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송비 Dec 13. 2020

내언니전지현과 나

한동안 극장에 가지 않고 집에서 영화를 보다가 최근 다시 영화관에 가기 시작했다. 영화관에서 역병이 퍼졌다는 말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럴 만하다. 사람이 없다. 지난주에 본 <에듀케이션>은 두 명이 보기 시작해서 끝나고 나니 나 혼자 남아 있었다. 오늘은 7명이 봤다. 영화판이 위기를 잘 넘기길 바란다. 어서 지나가길. 


오랜만에 글을 쓰기로 했다. 글을 꾸준히 써보려고 했지만 언제나 마음 뿐이다. 올해는 특히나 많이 변했다. 나도, 바깥도. 어영부영 송세월하다가 12월을 맞이했다. 이 공간은 영화를 매개로 내 얘기를 쓰는 곳인데, 한동안 정말 할 얘기가 없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중간에 오랜만에 뭔가 쓰고 싶어졌다. 갑자기 할 얘기가 있는 것 같아졌다.


옛날엔 나도 게임을 열심히 했다. 길드를 만들어서 정모도 하고, 동호회 활동하러 서울로 놀러가고 그랬다. 오후에 시작하는 제작발표회를 보기 위해 아침 일찍 가서 줄을 서기도 했다. 잡지도 매달 사서 봤다. 잡지는 꽤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둘씩 버리다가 어느 순간 다 버려지고 사진만 몇장 하드디스크 어딘가에 남아 있다. 아직도 기억나는 10대 시절 다짐 중에 하나는 어른이 되어도 게임을 하겠다는 것이다. 50살까지 돈을 많이 벌어서 그때부터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지금은 돈이 있어도 게임을 열심히 할 것 같진 않다. 일단 재능이 별로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스토리가 확실하고 엔딩이 나오는 게임이 아니면, 대전 액션이나 전략시뮬레이션 같은 건 정말 잘하지 못했다. 요즘 유행하는 AOS나 총쏘는 게임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잘했던 건 리듬게임 정도였는데, 그마저도 발로만 잘하고 손으로 하는 건 잘못했다. 지금은 쿠키런 72렙이라는 게 그나마 어디가서 내밀 수 있는(ㅋㅋ) 전적인 것 같다. 하지만 쿠키런도 결국 소위 말하는 '피지컬'로 하는 게임이라 잘하는 건 아니다. 게임으로는 안 될 사람이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그리워진 것은 커뮤니티이다. 일주일 내내 집에만 있는 것도 흔히 있는 일이 되었고 나간다고 해도 혼자서 여기저기 쏘다니다가 테이크아웃만 잔뜩해서 집에 오는 날들 속에서 20년 묵은 게임 유저들끼리 엠티가서 노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나는 왜 이렇게 되었고 세상은 왜 이렇게 되었나 싶었다. 나도 떼 지어서 노는 거 엄청 좋아하는데. 아니 지금은 시국이 그렇다쳐도, 시국이 끝난다고 떼 지어 놀 수 있는 집단이 남아있나? 그렇지도 않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내가 새삼 역병에 많은 영향을 받았구나 싶다. 이 와중에 그래도 같이 사는 사람이 있고 고양이가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고. 이 시국이 끝나면 다시 커뮤니티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게임 내에서 유명해지는 방법은 지존(요새는 안 쓰는 말이 되어버림)이 되거나 현실에서 다른 유저랑 싸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은 게임회사랑 협상(?)을 해서 유명해지셨다. 게임이 오래되면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일랜시아는 이제 어떻게 될까. 이건 마음 속으로만 정리해두겠다.


일년에 한두 번 정도 들어앉아 게임만 하고 싶은 때가 찾아온다. 그럴 땐 주저없이 하는 편이다. 곧 그만할 것을 알기 때문에. 게임이 삶의 중심이 되는 날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