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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매오 Aug 16. 2023

아스날의 주장에서 감독으로, '미켈 아르테타'

욕심을 갖고, 묵묵하게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팀 아스날의 감독 미켈 아르테타는 선수 시절 단 한 번도 국가대표에 선발된 적이 없다. 그의 나라인 스페인에는 유명한 선수가 많았다. 당대 최강의 팀 FC바르셀로나를 이끄는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르히오 부스케츠가 있었다. 그 라이벌 팀인 레알 마드리드부터 리버풀, 바이에른 뮌헨 등 세계적인 팀에서 내내 주전으로 활약한 사비 알론소도 있었다. 아스날을 먹여살리다 FC바르셀로나로 떠난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명단에 겨우 이름을 올리는 수준이었다. 스페인이 2008년 유로, 2010년 월드컵, 2012년 유로까지 제패하는 걸 보는 아르테타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르테타는 묵묵히 축구를 했다.



앞서 언급한 선수들에게는 조금 밀릴지 모르겠지만 그 역시 꽤 유명한 선수였다. 일찍이 유럽 리그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쳤고 2005년 EPL 팀 에버튼에 합류해 차곡차곡 평판을 쌓았다. 2011년에 같은 리그의 아스날로 이적한 뒤엔 핵심 선수이자 주장으로 5시즌을 뛰었다. 말년에는 경기력이 다소 떨어져 실제 출전시간은 길지 않았으나 베테랑으로서 리더십과 통솔력을 발휘하며 팀을 뒷받침했다. 아르테타의 선수경력을 그래프로 그린다면 더없이 안정적인 형태가 나타날 것이다. 평범해 보이는, 그래서 매우 이상적인. 그를 수식하기 위해 쓴 표현이 ‘꽤 유명한’에 그치는 게 섭섭하게 느껴질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선수였다.



선수 시절의 아르테타. (사진=아스날 공식홈페이지)



아르테타는 육각형 미드필더였다. 측면과 중앙 어느 위치에 두든지 곧잘 소화해내며 공격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에버튼에서 그를 빼고 전술을 구상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아스날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아 경기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기여했다. 공격과 수비의 균형이 제각각인 동료들 혹은 상대팀의 전술이나 기세에 따라 달리 흐르는 경기 양상에 맞춰 필요한 역할을 적절하게 수행했다. 탁월한 퍼포먼스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부재할 때 오히려 자연스럽게 존재감이 느껴지는 유형이었다. 이런 이들은 대체로 ‘묵묵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이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오해하곤 한다.



틀렸다. 그 두 가지는 아무 관계 없다. 당연히 아르테타도 욕심을 냈다.



2011년 아르테타의 아스날 이적은 다소 급박하게 진행됐다. 이적 시장이 닫히기 직전에 계약이 확정되면서 전 소속팀인 에버튼은 그의 대체자를 구할 시간도 확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에버튼 감독과 팬들은 “더 늦기 전에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뛰고 싶다”는 아르테타를 비난하지 않았다. 무려 7시즌 동안 에버튼에서 최선을 다한 그의 선택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중요해서 다시 말한다. 아르테타는 꽤 유명하고 훌륭한 선수였다. EPL에서 오랜 기간 꾸준히 경기에 나서 제 역할을 다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이른바 ‘월드클래스’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 높은 명예를 추구할 자격은 충족시키고도 남았다.



아르테타는 아스날에서 2014년, 2015년 연속으로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바랐던 대로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뛰었다. 매번 16강에 그쳐 아쉽긴 했겠지만 말이다. 그때의 아스날은 1996-1997 시즌 이래 한 번도 EPL 4위 밖으로 밀려나지 않은 강팀이었다. 아르테타의 마지막 시즌인 2015-2016시즌에는 준우승까지 차지했다. 공교롭게도 그가 은퇴한 다음 시즌 5위로 밀려난 아스날은 이후 8위까지 떨어지면서 유럽 대항전도 못나가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짧지 않은 암흑기를 보낸 아스날은 지난 2022-2023시즌 2위를 기록하며 부활을 알렸다. 부활을 이끈 것이 감독으로 돌아온 아르테타라는 점이 재밌는 포인트다.



아르테타는 2019-2020 시즌 중간에 아스날 감독으로 합류했다. (사진=아스날 공식홈페이지)



아르테타는 은퇴 후 곧바로 맨체스터 시티의 코치로 부임했다. 우상이었던 펩 과르디올라 감독 밑에서 착실히 경험을 쌓았다. 그러다 2019-2020시즌 중간에 우나이 에메리 아스날 감독이 경질됐고 전부터 아스날과 접촉이 있었던 아르테타가 새로운 감독으로 합류했다. 아르테타 역시 단번에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경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다행히 그의 지휘 아래 그라니트 자카, 부카요 사카 같은 기존 선수들이 제몫을 해냈고 마르틴 외데가르드, 토마스 파티, 벤 화이트, 아론 램스데일, 가브리엘 제수스, 올렉산드르 진첸코, 레안드로 트로사르 등 영입한 선수들도 성공적으로 적응하면서 팀은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이것이 핵심이다. 믿고 활용할 수 있는 선수풀에서 자신이 영입한 선수와 기회를 준 선수의 비중을 높이고 그로써 이전과 눈에 띄게 다른 성과를 내면 감독의 팀 장악력은 기하급수로 확대된다. 누구를 영입하고 방출할 것인지, 누구를 주전으로 쓰고 후보로 쓸 것인지 등의 결정에 권위가 실리므로. 아스날 감독으로서 아르테타의 가장 큰 성취도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안목이 좋았다. ‘어떤 선수를 영입할 것인가?’와 ‘어떤 선수에게 기회를 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논리적이고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을 줄 알았다. 그렇기에 결과가 따라왔다. 말년의 아르센 벵거와 경질된 에메리가 끝까지 풀지 못했던 문제를 아르테타는 끝내 풀어냈다.



아르테타는 더 높은 명예를 추구할 자격이 있다.



사비, 이니에스타, 부스케츠, 알론소, 파브레가스…그리고 아스날에서 그와 함께 뛰었던 선수들은 이제 없다. 하지만 아르테타는 여전히 세계 축구의 중심에서 누구보다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꽤 유명한 선수였던 데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스스로를 증명하며 나아가는 중이다. 물론 지난 시즌 우승을 놓치고 처음엔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팀과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본 끝에 그는 아스날 감독으로서 다시 또 새로운 시즌을 맞이했다. 예전처럼 묵묵히 축구를 해나갈 것이다. 지난 시즌이 단지 행운에 따른 결과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그가 아스날에서 벵거와 같은 반열에 올랐으면 좋겠다.



나는 욕심을 갖고 묵묵하게 할 일을 하는 그와 같은 사람들을 존경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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