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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맥타 Oct 04. 2018

아는 만큼 들린다

UV와 신동의 <메리맨>과 모차르트의 <음악적 농담>

UV와 신동의 <메리맨>(Marry Man)과 모차르트의 <음악적 농담>(Ein musikalischer Spaß, K.522)에는 공통점이 있다. 아는 만큼 들리고, 아는 만큼 웃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음악을 듣고 (혹은 뮤직비디오를 보고) 누군가는 배꼽을 잡고 웃는데, 다른 누군가는 물음표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거리고만 있다면 그것은 아마 두 음악이 패러디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정보가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먼저 <메리맨>을 보자. <메리맨>의 음악과 뮤직비디오는 1980년대 말 한국 가요, 그중에서도 그룹 소방차를 모방한다.      


<메리맨> 뮤직비디오


1980년대 말의 한국 가요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메리맨>의 선율 양식과 리듬, 창법과 전체적인 사운드를 듣고 즉시 소방차를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이 음악과 뮤직비디오가 구성된 방식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이러한 정보가 없는 사람은 UV가 <메리맨>의 음악을 굳이 왜 이러한 방식으로 구성했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의상과 안무, 가수 신동의 역할을 이해할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아마도 그저 막연하게 촌스러움과 B급 정서, 세 사람의 익살스러운 행동에 웃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1980년대 말의 한국 가요를 경험하지 못한 독자를 위해 부연하자면, <메리맨>의 의상과 안무 역시 소방차를 패러디한 것이고, 신동은 소방차의 ‘센터’였던 정원관의 역할을 담당한다.      


소방차의 <어젯밤 이야기> 무대


그러나 1980년대 한국 가요만 알아서는 <메리맨>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다름아닌 댄스 브레이크 부분 때문이다. <메리맨>에서는 댄스 브레이크에 돌입하면서 노래 중간에 갑자기 음악의 분위기가 바뀌는데, 이 음악이 연상시키는 것은 바로 1995년에 발표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이다. 이 음악 양식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짐작할 수 있으려면 <컴백홈> 원곡이나 적어도 BTS의 리메이크 버전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소방차스러운 의상을 입고서 갑자기 1990년대로 시대를 건너뛰는 이유는 뭘까? 뜬금없이 <컴백홈>을 연상시키는 음악이 필요한 이유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뮤직비디오를 봐야 한다. 이 장면에서 뮤지와 유세윤은 <컴백홈>의 시그니처 안무를 추려고 시도하지만 과장된 어깨 패드 때문에 그 안무를 추는 데 실패함으로써 웃음을 유발한다. <컴백홈>의 안무를 통해 과장된 어깨 패드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 <컴백홈>을 연상시키는 음악이 필요했던 것이다. 갑자기 시대를 건너뛴 이유다.          



아는 만큼 들리고, 아는 만큼 웃을 수 있다.



뮤직비디오는 방송인 탁재훈의 인터뷰로 끝난다. 더 정확히 말하면 탁재훈이 결혼이라는 단어를 꺼내자마자 뮤직비디오를 끝내버림으로써 결혼에 관한 인터뷰를 하지 못하게 하면서 끝맺는다. 결혼을 노래하는 음악의 뮤직비디오에 탁재훈이 (그리고 신동이) 등장한 것 자체와 탁재훈이 결혼에 관해 아무런 발언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설정이 웃음을 유발하지만, 이 역시 탁재훈이라는 인물을 알아야 웃을 수 있는 장면이다.     


 




이제 호른과 현악기를 위한 모차르트의 <음악적 농담>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이 작품도 <메리맨> 못지않게 웃음을 유발한다. 하지만 웃기 위해서는 고전주의 시대와 모차르트의 음악을 알아야 한다. 패러디하는 대상과 출연자에 대한 사전 정보가 많을수록 <메리맨>의 창작자의 의도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먼저 1악장을 들어보자.      

