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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summer Jul 24. 2022

나를 위해 산다는 것.

워킹맘 3개월 차에 터진 설움 -1-

길었던 육아휴직을 끝내고 직장으로 복귀한 지 딱 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은 꽤나 적응도 빨리하고 그저 매일 화장을 하고 예뻐진 내 모습으로, 누군가 나를 보고 내 이름으로 불러준다는 것이 너무나 황홀했다.


그런 내가, 마의 3개월인 건지 뭔지 근래의 나는 꽤나 뒤숭숭했으며 곧잘 가슴이 먹먹하곤 했다.

업무 상의 실패 때문은 아니다. 여전히 매일 아침 피곤해도, 거울 앞에 서서 그날의 나를 셋업 하는 건 꽤나 들뜨는 작업이다. 육아와 적성에도 맞지 않는 가사를 포함해 일본어를 잘하지 못하는 남편을 대신해 세금 관련 모든 행정처리를 다 도맡아 대소사를 처리해야 할 땐 버겁게만 느껴졌는데 거기다 회삿일을 더하는데도 웬일인지 그렇게 힘들지가 않았다. 


특별히 불행하진 않았지만 요즘의 나는 그저 누가 뒤통수 한 대 쳐주기만을 바랬다. 매일매일 매분 매초 밖으로 터져 나오지 못하고 거기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것만 같은 눈물이 너무 답답하지만, 내 손으로 쥐어짤 순 없었기에. 


믿을만한 회사 선배와 조금만 긴 대화를 가질라치면 대화 주제가 생뚱맞게 튀겨나가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닿을 뻔하기라도 하면 곧 눈물을 떨어뜨릴 것만 같은 내 자신을 느낄 때마다 당황스러웠다.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귀찮은 것이 많이 지쳐있었던 듯싶다. 무언가 답답한 가슴을 이고 지고 사는 것 같을 때마다 우울증 전조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냥 워킹맘 3개월 차의 마의 시간인 듯하다. 자가채점에서 그 어느쪽으로도 10점 만점을 주지 못하는 나. 요즘 말로 번아웃 일까. 뭐가 되었든, 그저 견디는 수밖에.


너는 너무 착해. 전부 다 다른 사람들한테 양보하려고 하니까. 지금은 너를 위해 살 때야. 동료 부장 임원 다 신경 쓸 필요 없어, 지금 너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에바와 너 자신만 생각해.


복직 후 크게 바뀐 라이프스타일 탓에 정확하게는 원(元) 부서에 돌아가지 못하고 그와 가까운 콘텐츠 세일즈팀으로 배속받은 내게, 이쪽 업계에 뼈가 굵은 선배는 좋은 기회라며, 너에게 부족한 건 '기회의 양(場数)'이니, 지금 있는 부서에서 그 양을 늘리면서 네트워크도 키우고 실력도 붙이면 된다며 조언해주었다. 분명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로 시작된 대화였는데, 마지막 너를 위해 살라는 한마디가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울렸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 말이  왜 그리 가슴 먹먹했을까.


나를 위해 사는 게 뭔지 모른다.


어쩜 선배는 나에 대해 그렇게 잘 아는 건지.

역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타인에 대한 이해도가 남다르다. 심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내 공을 늘 남에게 미루고 누군가의 그늘에만 있었던 건 아닌데 일하는 엄마로 복귀하고 나서는 내가 갖고 있는 일종의 '입장' 때문에 더 나서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딱히 민폐라고 생각지 않아도 일본에서는 늘 '메이와쿠(민폐) 끼쳐서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살다 보니 이젠 정말 민폐덩어리가 된 것 같다. 불확실 요소가 너무나 많은 육아를 하면서 내가 일까지 욕심 내다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구멍이 날지 모르는 일이었으니. 그러나 어차피 내 틀은 내가 깨야 한다.


어쩌면 일 뿐 아니라 나를 위해 사는 게 뭔지 처음부터 몰랐던 것 같다. 그동안의 삶은 나를 우선순위로 두기보다는 늘 따로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 어릴 땐 아빠를 피하고 싶었기에 그저 집을 나와 살 생각으로 인 서울대학만 노리며 살았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았던 건 장남의 실패한 결혼으로 손주까지 떠맡아 키워야 하는 조부모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저 모두의 눈에 띄지 않게만 살았던 거였다. 인서울의 꿈을 실현하고 나서는 한동안 방황했던 것 같다. 성적 맞춰 대충 온 대학과 학과가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늘 '혼자서도 알아서' 잘하는 손녀였던 나는 이제 와서 재수하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없었기에 꾸역꾸역 다니다가 제이팝에 빠져 지금 여기까지 온 거였다. 그리고 지금, 내 분신과도 같은 딸을 위해 사는 것일까?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사는 것일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4년이란 세월 동안 내가 나를 위해 뭘 해줬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일주일 휴가 쓰고 혼자 훌쩍 떠났던 이탈리아 여행.
에바가 아픈 것은 아닐까 걱정과 의심이 들면서도, 하루 종일 혼자 감당할 자신이 없어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재택근무를 빌미로 혼자 영화를 본 날.
먹고 싶은 것 먹고 사고 싶은 것을 살 때의 소비 충족.

부족한 수면을 쪼개고 쪼개서 가삿일 외에 뭐든 하려고 하는 시간.
등의 것들이었을까. 나를 위한다고 했던 모든 것들.

(지금의 남편과 결혼한 것도 행복해지고 싶어서였으니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


그렇지만 조금은 억울하네.

34년의 일만 일도 넘는 나날 동안 나를 위해 준 것들이 훨씬 더 많이 생각나야 하는 건데, 아니, 몸에 배어 있어야 하는 건데 선배에게서 너를 위해 살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사고가 정지됐다. 그런 매뉴얼은 입력된 적 없었던 ai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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