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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Jan 03. 2024

모두가 내게 고마워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백꽃 필 무렵' 여주인공의 소박하고 크나큰 꿈

강하늘, 공효진 주연의 '동백꽃 필 무렵'은 착한 사람들의 순수하고 기분 좋은 사랑 이야기로 큰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다. 공효진이 초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미혼모 '동백'을, 강하늘이 이런 동백을 사랑하는 순박한 시골 경찰 '황용식'을 맡았으며, 주연은 물론 조연, 아역배우까지 탄탄한 연기를 선보이며 따스하면서도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어 냈다.


인기 드라마답게 수많은 명장면과 명대사가 있지만, 내 가슴을 가장 뭉클하게 만들었던 장면은 여주인공 동백(공효진)이 기차역에서 황용식(강하늘)과 나란히 앉아 자신의 바람을 이야기하던 순간이다.  



꿈을 물어보는 용식에게 동백은 “내 꿈은 철도청 공기업 직원"이라고 말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에 당황한 용식은 "동백 씨 은근히 야심가"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거기서 끝났다면 그저 코믹한 장면으로 마무리되었겠지만 동백의 '야심찬 꿈'에는 씁쓸한 이유가 있었다.


동백은 '공기업 직원'이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안정성, 좋은 대우 등의 이유로 그 직업을 갈망하는 게 아니다. 그녀가 일하고 싶은 곳은 번듯한 공기업 사무실이 아니라 본인이 지금 앉아있는 작은 시골 기차역의 분실물 보관소다.


저기선 다들 그 말을 하잖아요.
뭐만 찾아주면 고맙다고, 고맙다고들 하니까.


동백이 분실물 보관소에서 일하고 싶은 이유는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듣고 싶어서였다.


제가 살면서요, 미안하게 됐다는 좀 들어봤거든요.
그런데 아무도 고맙다고는 안 해요.

저 분실물 센터에서는
저분이 최고 천사고 최고 은인이에요.
저렇게 사람들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고맙다고 인사하면
기분이 어떨지 상상도 안 돼요.


어릴 때 엄마에게 버림받고 고아원에서 자라며 미혼모까지 되는 동안 서럽고 억울한 일을 수없이 겪은 동백은 사람들로부터 박대받고 차가운 말을 듣는 데 익숙할 것이다. 살면서 아쉬운 소리를 하거나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나 역시 일할 때 내가 고맙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내가 속한 팀의 특성상 도움을 주는 쪽이 아니라 받아야 하는 쪽이라 내게 연락을 받는 사람들은 보통 썩 유쾌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보통 나의 통화나 메일은 "바쁘신 와중에 죄송하지만..."으로 읍소하며 시작한다. 나의 요청이 누군가에게 폐가 된다는 죄책감을 마음에 항상 깔고 일을 하다 보니, 차라리 좀 귀찮더라도 내가 부탁을 받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자주 생각한다. 


분주한 와중에 누군가 내게 업무 협조를 부탁하고, 나는 잠시 투덜대다가 이내 그 요청을 처리하고, 그럼 상대방은 감사를 표하는 구조라면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더 편할 것 같다고 말이다.


누군가에게 내가 도움을 줬다는 뿌듯함, 그로 인해 나의 존재 가치를 증명받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고.


드라마 말미에 동백은 본인이 운영하는 가게 한쪽에 택배 보관소를 설치하고 동네 사람들의 택배를 대신 받아준다. 비밀리에 택배를 받고 싶은 사람, 집을 종일 비워서 택배 받기 곤란한 사람 등 각자의 사정이 있어 동백의 택배 보관소를 이용하는 이들 모두가 동백이 그토록 듣고 싶던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기분 좋게 돌아선다.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다면 누군가가 진심으로 고마워할 일을 스스로 해야겠지. 공기업 직원은 되지 못했지만 본인 가게에 택배 보관소를 만든 동백이처럼.


아직은 내가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떠오르지 않으니 일단 나부터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많이 표현해야겠다. 귀한 시간을 쪼개어 이렇게 제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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