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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summer Feb 13. 2023

반쪽짜리 엄마.

아직 엄마가 다 되지 못한 여자 이야기

"다녀왔습니다"


퇴근길, 그날 따라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했던 날.

어디 주포라도 들러 맥주 한잔 할까 하다가 괜찮은 남편이 보내온 아이의 저녁식사 영상에서 들려온 '아이라뷰 마미' 한 소리에 그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자 싶어 서둘러 귀가 한 밤.


아이와 남편은 퍼즐에 열중해 있었고 아이는 나를 본체만체 한다. 그나마 남편만이 나에게 인사를 건네주었는데 그마저도 성에 차지 않았고 갑자기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감정적으로 변하는 건 아주 순간이더라.


"엄마가 힘들게 일하고 왔으면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해야지! 그건 기본 중에 기본이야! 아니 엎드려 절 받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옛날 드라마에 집에 와도 애새끼나 여편네나 말이야~ 하는 아버지들 톤이었다. 그랬다, 정말 그때 꼴불견이었던 우리네 옛 아버지상이 나와 겹쳐있었다. 어찌나 이해되던지. 내가 누구 때문에 일하는데!라고 하고 싶진 않았지만 밥통엔 말 그대로 밥만 있고 변변찮은 반찬 하나 없이 뭘 먹으라는 건지. 맞벌이하는 처지에 손수 차려준 밥상을 기대 한건 아니지만 편의점 음식이나마, 저녁에 뭔가 먹을 것이 있길 바랐다. 이 사람은 왜 내 퇴근시간을 체크했던 것인가, 그저 육아가 힘들어서 분담해줄 동료가 필요해서 였던 걸까.

나의 얼그러진 마음에 내가 이상으로 그려오던 가족상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다 반 포기 심정으로 그나마 딸이 먹다 남긴 우동과 다 식은 계란 프라이를 먹으려는데 딸이 심술을 부린다. 분명 배 터지게 먹은 거 같은데도 굳이 본인이 2차를 시작하시겠다고 내가 못먹게 그릇을 채간다.


그렇게 딸과 마주한, 침묵의 식탁이 시작되었다. 30분가량 김에 밥만 싸 먹으면서 (김이 이럴 땐 참 불쌍한 소재다.) 눈물이 나는데 딸이 그런 나를 묵묵히 쳐다보며 눈치를 본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밴댕이소갈딱지.

중간반성이 시작되지만 나의 상한 마음은 좀처럼 돌아오질 않는다. 거기다 남편 역시 나의 퇴근 직후의 '짜증 바람'에 삐쳐있고 그 모습이 나를 더더욱 화나게 만든다. 섭섭하다, 서운하다, 서글프다. 이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무언가 잘못했을 때 진심으로 사과하고 다가가면 내 딸은 언제나 날 꼭 안아주며 용서해 주었는데. 정작 어른의 마음이 그렇지 못해 괴롭다.


고작 다녀오셨어요 한마디 듣지 못해서였을까.

괜찮은 남편에 대한 기대감이 큰 것에 대한 실망이었을까. 시위였을까.

그냥 그런 날도 있었을까.


어찌 됐건 화풀이었던 걸까...


무엇이 되었든 내 딸이 내 감정쓰레통이 되어선 안되고

남편한테 맞은 뺨을 푸는 한강 옆이 되어서도 안되고

난 엄만데.

엄마는 엄마의 자리에서 엄마로서의 도리를 해줘야 하는 건데.


어설프게 배운 육아 지식에 점점 마음만 괴로워져 가면서도 딸이 마주쳐주는 눈빛, 우동을 먹고나니 본인 마음이 좋아져서 이제는 엄마를 안아주고 싶다는 딸의 손짓, 말 한마디를 본체만체하는 나.



그런 나를 에바가 안아주고 끊임없이 바라봐주고 토닥여준다.

잠자리에 들어서는 내쪽으로 파고든다.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내 얼굴을 쓰다듬어준다. 볼에 뽀뽀를 해준다.


응석받이는 나다.


언젠가- 내 딸이 그런 적이 있다.

"내가 나중에 엄마의 엄마가 될게?!"

아빠는 엄마랑 아빠가 있는데, 엄마는 엄마의 엄마가 없으니 엄마의 엄마가 되어준다고 했던 딸.


나는 반쪽짜리 엄마. 너에게 그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게 얼른 나머지 반도 차오를게.


이미 우리 엄마도 사랑하지 못할 만큼의 사랑으로 나를 감싸주는 딸의 부대끼는 살이 보드랍다.

녹아내리는 아이의 두 볼에 철벽 치는 내 마음이 아파오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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