한 분의 다리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무료하다고 남의 다리를 쳐다보는 사람은 아니다. 공항 직원 유니폼을 입고 있던 그는 화려한 꽃무늬를 자랑하는 망사 스타킹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외설적인 생각이 들기보다는 보수적일 것 같던 사회주의 체제의 공무원이 화려한 꽃무늬 망사 스타킹을 신고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신기했다. 이 꽃무늬 망사 스타킹이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어서와, 여기가 바로 쿠바야!'

낭만적인 카리브해의 섬 국가이자 몇 안 남은 사회주의 체제의 국가인 쿠바는 어둡고 무료한 공항 속에서 빛나는 망사 꽃무늬 스타킹과 같다. 사회주의 체제 하에 고리타분하고 허름해 보이지만 카리브해의 열정과 낭만은 곳곳에 숨어서 뽐내고 있었다. 일률적인 공항 직원 유니폼 아래 그물망의 장미가 새침하게 뽐내고 있었다.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모두 마치고 1시간 가까이 기다려 캐리어를 찾고 드디어 게이트로 나갔다. 우리 까사의 주인인 '르네'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사진으로 확인하고, 이름을 알던 그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르네는 머리는 거의 까져서 대머리였고 중년에 접어들기 시작한 청년 같았다. 눈동자는 친절했고 밝게 빛났다. 우리에게 이야기할 때는 친절한 미소를 머금었고, 손동작은 요란했다. 나는 쿠바 현금이 필요해서 공항에서 일부 환전을 했고 르네는 기다렸다. 그리고 직접 택시를 잡아줬고 우리는 함께 택시를 타고 한 달간 머무를 숙소로 향했다.


우리는 미리 에어비앤비 메시지를 통해 쿠바에 도착하기 전 공항 픽업을 사전에 요청했지만 이런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은 대다수 여행객은 아바나에 도착하자마자 불쾌함과 진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외국인 여행자에게 아바나는 삐끼와 협상의 도시다. 게이트를 나서자마자 택시 잡기에 온 신경을 써야 한다. 짐을 찾고 돌아다니면 기사들이 말을 건다. 택시마다 부르는 값이 다르다. 25 쿡에 올드 아바나와 베다도를 가는가 하면 50 쿡도 부른다. 어느 블로그에서 어떤 여행객은 12 쿡이라는 전설적인 가격으로 택시를 잡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니 외국인 여행자는 쿠바인에게 뒷통수 맞지 않기 위해 첫날 도착하자마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여기서 쿡은 쿠바의 외국인 전용 화폐로, 미화 1달러와 동일한 가치를 지녔다)


까사 주인 르네는 시원하게 흥정하며 택시를 잡아주었고 우리는 25 쿡을 지불했다. 놀랍게도 쿠바에서 처음 탄 그 택시는 아우디 A4였다. 오래된 올드카도 아니었고 적당히 연식이 된 잘 나가는 최근 년식의 꽤 좋은 중고차 수준이었다. 한국에서도 몇 번 타보지 못한 아우디를 쿠바에서 택시로 탔다. 쿠바에서 아우디 택시라니 상상도 못했다. 조용하고 빠르게 달리는 와중에 편안한 승차감 제공해주던 택시에에서 창 밖으로 어두운 밤거리를 구경하며 앞으로의 쿠바 생활을 기대했다.


공항은 그 국가의 얼굴이자 첫인상이기도 하다. 도착한 날에는 몰랐지만 지난 아바나 생활을 돌이켜보면서 알 수 있었다. 공항 공무원의 과감하고 아름답던 꽃무늬 망사 스타킹이라던가, 세상에서 제일 느린 캐리어 수송, 택시 삐끼와 가격 협상, 바가지, 이 모든 것들은 마치 아바나라는 대형 마트의 시식 코너 같았다. 아바나 공항에서 나는 쿠바를 조금 맛볼 수 있었다.


더 많은 에피소드는 쿠바 여행 에세이 '스타벅스 때문에 쿠바에 갔지 뭐야'를 구매하시면 읽으실 수 있습니다.


에세이가 아닌 쿠바 여행 정보글은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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