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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송비 Sep 05. 2021

디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

<디피>의 감상과는 거리가 먼 글입니다. 그냥 내 얘기.



요즘은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다. 왜 그럴까를 생각하다가 브런치에 오게 됐다. 글을 본격적으로 쓰다가 만 시점이 언제인지를 찾아봤다. 코로나였다. 그렇구나... 요즘은 뭘해야 할지,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주말이 찾아오면 뭘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차라리 얼른 월요일이 와서 회사에 갔으면 싶을 때도 있다. (이건 정말이다. 그 정도로 기분이 좋지 않다.) 하고 싶은 게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많은 우선 순위를 제쳐가며 하고 싶은 일은 없다. 그나마 주식으로 인생의 자극을 연명하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이제는 처음처럼 자극적이지 않다. 어쩌다 이렇게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서, 자극이 없어 기분이 불편하게 된 건지.


얼마 전에 MBTI가 ENFP인 분과 둘이서 밥을 먹었다. 정말 신선했다. 아, 이런 캐릭터시구나. 문특의 재재 님이 ENFP이고, 이달소 츄 님도 그렇다. ENFP는 정말 '찐'이다. 다른 건 몰라도 ENFP는 분류가 분명한 것 같다. 어떻게 ENFP 일 수 있지. 신기하다. 같은 생각들을 했다. 최근에 16personalities에서 검사했을 때 ISTP가 나왔다. 그래서 누가 물어보면 ISTP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런데 예전에 검사했을 때 결과가 문득 궁금해서 2018년 초에 나에 대해 만든 자료를 찾아봤는데 놀랍게도 거기에 ENFP라고 쓰여있었다. 아니 뭐라구요? 제가요? 제가 그랬나? 아니, 내가 언제 그랬죠?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 너무 어색하다. 집에서 이런 얘기를 하니, 지금은 집돌이고 그때는 사람모아서 놀러다니지 않았냐는 말을 들었다. 아 그랬네. 허허. 그런 것들을 못해서 기분이 안 좋은 걸까.


넷플릭스에서 <디피>를 봤다. 군대를 갔다와봐서 그 시절을 겹쳐가며 봤다. 화면에서 보여지는 내무 생활은 내가 겪은 것과는 많이 달랐지만, 분명 어딘가엔 실제했을 것이다. 그 시절에도 많은 사건사고가 전파되었고,  그 내용들을 다 합쳐 놓으면 저렇게 될 것 같다. 스스로에게 총을 쏜 후 정말 다행히도 살아남아 회복된 사람이 자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잠시 내가 있던 부대에서 머물렀던 일도 있었다. 외부인과 통화를 해도 아무도 그것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던 것 보면, 뉴스에는 안 나왔거나 나왔어도 별로 비중있는 사건은 아니었을 것 같다. 아마도 피해자가 살아남았기 때문이 아닐까. 대충 십 몇 년 전에 어제 날짜(9/4)로 입대를 했다. 그날은 아는 사람의 생일이기도 하다. 연락을 할까말까, 하다가 하지 않았다. 해도 되는 사이이긴한데, 안 해 버릇하다가 다시 하면 좀 이상한 거 같아서. 다 지나가면 한번 만나야지 생각하고 지나갔다. 


군대에서 전역하자마자 바로 복학을 했는데, 모든 게 너무 어색했다. 중간중간에 휴가를 나왔을 때는 달라졌다는 느낌이 크지 않았는데 막상 나의 위치가 바뀌고 보니 모든 게 너무 크게 다가왔다. 학교 가는 버스를 탔는데 사람들 틈에 있는 내가 너무 어색했다.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것도 어색하고, 이제는 공부 좀 해야지 하는 생각도 어색하고, 그 사이 훌쩍 커져 있는 사람들이 모두 어색했다. 그 학기를 어떻게 다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처음으로 정신과에서 상담도 받았다. 힘들게 학교를 다니면서 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어떠한 결론을 내었다. 나에 대해서. 내 삶을 누르고 있던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서. 그때 인생의 가치관 같은 것이 생겼던 것 같다. 그 전과 후의 나는 많이 다르다.


<나의 아저씨>에서 박동훈이 21살의 이지안을 가리켜 말할 때 '애'라고 하는 걸 보면서, "그래 애지. 21살은 애지. 나는 애새끼였고."라고 생각했다. 군대를 갔다와서까지도 애새끼였다. 조금 더 빨리 컸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과 후회가 크지만, 지나간 세월 이제와서 어쩌겠나싶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보다 분명 많이 컸는데도 지나간 날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는 여전하다. 어떻게 뭘해야 할지 잘 모르고 있는 것도 여전하다. 이렇게 맨날 후회하고 고통받으며 생을 이어나가야 하는 걸까. 인생의 진리를 한번에 깨닫고 '갓생'을 살 수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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