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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summer Jan 18. 2023

엄마도 아프면서 큰다

너와의 거리두기로 비로소 보이는 너

결국 나에게도 찾아온 코로나 양성. 우습지만 임테기 확인 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계획임신이 아니었기에 확인 할 때 두려움이 컸었는데, 자가키트에 두줄이 뜨기까지와 뜨고 나서 어찌나 심란했던지.


격리 4일 차.

어쩌다 보니 남편도 없이 시댁에서 지내는 동안 이런 일이 벌어진지라 시부모님께 아이를 오로지 맡겨놓은 채 방에서 식판을 받아먹고 눕고 먹고 누워 있자니 대역죄인/폐인이 따로 없다.

얄팍한 마음에 처음엔 거실에서 들리는 까르르 소리에 질투도 나고, 딸이 엄마보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더 따르는 거 같아서 시샘도 났다. 조부모님의 손녀에 대한 무한한 허용에 내가 애써 지난 3년간 세워뒀던 규칙들, 그 얄팍한 훈육을 통해 정립해둔 루틴들이 막무가내로 무너지는 걸 견디는 것도 솔직히 힘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저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만 들었다. 엄마는 아프지도 말아야 한다는데. 딸이 잘 먹고는 있는지, 옛어른들이 아이의 무료함에 대한 이해가 없어 그저 달라는 데로 우유 한 컵 두유 한 컵 다시 우유 한 컵 그렇게 내주어 매끼니는 정작 거르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멀쩡할땐 그렇게도 내심 혼자 놀았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막상 혼자 잘 놀고 있으니 기특하시다는 소리가 괜스레 마음 쓰였다. 코로나로 몇년을 못보다 오랜만에 만난 손녀가, 처음에는 코딱지 조차 이뻐서 어쩔 줄을 모르시고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예쁜 손녀라며, 에바가 저절로 태어난 것처럼 며느리는 아예 안보이셨던 분들이 결코 보고픈 모습만 볼 수 없는 찐육아를 통해 3일째 저녁부터 질려하시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도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혈통인데, 내 새끼 내가 내는 짜증은 괜찮아도 '제3자'의 타박은 견딜 수 없었던 것일까. 가만있지 못하고 방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바짝 기울이며 발만 동동 구르다가 조금씩 방문을 열고 나는 이쪽에서, 저쪽의 사람들에게 디렉션 아닌 디렉션, 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에바야 밥 잘 먹어야지

-에바야 할머니 할아버지 말씀 잘 듣고 조금만 힘내자

-엄마가 아파서 미안해


그런저런 말들을 건네는데 에바도 삐쭛삐쭛 거리며 나를 멀찌감치서 빤히 쳐다본다.

'엄마가 아프니까 지금은 네가 도와줘야 해. 엄마한테 가지 마. 네가 도와줘야 엄마가 낫지 어이구 착하지 우리 똥강아지.'

라는 할머니의 말을 손녀딸은 철저히 따르고 있는 듯했다.


나는 나의 딸에게 '말 잘 듣는' '착한'이란 수식어를 달아주고 싶지 않았고 강요하고 싶지 않았는데. 말 잘 들으라는 말이, 착하다는 말이, 왜 그리 싫은지. 나 역시 자주 들으며 커왔던 그 말이 무조건적인 사랑과 보호의 책임으로부터 어른을 지켜주는 말로 치사하게 들렸나 보다. 상대방에게 다른 옵션이나 여지를 주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 같은 그 어감이 싫어 그 말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요 사나흘 간 거실에서 가장 많이 들린 단어들이었고, 나 역시 내 자식을 맡겨놓고 누워있자니 절로 그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 빤히 쳐다보는 깜장 눈망울.

몇 초간을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바라봤다.


'이런 표정도 하줄 아는구나, 엄마한테 다가올 땐 스스로 마스크도 할 줄 아는구나, ...너도 엄마를 그리워 했구나. 엄마는 몰랐구나...'


"엄마 아직 아포? 조금만 아포? 많이 아포?"

-에바 덕분에 나아지고 있어. 조금만 아파. 얼른 나을 테니까 조금만 힘내

"... 내 마음이 아파. 엄마가 아푸니까 내 마음이 아파. 엄마가 아푸면 에바마음도 아파."

-걱정하지 마! 엄마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세 살짜리 딸이 언제 이렇게 컸을까. 대견함이 아쉬움으로, 아쉬움에 마음이 아려온다.


사랑하는 우리 딸.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말이 이런 말이구나.

만지고 싶은 우리 딸.

꼭 안아주고 싶은 우리 딸.

손 잡고 밖으로 나가 세상 여기저기 보여주고 싶은 나의 소중한 딸.

그토록 듣기 싫었던 징징거림이, 짜증이 치밀었던 딸의 반사적인'시러'라는 생떼도 내가 놓쳐왔던 소중한 '일상의 하나'였 음을 깨닫는다. 다시 그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가게 된다면, 그때는 한 발짝 물러서 나와 내 아이 사이에 통기구멍을 만들 것이다.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지.


너만 아프지 않으면 엄마의 아픔은 어떻게든 될테니. 애들은 아프면서 큰다던데 엄마도 그런가보다.


네가 아프지 않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벽 너머로 들려오는 너의 목소리에 기도해.



[번외] 나와의 히스토리는 차치하고 (시)부모님들께도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최고난도의 육아를 하시다 보니 당연히 볼멘소리도 나오실 테고 당황스럽기도 하실 텐데. 영상 하나 없이 정말 열심히 봐주신다. 내리사랑이 뭔지.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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