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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경 Feb 17. 2024

나랑 국경 넘어서 우리 집에 가지 않을래?

인생 최고의 플러팅 대사를 던진 베르베르인이 해준 말


"나랑 낙타 타고 국경 넘어서 우리 집에 가지 않을래? 여기만 넘으면 알제리거든."


나는 사하라 사막 언덕에 앉아 있었다. 머리 위 까만 하늘엔 별들이 총총 박혀 있었다. 맑고 까만 눈동자를 가진 베르베르인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전에도 들어본 적 없고, 앞으로도 들을 일 없는 대사를 던졌다.


2018년, 모로코에 갔다. 사막에 가기 위해서였다. 2박 3일 사하라 사막 투어에 참여했다. 마라케시에서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사막 입구에 도착했고, 거기서부터 낙타를 타고 사막의 중간으로 들어갔다. 천막으로 지어진 숙소는 생각보다 좋았다. 침대는 물론 세면대와 화장실까지 구비돼 있었다. 다 같이 둘러앉아 모로코 전통음식인 타진으로 저녁을 먹고 천막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사구에 올라 별이 하나, 둘 떠오르는 걸 구경하고 있었다. 가장 고대하던 순간이었다. 사막에 별이 떠오르는 시간.


그때, 자신을 낙타 선생님이라고 소개한 베르베르인(BerBer, 북아프리카의 토착민, 베르베르가 비하의 의미가 있어 최근에는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아마지흐라고도 칭한다고 한다. 모로코를 여행하면서 만난 친구들은 본인을 베르베르인이라고 자연스럽게 소개했다.)이 슬그머니 옆에 와서 앉았다. 사막 초입에서 깊은 사막까지 낙타를 타고 우리를 인도해 주었던 남자였다.


그는 Azul(안녕), Tanmirt(고마워) 같은 베르베르 말을 알려주고 내 발음을 교정해주기도 했다. 유튜브를 켜더니 메르주가 사막에서 열린 베르베르인의 결혼식 영상과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주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을 만났는지 모르겠지만, "너처럼 많이 웃는 한국인은 처음 봤어"라는 말에 나도 내 도시에선 이렇게 많이 웃지 않는다고 덧붙이려다 그냥 다시 웃고 말았다. 서울의 이은경을 모르는 자여.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모니터만 바라보는 나의 모습을 너는 상상도 못 하겠지. 물론 2018년의 서울을 가득 뒤덮고 있던 '미세먼지'라는 것도 모르겠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는 매캐한 미세먼지를 알았다면 이렇게 별이 가득한 밤하늘만 봐도 행복해서 웃음이 난다는 걸 알았을 텐데.


장난인지, 진심인지 본인이 기르는 낙타를 타고 알제리로 넘어가자고, 자신과 가족이 머무는 집을 보여 주겠다고, 이런 숙소보다는 훨씬 전통적이고 이국적일 거라고 했다. 국경을 넘어야 하니 여권을 챙겨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나보다 한참은 어려 나이 앞자리도 다를 것 같은 아이의 귀여운 플러팅은 귓등으로 흘리며 하늘만 보고 있던 그때 별똥별이 떨어졌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무슨 소원 빌었어?" 걔가 물었다.

그때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잘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한 건 영어로 얘기하기엔 복잡한 이야기였다는 것.

"부자 되게 해달라고 빌었어."

그랬더니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던 남자애가 갑자기 표정을 바꿨다.


"중요한 건 돈 아니고 마음 안에 있는 것들이야. 다 가져도 불행한 사람들 많잖아"


시종일관 장난스럽던 친구가 갑자기 진지하게 이야기하니 새삼 머쓱해졌다. "야, 나 사실 부자되게 해달라고 빈 거 아니야, 물질적인 것만 추구하는 그런 속물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속으로 삼켰다. 그냥 걔가 쓰고 있던 예쁘게 잘 말린 터번의 무늬만 바라봤다.


그 시기의 내 마음은 낯선 베르베르인을 따라 낙타를 타고 국경을 훌쩍 넘어 아무것도 모르는 나라에 가고 싶을 만큼 시끄럽고 혼란스러웠다. 잠깐 사라져 버리고 싶은 유혹을 꾹 참고 낯선 사막에서 홀로 잠이 들었다. 모국어로 꿈을 꾸면서.


그 후로 서울이나 가끔 도시를 벗어난 여행지에서 운이 좋게 별이 총총 박힌 하늘을 보게 될 때면 별똥별과 함께 그 이야기가 생각난다. 중요한 건 돈이 아니고, 마음 안에 있는 것들이라는 것. 서울을, 아니 사무실을 벗어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게 가슴에 와닿을 때는 따로 있다.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가진 낙타 선생님을 만났을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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