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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Jan 02. 2024

매번 노력만 하다 끝나는 너에게

'티처스'를 보며 어른도 배운다

영어, 수학 일타강사가
일대일 맞춤으로
성적을 올릴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영어 조정식, 수학 정승제. 이름 자체가 브랜드인 일타강사의 출연만으로도 '성적을 부탁해 - 티처스(이하 티처스)'는 학부모 입장에서 확 구미가 당기는 프로그램이다. 아직 아이가 초등학생이지만 세월이 흐르는 속도를 보면 수능 고사장 안에 아이를 들여보내고 교문 앞에서 오들오들 떨며 기도를 해야 하는 날이 금방 올 것 같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불안감은 부모의 조급함을 키우고 이런 성적 관련 프로그램을 찾아보게 만든다.


'티처스'에는 기초부터 부족한 학생, 상위권이지만 더 높은 곳을 향하고자 하는 학생, 예전에는 우등생이었지만 순식간에 하위권으로 떨어진 학생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과 그 부모들이 출연한다. 학생과 부모의 사연을 보며 함께 속이 답답했다가, 아이들이 짠하기도 했다가, 또 학습태도가 훌륭한 학생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도 들기도 하는 등 이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감정 이입을 많이 한다.


그중에서도 2회에 출연했던 남학생의 사연이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데, 그 학생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리석을 정도로 성실하고, 그저 성실하기만 해 어리석기 그지없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방송에 나온 학생은 누가 봐도 하루종일 열심히 생활한다. 아침 일찍 1등으로 등교해 수업 시작 전 자율학습, 수업시간에도 열중, 귀가 후 밤늦게까지 또 집에서 공부를 한다. 연세대를 목표로 한다는 이 학생은 공부하다 잠이 오면 밖에 나가 뛰면서까지 졸음을 쫓아가며 학습 의욕을 불태운다. 코피까지 쏟아가며 누구보다 성실하게 생활하는 이 학생의 성적은 아이러니하게도 영어, 수학 모두 모두 8등급으로 최하위권이다.


예상 밖으로 저조한 학생의 성적이 공개되고 나서 아연실색하는 진행자들만큼 나도 경악을 했다.

저렇게 매일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가 최하위라고?

알고 보니 그 학생은 집안 사정으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습공백이 있었고, 구멍을 메우지 않은 상태로 시간이 흐르다 보니 기본 개념들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본인은 공부한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실제로는 의미 없는 활동의 반복이었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코피를 흘릴 정도로 자신을 혹사시키면서 본인의 성실함을 드러내고자 했던 아이, 열심히 하는 행위 자체에 만족하고 있던 아이를 보며 자꾸만 내 상황과 오버랩이 되어 마음이 시렸다.


나의 생활통지표는 늘 "본 학생은 성실하며..."로 시작했고, 그렇게 학창 시절 내내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성실한 아이'로 지냈다. '성실과 모범'은 내가 가진 무기였고, 선생님들께 인정받기 가장 편한 도구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성실하게 생활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성공하는 줄 알았다. 내 성적에 대한 객관적 분석 없이 그저 나는 늘 착하고 성실한 학생이니까 나 정도면 우등생이라는 착각에 빠져 살았다. 최하위 등급의 성적으로 연세대를 지망한다는 학생의 허황된 목표처럼, 나 역시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은 채 학창 시절을 보낸 것이다.


대학교까지는 그런대로 먹혔던 '성실 빨'은 안타깝게도 사회에 나오며 그 수명을 다했다. 회사라는 곳은 내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실제로 성실하게 업무에 임했다고 해도 좋은 평가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었다.


나는 선생님 말씀 꼬박꼬박 잘 들었던 학창 시절처럼, 상사의 지시를 받으면 항상 마감일 훨씬 전에 밤을 새워가며 업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그 정도는 남의 돈 받는 사람이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었고, 회사는 그보다 더한 플러스알파를 원했다. 인맥을 통해 얻은 타사의 정보, 문제상황에 빠르게 대처하는 순발력 - 항상 나에게는 2프로가 부족했고 안타깝게도 그 2프로는 회사생활에서 98프로의 성실성보다 훨씬 중요한 덕목이었다. 나는 그저 융통성 없고 시키는 일만 성실하게 하는, 어디에나 있는 부속품일 뿐이었다.

 

'티처스'의 학생은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내 준 문제를 다 풀고난 후, 본인이 빨리 풀었다는 걸 선생님이 알아줬으면 해서 계속 선생님 쪽을 바라보며 어필한다. 일타 강사는 이 장면을 보고도 안 좋은 태도라고 지적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 남들을 의식하는 전형적 모습. 나 역시 그랬다. 모범생으로 인정받던 과거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자 나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으며 회사의 동료들이, 상사들이 내 노력을 인정해 줬으면 했다. 가벼운 회의자료 하나도 온갖 신경을 써 완벽히 만들려고 애썼고, 모두들 퇴근한 텅 빈 사무실에 버티고 앉아 야근을 하고 또 했다. 인정받고 싶어서, 성실의 늪에 빠져 나 자신을 갉아먹던 모습들이 그 학생과 너무 비슷했다.




다행히 방송에 나온 학생은 문제의 원인을 찾고 올바른 공부방법을 찾아 제대로 된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비록 의미 없는 공부를 하긴 했지만 성실하게 살아온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서 짧은 기간 내에 성적이 대폭 상승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그 학생이 보낸 시간이 아주 헛되기만 한 건 아니라 다행이다. 밤낮으로 노력한 지난 시간 동안 '엉덩이 힘'으로 불리는 끈기를 얻었으니, 기회가 왔을 때 날아오른 게 아닐까. 나 역시 성실함의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뭐라도 얻었겠지 위로를 해본다.



* 제목 사진 : UnsplashSiora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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