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시넥의 책 '인피니트 게임'을 읽고 쓴 일기
"대학 가면 다 된다. 지금 공부나 열심히 해라."
대한민국 젊은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말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네 인생이 대학 가면 끝이던가요?
아직 짧은 30년 넘는 내 인생에서 큰 변화를 주는 경험들이 있었는데 그중 2개를 꼽으라면 '유럽 교환학생'과 '미국 인턴생활'이다. 네덜란드 교환학생을 통해 내 또래의 다른 나라 젊은이들과 소통하며 생각이 바뀌었고, 미국 인턴십을 통해 수많은 미국 직장인을 만나며 내 커리어 패스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 외국인 친구를 사귈 때면 "넌 왜 이 전공을 선택했어?"라는 질문을 하곤 했다. 저마다 다른 이유였다. 좋아서, 혹은 궁금해서, 혹은 멋져 보여서, 혹은 취업하려고, 혹은 아무 생각 없음 등 다양했다. 그런데 단 한 명도 입시 결과에 따라 맞춰 이 대학에 오기 위해서라는 말을 한 친구가 없었다. 단 한 명도 없었다. 물론 대한민국 입시 제도와 유럽 입시 제도는 수박과 복숭아처럼 전혀 다른 점을 알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적어도 남과 비교하거나, 외부 요소에 타협해서 전공을 선택한 학생은 많지 않구나. 어쩌면 우리나라만, 우리만 이런 선택을 하고 사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인턴 생활을 하며 다양한 직업들을 볼 수 있었다. 떠오르는 핫한 도시 텍사스의 오스틴(현재 테슬라 본사 위치)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스타트업 창업자나 IT 기업 종사자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정말 신선한 충격을 준 자기 직업소개는 'Self-Employeed'라는 표현이었다. 비즈니스 미팅이나 행사에 가면 은근히 많이 볼 수 있던 직업이었는데 처음에는 약간 회의적으로 '백수를 좋게 말하는 거겠지'라고 아니꼽게 생각했던 나였다. 한국 나이로 갓 26살, 만 24살의 대한민국 대졸 예정자에게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옵션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고용한다고? 어떻게? 그리고 또 하나 신기한 점은 생각보다 대기업/글로벌 기업 타이틀을 물어보거나 추앙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부분이었다.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되었냐고 물어보면 저마다 다르지만 보통 "그냥 하고 싶어서 하다 보니 지금까지 되었네요." 혹은 "인턴 활동을 하면서 나에게 맞는 혹은 맞지 않는 포지션을 가리면서 선택했어요."라는 대답을 자주 들었다.
물론 내 경험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도 알고 있다. 유럽에서도 명문대를 가고 싶고, 최고로 삼는 사람들이 많을 수 있으며, 미국에서도 '대기업, 글로벌 기업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난 위 두 가지 경험을 통해 운 좋게도 '내가 상상도 못 한 다른 경우의 수'가 존재할 수 있다는 고마운 충격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모두가 저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잘못되었어가 아니라, 대한민국 일반 대학생이 생각하는 틀을 벗어난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말이었다.
어쩌면 어릴 적 나는 인생을 하나의 승부로 보았던 것 같다. 주변을 볼 때 여러 가지 잣대를 통해 승리자/패배자로 나누어 판단했다. 좋은 대학을 간 사람은 승리자, 아닌 사람은 패배자. 대기업에 취업을 한 사람은 승리자, 아닌 사람은 패배자 등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건 정말 잘못된 생각이었다. 인생은 한판 승부가 아니다. 무한 게임이다. 게임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대학 가면 승리, 끝! 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지금 당장 승리한 것처럼 보여 축하 팡파르가 울리고, 시상대에 올라간 기분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상대는 없고, 팡파르도 들리지 않는다. 다시 앞으로 달려야 한다. 얼마나 큰 배신인가. 대학 가면 끝이라며? 대기업에 가면 인생이 그냥 풀리는 줄 알았는데 말이지. 오죽하면 최근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이라는 이야기가 유행했을까? 대기업 다닌다고 가만히 있으면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다. 인생은 무한 게임이니까.
