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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summer Mar 24. 2023

내 딸의 말, 말.

따뜻하고 다정해서 소중한 말의 기록


비 오는 어느 날.

싱글 때조차 현관밖으로 나서지 않을 그런 날씨에 딸아이 미술 체험 약속 지켜주겠다고 꾸역꾸역 그렇게 집을 나섰다. 다른 친구들도 오는 자리였기에, 집안에서 엄마 아빠랑 있는 것보다 아이에게 좋겠지 싶어 그렇게 나선 길. 비옷을 걸치고 내 인생 처음으로 비 오는 날 유모차를 끄는데 피렌체 저리 가라 울퉁불퉁 돌길에 얼마나 힘이 들던지 욕만 안 했지 힘들다 툴툴대니 유모차 안에서 경쾌한 딸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 마! 비 오는 날 힘들 텐데 데리고 나와줘서 고마워요!

엉엉

그대로 한방 훅 맞아 주저앉을 뻔했다.

너무나 미안하고 엄청난 감동에 가슴이 가득 차,  열심히도 유모차를 밀었다. 어떻게 저런 게 내 뱃속에서 나왔단 말이지.



그렇게 이미 30분은 탔고 30분은 더 먼 길을 가야 하는 지하철 안.

스마트폰을 보여주지 않는 우리 집은 이동 중 주로 스낵을 먹거나 대화를 나누며 가는데 스낵도 떨어지고 딱히 책도 가져오질 않아서 슬그머니 두 손가락만 딸아이의 어깨에 올려보았다.


"넌 누구니?"


음... 왜 그랬을까, 순간적으로 저팔계라고 대답하며 저팔계 노래를 불렀다.

-나는 나는 저팔계, 왜 나를 싫어하나~♪

"안녕, 나는 에바야"

-(꿀꿀이 목소리를 내며) 안녕 나는 저팔계야 나는 친구들이 싫어해

"왜?"

-뚱뚱하다고.


아차, 싶었다.

내가 왜 이런 미모지상주의 같은 개념을 딸아이에게 주입시키려고 하는 건가. 이런 모자란 엄마 같으니.

나 자신의 짧은 코멘트 실력에 자책하며 딸아이가 뭐라 대답할까 걱정반 기대반으로 기다리는데 (내 깜냥으로는 일차원적인 대답을 기대했던 것 같다. 너 안 뚱뚱해~라든가 그냥 웃어넘기든가.)


그런데 딸이 지긋이 바라보며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두 손가락을 포개어 쥔다. (따뜻했다)


예뻐

너의 예쁘다는 위로.

말에서 느껴지는 너의 드넓은 우주.

따스히 포개오는 너의 두 손에서 느껴지는 다정함.


모든 것이 소중해.

내 딸이지만 너 왜 이렇게 예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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