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불친절한 글을 쓰렵니다 (웨스트월드를 보고 나서)
넥플릭스를 끝내고 오랜만에 왓챠를 구독했다. 왕좌의 게임을 제작한 HBO에서 만들었다길래 'Westworld (웨스트 월드)' 1화를 클릭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시즌 1을 다 봤고 약간의 시력을 잃었다.(미친 몇 시간을 본 거야)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을 오랜만에 만났다. 요새 삶이 팍팍해 즉흥적이고 소모적인 것만 봤다. (가령 다른 사람이 라면을 먹는 걸 구경한다던가) 드라마를 보며 오랜만에 철학적인 질문들을 스스로 하게 만들었고 깨달았으며 허무했다.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를 읽고 나서, 최재천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나서, 영화 '메트릭스'를 보고 나서, 셸리 케이건 교수님의 '죽음'이라는 강의를 보고 나서 느꼈던 허무감과 비슷했다.
쉽게 말해 사람은 특별하지 않다.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이 컴퓨터와 비슷하다. 최근 내가 하고 있는 고민과 상호작용을 일으켰기에 이번의 허무감은 꽤 큰 무게로 다가왔다.
과거의 많은 철학자들이 고민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학교에서 4년 동안 배웠지만 졸업을 하고 나서도 답을 내리지 못했다. 동물과 인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에 대해 토론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철학 수업을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시험조차 질문 하나가 다였다. (처음에는 흰 여백에 교수님에게 편지를 썼다) 수학처럼 정답이 있지 않다.
오랜 시간 끝에 드디어 위의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게 됐다. 계속 인간은 동물과 그리고 기계와 무엇이 다를까에 대해서 집중을 했기에 답을 찾지 못했다. 인간은 다르지 않다. DNA를 운반하는 기계에 불과하고 DNA에 적힌 코드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죽음조차 두렵고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고 영혼이 잔존해 있을 거 같지만 마치 라디오가 고장 난 것과 동일한 현상이다. 더 이상 생명을 유지시키는 코드가 작동하지 않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없다.
(내 생각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려고 하는 글이 아니니 논리적 비약이 있다. 혹시나 만약 왜 이 답이 나왔을까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아까 내가 말한 최재천 교수님의 강의 /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 / 셸리 케이건 교수님의 '죽음'을 참고하길 바란다.)
이 답을 찾고 나니 파도처럼 순간의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냥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 걸이라고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당이 딸려서 초콜릿을 먹고 있었는데 그 초콜릿이 눈에 들어왔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혀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면 의미가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단순한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더 중요한 것에 집중을 할 수 있겠구나.
That’s the choice that Neo faces in the movie The Matrix. The rebel leader Morpheus tells him that if he takes the blue pill, “the story ends.” Neo will wake up in his bed and believe whatever he wants to believe. But if he takes the red pill, Morpheus tells Neo, “you stay in Wonderland and I show you how deep the rabbit hole goes.” - 영화 메트릭스에서 빨간약과 파란 약을 선택하는 순간
우연히 인터넷을 하다가 해킹 대회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각 팀이 서로 공격과 방어의 역할을 번갈아가며 어떤 팀이 더 실력이 높은지 가늠을 하는 대회였다. 거기서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는데 (매우 예전에 봤던 거라 누가 말했는지 어떤 대회였는지 명확하지 않다)
공격은 매우 쉽지만 방어는 매우 어렵다. 공격은 취약점을 하나만 찾으면 성공하지만 방어는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두고 전부 방어를 해야 한다. 취약한 부분 한 곳만 뚫리면 실패하는 게 방어다.
내 손에 들고 있던 초콜릿도 똑같았다. 손가락 전체로 누르면 부서지지 않지만 치아로 누르면 바로 부서진다. (바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카카오 72%로 실험해봐도 된다)
초콜릿 몇 개 씹어먹고 나니 이 허무감이 잊혔다. 어차피 전부 의미가 없다면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야겠다.
나는 이 단단한 초콜릿을 부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