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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멩이 Aug 02. 2019

파리의 생활 좌파들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파리의 생활 좌파들

21세기 좌파의 초상, 지속가능한 삶은 가능한 것일까? 프랑스로 돌아간 목수정이 이 의문을 프랑스 사회에 투사했을 때, 그 사회에서는 조금 다른 답들이 튀어나왔다. 모든 시대의 유행이 동시대에 공존하는 듯한 프랑스 사회의 다원적 특성처럼, 그곳에는 저마다 다른 오색찬란한 좌파가 공존하고 있었다. 어딘가에 딱히 속하지 않고 마르크스나 엥겔스, 그람시 같은 ‘교주’를 특별히 섬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체화된 좌파적 태도를 가진 프랑스인들. 그들은 목숨 바쳐 좌파 활동을 하지도 않았고, 희생 따위를 한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며, 마치 걸치기 편한 옷처럼 좌파의 생각을 걸치고 누리고 있었다. 목수정은 이들을 ‘생활 좌파’라 명명하였다. 목수정은 15명의 생활 좌파들과 인터뷰를 했다. 그들에게 좌파 활동의 원동력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동지를 어떻게 구하는지, 선동과 회유에는 어떻게 맞서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파리에 사는 프랑스인뿐 아니라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 공산당원, 중국인 부모를 둔 타히티 태생의 극좌 정당 활동가, 양심적 병역 거부를 사유로 망명한 한국인 등이 인터뷰 대상이었다. 그들은 모두 세상의 시선이 강제하는 삶을 거부한 사람들이었고 자신의 신념과 기호와 결단으로 자신의 길을 열어간 사람들이었다.

book.daum.net

 


1.

 '생활 좌파'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책을 시작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목숨 바쳐 좌파 노릇을 하지도 않았고, 희생 따위를 한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마치 걸치기 편한 옷마냥 좌파의 생각을 걸치고 누리고 있는 이들이었다. / 어딘가에 딱히 속하지 않고 마르크스나 엥겔스, 그람시 같은 교주를 특별히 섬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체화된 좌파적 태도를 지닌 사람들."(7쪽) 그래서 저자는 한국에서는 젊을 때 '좌파 노릇'을 하다 전향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러니까 저렇게 생활이 녹아든 좌파가 되는 일이란 참 어렵고 힘든 일인데 저 사람들은 어떻게 삶적-좌파로 살아가는지 궁금했다고 한다. 그래서 열다섯 명을 만나 인터뷰했고 때로는 그들의 문장을 때로는 그들의 삶을 그의 문장으로 써 내렸다. 그래서 4개의 챕터로 나눴고 각 챕터는 하나의 문장으로 이름 지었다. 저자는 인터뷰어에게 받은 '지혜의 구슬'이라고 얘기한다. 그 챕터의 이름은 "질문의 노마디즘을 멈추지 마라", "익숙한 것을 버리는 순간 보이는 새로운 것들", "어떤 순간에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더 아래로, 더 왼쪽으로 스펙트럼을 확대하라". 이보다 더 좌파스러울 수는 없는 네 개의 문장. 그렇게 책은 시작한다. 


2.

 지극히 개인적으로 충격적인 부분이 있었다. 몇 번 들어는 봤지만 정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얘기하는 줄 몰랐다. 바로 인터뷰어 중 꽤 여러 명이 "프랑스 공산당은 우경화되고 있어, 망했어"라고 얘기한다는 것이다. 으아 공산당은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불법인데 말이다. 사스가 프랑스! 하는 생각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3.

 이어서 책의 부분 부분 인터뷰이가 가진 50년 전의 기억이 지금의 우리나라를 상기시킨다. 인터뷰이 중에는 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도 있다. 그들이 얘기하는 1950~70년대 프랑스의 기억들. 이미 프랑스에선 '죽은' 문장이 다시 살아나 한국으로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슬프게도. 한국과 프랑스 사이에 대략 9,000km, 12시간이라는 물리적 거리가 있다면 30~50년의 정치적 거리도 있었다. 혁명으로 시작한 프랑스와 우리나라가 다른 스펙트럼을 가진 게 사실 너무 당연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받아들이자니 조금 힘들었다. 언제쯤 '한국의 생활 좌파들'이란 책이 나올 수 있을까.


4.

 그러니까 좌파를 생활한다는 건 (15명의 인터뷰에서 미뤄 볼 때) 엄청(!) 어려운 일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걸 묻거나, 만들거나, 말하거나 한다는 거니까. 삶이 누적될수록 생겨나는 관성이란 걸 비껴가는 일은 엄청 덤덤하고 담백하게 들려왔지만 결코 쉽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살아온 건지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라 확신하는지 궁금해졌다. 아니 답은 책에 있었지만 내 마음에 녹아드려고 하진 않았다.


5.

 엄청 오래전에 쓰기 시작한 글을 오늘 마무리 짓는다. 써뒀던 글을 보면서 그래도 내가 많이는 변하지 않은 것 같아서, 앞으로도 대충 비슷하게는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조금 위안이 된다. 사는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고 생겨 먹은 게 달라져도 그래도 이렇게 살고 싶다. 정말로.  오늘은 왠지 위로가 되지 않는 날이었다.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날씨도 좋았고, 밥도 먹었는데 그냥 위로가 되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다음 주가 돌아온다면 조금 더 잘 살아보아야겠다. 조금 더 잘 사는 사람, 조금 더 좋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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