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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k Nov 21. 2021

일은 게임 같은 것

나는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올여름 새로운 환경에서 새 프로젝트를 맡고 지난 1주일간 꽤 강도 높게 일했다. 일요일 근무, 주 3회 야근, 야근한 날은 모두 10시~12시 정도에 퇴근했다. 평소에도 늦게 자는 편이라 다를 것이 있을까 싶었는데 많이 달랐다. 목요일 야근 후, 다음 날 오전  휴가를 냈고 몇 시간을 더 자고 나와 또 야근했다. 야근을 혐오하고 진저리 쳐왔지만 요즘은 괜찮다. 새로운 것을 습득하고 얻어내는 게 있어 손해 보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이게 영원하진 않겠지만 지금은 그렇다. 그리고 나는 현재의 나를 주시하고 적절하게 관리하면 된다. 


약 5개월 전부터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가 있다. 프로젝트는 다르지만 바로 뒷자리, 점심을 같이 먹고 나이나 연차가 비슷해 가깝게 지내고 있다. 인간적으로도 그렇지만 일적으로 배울 점 있는 사람이라 호감을 갖고 있다. 지난주 함께 야근을 하는데, 이 사람은 일을 '재미있어하고, 좋아했다'. 신선했다. 그리고 나도 요즘 일이 재미있다. 나라는 인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성과를 내는 것, 일정을 관리하고 담당자들을 조율하여 최대치의 결과를 낸다. 성취감과 효능감이 있다. 일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성장하는 감각이 생긴다. 통찰력과 여유가 생긴다. 감각이 갈고닦아지는 느낌. 좋은 툴과 교육이 많고 원하는 것은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성장할 기회가 있다. 나를 어떻게 다듬어 나갈 것인가, 선택하고 원하는 대로 실행할 수 있다는 것,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2021년 수없이 되뇐 말, key message는 '내 마음대로 할 거야'였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지만,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충분히 마음대로 할 수 있다. 표현하고 얻어내고 거부당한다면 다음 선택을 하면 된다. 자의대로 사는 것, 무력해지지 않기 위한 필수조건, 외부 입력을 받은 뒤 처리방식은 나의 영역, 이 안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는 것이 생활의 방향과 인간의 기조에 영향을 미친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라, 맑은 정신을 유지하라'. 인풋을 선택하고 아웃풋을 낸다. 생산하는 인간, 그것으로 기본적 재화(돈을 벌고)를 얻고 나를 갈고닦아 나간다. 


금요일 밤 회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야근 저녁을 먹고 회사에 돌아와 제안서를 썼다. 말을 고르고 논리를 정열 한다. 적당한 이미지와 도식을 넣고 정보를 종합하고 요약한다. 템플릿을 다듬고 흐름을 완성한다. 밤이 깊을수록 피로가 쌓이지만 동작하는 뇌의 일부는 활성한다, 강화된다. 재미, 있었다. 모르던 것을 조사해서 학습하고 보강해서 근거를 만든다. '어, 나 똑똑해지는 거 같아.' 게임하는 것 같다. '퀘스트를 받았습니다, 자원을 사용해 퀘스트를 완료합니다, 보상을 획득합니다' 


사실 난 게임을 하지 않는다. 경험하지 못한 대상으로 비유하고 있다. 대체할 비유는 생각나지 않는다. 일은 적성에 맞는다. 더 잘하고 싶고, 흥미롭다. 가끔은 일로 스트레스를 받지만 떨어져서 다시 보면 이게 괴로워할 일인가 싶다. 웬만해선 망하지 않는다. 게임 세계에 들어와 있고 주어진 퀘스트를 수행하며 미션을 완료한다. 가상세계 같은 공간, 이 게임이 끝난다면 다른 게임을 찾아 나서면 된다. 집중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게임을 즐기는 방법 중에 하나이고 당분간 나는 이 태도를 유지하려고 한다. 


대개는 토로하거나 반성, 다짐, 되뇌는 글을 써왔다. 최근에는 스며드는 확신과 체화하는 가치관에 대해 글을 쓴다. 확신보다는 의심과 불안이 주를 이루던 인간이 확신의 글을 쓰는 것은 드문 일이다. 사람은 변한다. 이 기록에 남은 나도 변할 것이다. 현재에 있는 나 자신에 집중하고 그에 맞게 살면 된다. '스스로를 감지'하는 감각이 좋다. 맘에 들 때도 있고 반대일 때도 있다. 익숙하거나 낯설고 여러 겹의 층위와 각도를 가지고 있다. 익숙하거나 낯선 나를 발견하고, 새로이 친해지는 과정들이 재미있다. 적어도 나는 내가 마음에 든다. 


주변을 본다. 사람에 관심이 생겼고 집중하기도 한다. 호의가 생기거나 불편함을 느끼지만 다양하고 다채롭다. 관찰하고 접촉하며 상대가 내게 미치는 영향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아이가 세상을 학습하는 방법 같은 것을 설명한 문장이나 삽화 같은 것이 떠오른다. 성인이 되어서도 학습하고 변화한다. 변화가 불안하고 두려웠지만 지금은 괜찮다. 좋았던 것, 싫었던 것 모두 바뀌어간다, 예측할 수 없어서 다행이다. 스스로의 몸과 영혼을 살피며 세상을 탐색하고 닿아있는 세상에 작은 도움을 주며.. 그렇게 유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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