인생을 유한 게임으로만 바라보는 사람은 그릇된 우월성을 갖고 있다. 남들보다 더 우월한 위치에 있어야 하고, 끊임없이 상대방과 비교해서 자신을 평가한다.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지름길이다. 남들보다 더 벌어야 하고, 남들보다 더 좋은 곳에 속해야 하며, 남들과 비교했을 때 꿀리지 않는 삶이란 얼마나 불행한가. 우리나라가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는 것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한다. 유한 게임에 참여한다면 한 번의 실패로 나는 패배자로 느껴진다거나, 아무리 치열하게 해 봤자 결국 허탈하다는 감정이 솟구치기 때문이다. 유한 게임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은 끝내 허탈하다. 유한게임 속 사람은 스스로 대학을 선택하지도, 전공을 선택하지도, 직업을 선택하지도, 배우자를 선택하지도 못한다.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닌 타인을 이기기 위해 선택하기 때문이다.
인피니트 게임을 쓴 사이먼 스넥도 인터뷰에서 말했다.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인생도 무한 게임이며, 자신은 죽을 때까지 무한 긍정주의자로서 이에 임하겠다고 말이다.
무한 게임은 승패가 중요하지 않다. 인생과 비즈니스에서 영원한 패배자와 승리자는 없다. 그리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내 인생의 대의명분이 중요하다. 사회를 이롭게 할 수 있는 건강한 대의명분을 세우고, 이를 지속해서 실천한다. 그리고 긍정적인 마인드와 함께 유연한 자세도 필수다. 인생에서는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예측하지 못한 변수나 리스크가 오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하되 먼저 세웠던 대의명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책 '인피니트 게임'에서도 한때 멋진 대의명분으로 시대를 풍미하던 기업이 이를 잊고, 유한 게임식 운영을 하다 시대와 함께 사라진 사례를 볼 수 있다.
(무한 게임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기업들의 다양한 사례는 책에서 볼 수 있다)
내 글쓰기와 인생도 무한 게임으로 생각해볼 요량이다. 한때 글을 쓰고 싶지만 실패할까 봐 두려워 차마 시작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 나도 밀란 쿤데라처럼 글을 잘 쓰고 싶어라는 생각을 하니 차마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어렵게 글을 쓰기 시작해도, 너무 형편없어 보여 스스로 패배자로 느껴지고, 글을 쓸 깜냥이 되지 못한다고 좌절한 적도 많았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불안하다. 더 잘 쓰고 싶다. 책을 출간하면 뭐라도 달라질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졸저 '스타벅스 때문에 쿠바에 갔지 뭐야'를 출간하고, 꿈에 그리던 여행 에세이 작가가 되어보았지만 결국 그 순간뿐이었다. 결국 글쓰기도 무한 게임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 스스로 건강하게 지속하며,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긍정적으로 임해야 한다. 승리와 패배는 없다. '좋은 글을 쓰겠다'는 대의명분을 잊지 않고 게임에 계속 임하냐가 중요하다. 유한 게임의 마인드로 누구보다 더 잘 쓰고, 내가 이것만 다 쓰고, 책을 이렇게만 내면 승리할 것이란 생각은 버려야겠다.
일과 글쓰기, 삶 모두 내가 살아있는 한 지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는동안 끊임없이 즐기는 수밖에 :)
"자신이 죽은 뒤 묘비명에 은행 계좌의 돈 액수가 적히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다른 사람에 무엇을 베푸는 사람이었는지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헌신적인 어머니, 다정한 아버지, 의리 있는 친구로 추억되기를 바란다. 타인에게 베푸는 인생은 게임에 득이 된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무한 게임에서 단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