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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an 11. 2021

제주도 여행기#3

올레길 19코스

광치기 해변에서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 일어나 화장실에 들렀다가 편의점에서 간단한 요기를 샀습니다.

오늘의 일정은 함덕해수욕장과 서우봉을 지나는 올레 19코스 들판길, 바닷길, 산길 모두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매일 1코스씩 걸어온 탓에 피로가 몰려옵니다. 시작점은 조천 만세동산 주차장입니다.

하르방 할아버지도 마스크를 쓰고 있다.

사실 이때부터는 별생각 없이 계속 걸었습니다. 체력적으로 한계가 온 것도 있지만 걸었던 길 중 가장 긴 19.4km의 거리가 부담됐습니다. 분명 너무나 아름다운 길이었지만 내 마음이 어지러웠던 탓인지 기억에 가장 남지 않는 코스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함덕해수욕장 스타벅스에서 마셨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최고였고, 관광객들 사이에서 산처럼 거대한 배낭을 메고 얼굴이 까맣게 탄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텐션을 올리니 여행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봅니다. 이때 나만의 꿀팁은 핸드폰이 아닌 사진기로 여자 친구를 찍고 있는 30대 남자를 공략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여자 친구를 이쁘게 찍어주기 위해 실전으로 사진에 통달한 실전 파이터들입니다. 1분 정도 그러한 사람을 찾아봤고 내가 둘러보는 것을 느낀 것인지 나와 눈이 딱 마주치는 분에게 정중히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분은 '그럼 그렇지'하는 표정으로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남성분은 구도까지 잡아주시며 전투적으로 사진에 대한 책임감을 표현했습니다.

이 사진은 그 남성분과 나의 커뮤니케이션의 합작물

이렇게 다른 사람이 찍어주면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뼈저리게 느낍니다. 

함덕해수욕장을 지나고 서우봉을 지나면 한참 숲길을 만나게 됩니다. 이 숲을 헤치고 가면 동북리 마을운동장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너무 신비롭습니다. 너무 신비로워서 카메라를 꺼내진 못했나 보다.

동북리 마을운동장을 지날 때쯤에는 사람이 너무 없어서 조금 무섭습니다. 점심도 먹지 못하고 걸었습니다. 왜냐면 배가 고플 때쯤에는 식당이 나올 리 만무한 곳을 걷고 있었고 그런 인적 드문 길은 한참 계속됐습니다. 19코스를 가실 분들은 그냥 함덕해수욕장에서 식사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그렇게 주린 배를 부여잡고 걷다 보면 김녕 농로가 나옵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제주의 농로를 걸으며 여행이 끝나감을 느꼈습니다. 19코스를 완주하자마자 눈에 보이는 식당으로 가 허겁지겁 식사를 했습니다. 물회를 먹었는데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먹었습니다.


3일 동안 땀 흘리고 샤워를 못하다 보니 너무 찝찝했습니다. 제주에 온 이후로 버스만 탔는데 충동적으로 눈 앞에 보이는 택시를 타고 평대리에 있는 홀라인으로 달렸습니다. 

너무 예쁜 평대 홀라인, 캠퍼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신 분이 운영한다.

홀라인은 캠퍼들을 위해 샤워, 라운지 시설 이용, 음료, 호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입니다. 캠핑용품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그렇게 홀라인에 도착해서 제 인생 샤워를 하고 라운지에 누워 바다를 바라봅니다.

액자가 걸려 있는 듯한 평대리 해변의 에메랄드빛 해변

라운지에서 쉬다 보면 자연스레 다른 백패커들과 대화를 하게 되고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다 보면 그동안의 피로에 잠이 솔솔 옵니다.

때마침 제주도로 여행 와있다는 친구를 평대리 해변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긴 고민하지 않고 오늘의 박지를 평대리로 골랐습니다. 조금 쉬다가 저의 텐트로 치킨을 시켜서 친구와 함께 먹었습니다. 돗자리에 앉아 바다를 보며 먹는 교촌치킨은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쉬운 마음과 지친 몸을 이끌고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와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싣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공허한 편입니다. 그 공허함을 여행으로 채워지길 바라며 3박 3일 동안 걸었습니다. 그 공허함은 채워졌을까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제 혼자 여행하는 방법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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