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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양 Jan 29. 2019

THE HATE U GIVE


  자신의 인생에서 내가 가장 큰 무엇인 양 바라보는 지금의 크리스가 좋다. 그도 내 인생 최고로 좋은 부분이다. 

  솔직히 잘사는 백인 소녀들이 '크리스는 왜 저 애랑 만나지?' 하는 눈길을 우리에게 보내는 게 사실이다. 가끔 나도 그런 생각을 한다. 크리스는 그런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 듯 행동한다. 그가 지금처럼 바쁜 복도 한가운데서 랩을 하고 비트박스를 하며 날 웃게 해주면 나도 그런 시선들을 잊어버린다.

  그가 두 번째 구절로 들어서서 어깨를 흔들며 날 쳐다봤다. 여기서 최악인 부분은, 제대로 흔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의 바보 같은 엉덩이다.

  "웨스트 필라델피아에서 나고 자란, 어서, 스타. 같이 하자."

  그가 내 손을 잡았다.


  1-15는 손전등으로 칼릴의 움직임을 일일이 살폈다.
그는 칼릴에게 차에서 나와 손을 들라고 했다.
그는 내게 계기판에 손을 올리라고 소리쳤다.
난 손을 들어 올린 채로 거리 한복판에서 죽은 내 친구 옆에 무릎을 꿇었다.
크리스와 같은 백인 경찰이 날 향해 총을 겨누었다.
크리스와 같은 백인 경찰이.



  [...]

  1-15의 아버지가 총격 사건이 있기 전 아들의 삶에 대해 말했다.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으며 항상 남을 도우려고 했던 착한 아이였다고. 칼릴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는 칼릴이 절대 해보지 못할 일들, 대학을 가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과 같은 1-15의 일상에 대해 말했다.

  기자가 그날 밤 일에 대해 물었다.

  "분명한 것은 후미등이 깨졌고 과속을 했기에 브라이언이 그 아이의 차를 세웠다는 겁니다."

  칼릴은 과속을 하지 않았다.

  "아들이 제게 말했어요, '그 차를 세우자마자 안 좋은 기분이 들었습니다'라고요." 1-15의 아버지가 말했다.

  "왜 그랬죠?"

  "아들이 말하기론 그 애와 친구가 곧장 아들을 향해 욕을 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절대 욕을 한 적이 없다.

  "그리고 마치 무언가를 꾸미는 것처럼 서로 계속 눈길을 교환했답니다. 브라이언은 둘이 작당을 한다면 자신을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겁이 났다고 했어요."

  난 아무도 쓰러뜨릴 수 없었다. 겁이 났었다. 그는 우리가 마치 슈퍼 히어로인 듯이 말하고 있다. 평범한 청소년일 뿐인데.




  탁심 메인 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창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근처 모스크에서 아잔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상아색 벽돌 건물들 사이로 빨간 트램이 지나가고 우유 섞은 녹색 보도블록이 깔린 길 위로 낯선 말을 하는 사람들이 흘러 들어온다. 흘러 나간다.

  옆 테이블에 앉은 두 사람이 내 쪽을 보며 큰 목소리로 떠들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다. 그들이 교환하는 눈빛과 제스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챌 수 없다. 나를 보는 게 아닐지도 몰라. 창 밖을 본 것일지도. 아니 나를 보았다고 해도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리란 보장은 없지. 설령 그렇다 해도 나쁜 말을 하는 게 아닐수도 있어. 그렇게 생각해 본다.

  낯선 언어-표정이나 몸짓 언어를 포함한-를 맞닥뜨리면 겁이 난다. 짙은 눈썹과 덥수룩한 수염도 마찬가지다. 큰 골격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도 그렇다. 

  어떤 '이미지'가 있다. 별 거 아닌 일에 시비가 붙어도 바지 뒷주머니에서 총을 꺼내 쏘아버리는 사람의 이미지라든지, 여성을 포함한 약자를 어떠어떠한 태도로 대하는 사람의 이미지라든지 하는. 그러니까 나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사람이다. 낯설어서 겁이 난다는 이유로.

  하지만 겁이 난다고 해서 내가 그들을 죽일 수 있는 건 아니다. 겁이 난다고 해서 무조건 죽이지는 않는다. 겁이 난다고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자기가 쥔 방아쇠가 어떤 방아쇠인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다. 방아쇠를 당기기 전과 후의 삶 모두를 스스로 구원할 수 있는 사람.

  그러니 퉁칠 수 없다. 그 순간 니가 겁 먹은 것처럼 나도 겁 먹었던 것이라고 퉁칠 수는 없다. 그러니 나를 겁주지 말라고 할 수는 더더욱 없겠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윽고 둘 중 하나가 내게 다가와 어디서 왔는지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대뜸 사랑한다고 한다. 대꾸 않고 창 밖으로 시선을 옮기지만 이미 체는 내 앞에 앉았다. 너 진짜 예쁘다. 체가 말한다.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한국 여자들은 다 예쁜 것 같아. 내 생각이야. 체가 다시 말한다.

  "몇 명이나 만나봤는데?" 내가 묻는다. "글쎄? 서넛쯤? 다 예뻤어." 체가 대답한다.

  한국 국적을 가진 여자가 총 몇 명인지는 알아? 내가 다시 물었다. 체는 몰라. 하지만 너 진짜 예쁘다. 하고 다시 눙친다. 뒤이어, 한국 여자들은 예쁘기만 한 게 아니야. 친절해. 남자들한테 잘 하잖아? 내가 아는 친구는 한국 여자랑 연애를 했는데 아주 순종적이고 헌신적이더래. 내 생각에 그건 한국 여자들의 특징인 것 같아. 나도 한국 여자랑 연애하고 싶어... 왜 그래? 너 화 났어? 그냥 칭찬인데~ 좀 웃어!

  

  [THE HATE U GIVE]는 오스카 그랜트의 죽음에 큰 영향을 받은 앤지 토머스가 쓴 책이다. 나에게도 그런 사건들이 있다. 나의 일처럼 느껴졌고 화가 났다. 화가 나니까 좋았다. 분노가 습을 엎는 에너지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그 분노를 습자지에 잘 싸서 오명가명 볼 수 있는 자리에 두었었다. 화가 나서 눈물이 왈칵 나고 다리 힘이 풀릴 때마다 비비지 않고 눈두덩이를 꾹 눌렀다. 울지 않아야지. 눈물로 씻겨 내려가게 두지 말아야지. 그렇게 다짐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들었던 생각은, 끝까지 분노하지 못하는 쪽이 있다는 것. 끝까지 감각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 

  그래서 때로는 이런 이야기에 아무런 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절망과 그 분노와 그 슬픔이 감각되지 않으면 다음이 없는 것 같아서. 나에게 역시 죽을 때까지 쓰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 많이 있다. 

  어떤 방식의 말대꾸가 좋을지 고민해야 한다. 세상을 망치지 않는 방식으로 당신이 준 분노(THUG)를 표현해야 한다. 학교에 돌아가면 이런 이야기들을 더 많이 나누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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