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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summer Jul 25. 2022

6일간의 휴식 없는 휴가

워킹맘 3개월 차에 터진 설움 -2-

간밤에 딸이 또 끙끙거린다. 그런데 오랜만에 그 촉이 왔다. 희한하게 남편에게만 없는 그 엄마 촉.

곧바로 이마를 짚어봤고 불덩이 같은 아이의 몸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38.9도. 38.4도 ..몇 번을 다시 재봐도 여하튼 38도를 넘겼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더 허둥대며 얼른 물수건으로 몸을 닦고, 해열제를 먹였다. 다행히 아이는 곧장 잠들었고 열도 바로 떨어졌다. 그 와중에 얼마나 사축(社畜)이었던 건지, 새벽시간이었지만 곧바로 회사 팀 내 메신저에 메시지를 올렸다. 딸이 열이 펄펄 끓어 내일 하루 '쉬겠다'라고.


딸아이는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았으며 남편 말대로 간밤에 꺼진 에어컨 때문에 잠깐 열이 오른 건지 뭔지 본인은 아주 멀쩡했다. 그렇게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 난 다음날 저녁 여섯 시,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모든 반에서 아이 선생님 교직원 할 것 없이 코로나 확진자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관계로 지자체와 협의 결과 내일부터 긴급 휴원에 들어가겠다고.


너무 막막했다. 정말 막막하다는 말 외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한국어 어휘가 부족한 남편조차 퇴근 후 들은 소식에 나와 똑같이 '막막하다'는 말을 먼저 했으니, 정말 우리 부부는 막막했다.

아이가 코로나 음성인 것은 감사할 일이지만, 타지에서 그 흔한 친정이나 시댁 없이, 친구든 뭐든 의지할만한 타인 하나 없이 오로지 서로가 서로의 빈 곳을 채우며 열과 성을 다해 일과 육아를 병행하던 우리. 생각해봤자 뾰족한 답이 없을 것 같아 일단 나는 그렇게 또 일주일의 휴가를 썼다.


회사의 제도로 주어지는 각 5 영업일 연달아 쓸 수 있는 하계휴가와 동계휴가. 나는 그중 하나를 가정 내보육을 하며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양심상 휴가를 썼다. 재택근무가 주류인 요즘, 휴가 쓰는 게 너무 아깝다며 위로해주는 동기도 있었지만 역시나 대부분의 이들은 '안타깝군요, 안됐지만, 이번 기회에 푹 쉬고 오세요'라고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넸다.

"푹 쉬라니."

쓴웃음이 나왔다.

육아만큼은 경험 없이는 절대 모르는 분야이니 미혼이거나 기혼이어도 자식이 없거나, 자식이 있어도 제 손으로 키워본 적 없는 꼰대 부장이 유튜브 없이 미운 세 살과 하루 종일 함께 한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 것인지 알리가 없기에 그냥 넘길 수도 있었는데, 사람들의 무심한 위로에 상처를 받았다.


평소에도 '각자의 인생을 존중한다' '일하는 엄마도 일하기 좋은 부서' '뭐든 상담하라'며 이해심 깊은 모습을 보여줬던 부장은 내가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알겠다. 인수인계 잘해라'가 끝이었으며, 그다음 날 아침 가장 첫 문자도 '누구에게 무엇을 언제 어떻게 인수인계하고 있는지 알려달라'였다.

또 누군가는 '뭐든 어려운 일 있으면 우리에게 말만 해달라 다 하겠다'라고 하면서도 막상 실전에서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더 많았다. 새삼 입지가 좁다 생각했다. 다들 휴가라 생각하면서도, 휴가는 아니니, '민폐'끼치지 않기 위해 가능한 한 대응을 하겠다는 나의 제스처에는 한껏 들 기대 했고, 불과 24시간 안에 일어난 일들에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내가 못하는 것만 지적받는 것 같아 쓰라렸다. 내 편인 사람들의 좋은 말보다, 무심한 몇 마디가 훨씬 오래갔고, 더 억울하게만 느껴졌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다. 내가 자초한 상황도,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그저 어쩔 수 없는 상황 들일뿐인데, 내가 이렇게 만든 것만 같았고 유독 더 서러웠다.


그렇게 휴식 없는 휴가가 시작되었고 막막함과 고독함에 아이와 함께 공원으로 나서는 길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아이와 함께 푹 쉬라는 사람들의 배려 없는 업무연락과, 안타깝게도 근본이 성실했던 나의 어정쩡한 입장 때문에 울리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가싯바늘이 몸안에서 요동치는 것 같아 속이 불편했다.

업무 퍼포먼스가 좋은 것도 아니면서 결국, 내 아이에게도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못난 엄마.

나란 사람- 참 별로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고 있다는 느낌이 없었다. 미운 세 살 절정이라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딸아이가 매분 매 초마다 반항을 하는데, 신경이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부족한 엄마 탓인 것 같아 죄책감에 더 괴로웠다. 괴로우면서도, 육아서에 나올 법한 안정적이고 너그러운 품으로 보듬어 주지 못해 더 미칠 지경이었다. (육아서 괜히 읽었다! 아는 만큼 괴롭기만 하다!)


그렇게 여름휴가 1일 차가 끝나갈 무렵 나는 어마어마하게 지쳐있었다. 그날따라 낮잠을 자지 않는 딸에게 '제발 자!'라고 소리친 후 죄책감에 이미 나의 멘털은 털려버렸고 여름날 백번도 넘게 그네를 밀어주고 미끄럼틀을 태워준 엄마란 이름의 몸이 한없이 무거웠다. 그 와중에 회사 전화기는 늘 매고 다니며 끊임없이 메일 체크를 했다. 우습게도나는 끊임없이, '휴가를 쓰긴 썼지만 쉬지는 않을것'이라며 그 누구도 시킨적 없는 변명아닌 변명을 계속 해야만 했다.

그랬다,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니어도 분명 내 선택들이다.


며칠이 지나고 아이에게 풍선을 사주러 다이소에 다녀오는 길- 갑자기 걷지 않겠다고 난동 부리는 아이를 안고 도보 20분을 걸었다. 땀은 나고 아이는 징징거리고...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조용하다.

"무슨 생각해?"

"엄마 생각"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무슨 뜻인지, 그 말을 듣는 엄마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말하는 것일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한동안 '충실한' 나날들을 보내느라 멀리했던 술을, 복직하고 딱 3개월째 된 날들부터 퇴근 후 맥주 한 캔씩 다시 즐기기 시작한 것 같다. 하지만 술은, 내가 왜 이러는지 생각하지 못하게끔 현재를 무디게 만들어줄 뿐 아무런 힘이 없었다. 복직하고 나서는 책도 거의 읽지 못했고 글은 전혀 쓰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마의 3개월 이란 시간동안 퇴근후에도 끝나지 않는 하루가 버거웠던 것 같다. 마케팅/세일즈에 머리를 써야 하는 나는 퇴근 후에도 생각이란 걸 해야했다. 저녁 준비를 할 때도, 에바를 재울 때도, 재우고 나서도, 얕은 잠결에 새벽녘 깨어 났을 때도 프로젝트를 생각한다. 생각이란 걸 어디에 두고 오면 참 좋을 것 같은데 그게 쉽지 않으니 틈나는 대로 바보상자에 매달리며 방전시켰다. 그게 충전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소모된 과거의 나를 지금으로 데려오는 것은 대개의 경우 아무 도움이 안된다. 그러나 미래의 나는 어떻게든 해줄 것임을 알기에- 조금 힘든 지금을 흘려보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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