 

모차르트 - 음악적 농담, 1악장


1악장을 듣고 '이게 모차르트 음악이라고?'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면 당신은 '클래식 음악 좀 들어본 사람'이다. 모차르트가 이 곡을 완성한 시기는 그의 음악적 성숙기에 해당한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 유명한 교향곡 39번, 40번, 41번, 그리고 너무나 유명해서 한 번이라도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가 전부 이 시기에 작곡되었다. 이런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모차르트가 <음악적 농담>을 작곡하면서 선율이나 리듬, 음악의 진행을 그다지 예술적으로 쓰려고 하지 않은 것 같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아직 긴가민가하다면 2악장을 들어보자. 이번에는 분명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모차르트 - 음악적 농담, 2악장


2악장의 어느 시점에 호른의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모차르트가 살던 시대에는 작곡가들이 이런 식으로 부딪히는 소리를 음악에 사용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모차르트가 의도적으로 “틀린” 음을 적어 넣었다는 것이다. 호른 악보 하나 제대로 그릴 줄 모르는 한심한 작곡가를 풍자한 것일 수도, 무능한 연주자를 조롱한 것일 수도 있다.      


풍자와 조롱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3악장의 가장 강력한 웃음 포인트인 바이올린 카덴차(cadenza)를 들어보자. 곡이 끝나기 전 바이올린 연주자가 오케스트라 반주 없이 홀로 연주하는 부분이다.      


모차르트 - 음악적 농담, 3악장


카덴차는 독주자가 무반주로 연주를 하며 음악성과 기교를 과시하는 부분이다. 그만큼 연주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곡에서는 카덴차 마지막에 점점 높은음으로 올라갈 때 귀에 거슬리는 이상한 음들이 연속해서 들린다. 고전주의 시대의 음악 어법에 맞지 않는 음들이다. 그러니까 이 틀린 음들의 연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다. 모차르트가 의도적으로 틀린 음을 악보에 적어 넣어서, 음도 못 맞추는 무능한 바이올리니스트를 묘사한 것이다.       


맥없는 피치카토(현을 손으로 뜯는 주법)에 이어서, 솔리스트는 마지막 트릴마저 틀려버린다. 관습대로라면 E음과 D음을 번갈아 연주해야 하는데, 독주자는 F-D로 트릴을 시작했다가 황급히 E-D로 음을 바꾼다. 정말이지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4악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다. 4악장 끝에서 모차르트는 악기마다 서로 다른 화음을 연주하게 만든다. 그 결과 호른 파트만 유일하게 제대로 된 화음을 연주하고 현악기들은 전부 부적절한 음을 연주한다. 


모차르트 – 음악적 농담, 4악장


이 부분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 연주자들은 세 음을 동시에 연주해야 하는데, 모차르트는 여기에 틀린 음을 적어 넣음으로써 여러 음을 동시에 연주할 때 음을 자주 틀리는 현악기 연주자들을 비꼬았다. (학창 시절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화음만 나오면 헤매곤 했던 당사자로서 필자는 이 부분을 들으며 많이 뜨끔했다.) <음악적 농담>은 이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를 웃게 만든다.      







물론 이런 배경 지식이 없더라도 <메리맨>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고 <음악적 농담>에서 나름의 매력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배경 지식이 있으면 그만큼 음악을 더 재미있게 감상하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음악적 농담>에는 앞서 언급한 내용 외에도 모차르트가 의도적으로 고전주의 시대의 음악 관습을 어기거나 음악적으로 허술하게 작곡한 부분이 많다. 음악적 지식을 보충한 뒤에 조금 더 파고들어 가보는 건 어떨까? 아마 더 많은 요소들이 곳곳에서 즐거움을 안겨줄 것이다.  




※더 들어보기


시(가사)와 음악, 인물과 스토리, 영상과 춤사위까지, 모든 것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며 아는 만큼 들리고 아는 만큼 보이는 작품이다.


마미손, <소년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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