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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혜 Mar 23. 2017

통역사의 영어공부 비법

무슨 일 하세요?
통역사예요
영어 되게 잘하시겠네요!


내가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대화의 시작은 90%가 똑같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통역사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것 같다. 자연스럽게 그다음 대화는 영어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 영어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에 대한 상담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런데 내가 다시 "왜 영어를 잘하고 싶으세요?"라고 물으면 대부분은 대답을 선뜻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통역사가 되고 나서 직업상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영어가  필요한지, 영어를  잘하고싶은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조건 영어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해주고 싶은 조언은 우선 자신에게 영어가 왜 필요한지를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자신에게 필요한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강원대학교에서 영어 동기부여 특강을 한 적이 있다. 취업과 진로 고민이 가득한 학부생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영어를 왜 잘하고 싶으세요?" 역시나 대부분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다 "취업할 때 필요하니까" "영어는 그냥 잘해야 하니까" "다들 잘하니까" 등등 내가 예상했던 대답 몇 개가 나왔다. 나는 다시 물어보았다. "졸업하고 무슨 일을 하고 싶어요?" "꿈이 뭐예요?" 나는 이렇게 물어보면서 혹시나 학생들이 꿈이 없다거나, 졸업 후 하고 싶은 일이 딱히 없다고 하면 어쩌나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런 대답을 들으면 나까지 무기력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번에는 학생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손을 들고 대답을 했다. 그중에는 "저는 사회체육전공인데, 나중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건강하게 운동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어요!"라고 했던 친구, 그리고 "저는 거미학자가 되어서 연구를 많이 하고 싶어요!"라고 했던 친구도 있었다. 자신의 꿈이 확실한 친구들을 보니 나까지 신이 났다. 나는 그 친구 둘을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은 취지로 설명해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잘할 필요는 절대 없다. 다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좀 더 잘 하기 위해서 영어는 굉장히 유용한 수단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막연히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영어가 왜 필요한지, 내가 영어를 활용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거미학자가 되고 싶은 친구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가서 새로운 곳에서 학업을 계속할 수도 있고, 또 장차 학자가 되어 연구를 할 때에도 다른 나라의 과학자들이 쓴 논문을 읽거나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해서 나의 연구실적을 발표할 일이 생길 텐데 그때 내가 연구한 내용을 영어로 설명하고, 다른 나라의 학자들과 교류하기 위해서 영어가 꼭 필요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친구는 유학에 필요한 영어시험 준비, 그리고 학술논문을 쓰고 읽을 수 있는 reading과 writing 능력이 필요하니 그에 맞게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다른 예로, 지인의 부탁을 받아 여배우 한 분의 영어 과외를 잠시 한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그분을 만났을 때 내가 처음 물어본 것은 "영어공부를 왜 하고 싶으세요?"였다. 나는 연예인이니 해외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거나, 영어를 사용하는 배역을 맡을지도 모르니 그에 대한 대비를 하려는 줄 알고 그에 맞게 외국 여배우들의 인터뷰 자료와 해외 잡지, 영상자료 등을 준비해 갔다. 그런데 대답은 뜻밖이었다. 아기가 이제 3-4살이 되어 어린이집에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는데 엄마도 영어를 공부해서 아기에게 영어 동화책도 읽어주고, 영어노래도 같이 불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유아용 동화책과 영어교재를 잔뜩 사 왔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background를 가지고 있고 남과는 다른 story를 저마다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필요한 것, 자신이 원하는 것이 모두 다 다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영어공부도 자신에게 필요하고 맞는 방법과 목표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통역사들은 어떻게 영어공부를 할까? 

통역사들도 영어공부를 해요? 

하고 물어보는 분들이 많았다. 물론 해외 거주기간이 길어 네이티브 수준으로 영어를 말하는 통역사들도 많고, 순수 국내파들도 많아서 개인차는 있겠지만 영국에서 고등학교만 잠시 다닌 해외파도 아니고 그렇다고 순수 국내파도 아닌 내가 통역사로 일하면서 영어를 공부하는 방법을 소개하려고 한다. 따라서 그와 같은 나의 background와 필요에 맞춰진 지극히 나만의 방법일 수 있다.


1. listening

일단 나는 무조건 귀가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을 최대한 늘리려고 노력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영어방송을 틀어두고 집에 있는 동안은 다른 일을 하더라도 background music처럼 영어방송을 최대한 많이 틀어두려고 한다. 동시통역을 하기 위해서는 연사의 말을 듣는 동시에 머릿속에서 그 논리를 이해하고 분석, 종합해서 다른 언어로 reproduce를 해야 하고 내가 하는 통역 또한 다른 한쪽 귀로 들어야 하기 때문에 뇌쪼개기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무슨 일을 하든 집에서 또는 운전하는 동안 background music처럼 영어방송을 틀어두었던 게 나는 도움이 되었다. 어려운 내용의 번역을 집중해서 하다가도 틀어둔 영어방송의 내용이 순간순간 귀에 쏙 들어오는 경험을 한 뒤로는 더 부지런히 틀어두게 되었다. 한국어는 영어와 달리 억양이 없는 언어이기 때문에, 귀가 영어의 "멜로디"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최대한 자주 노출시켜주는 것이 좋다. 


또 국제회의 통역을 가보면 영어권 국가의 연사보다 비영어권 국가의 연사가 영어로 말하는 것을 통역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인도식 영어를 하는 연사들은 통역사들 사이에서도 까다로운 연사로 손꼽힌다. 그런데 나는 영국에서 지낼 때 홈스테이를 했었는데 호스트 아주머니가 인도분이셔서 자연스럽게 그 악센트에 익숙해질 수 있었고 또 한국에 온 직후 한동안은 연음이 많은 미국 영어가 오히려 잘 안 들렸던 적도 있어서, 다양한 악센트의 영어를 두루두루 들어보려고 한다. 영국, 호주, 미국 방송을 두루두루 들으려고 하는데 특히 BBC World Service 방송은 해외 각국의 특파원들 인터뷰 때 비교적 다양한 악센트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미드나 영화를 여러 번 반복해서 보는 방법을 많이들 시도하는 것 같다. 안 들리는 부분은 수십 번이고 다시 들어보면 끝내 들리니 들릴 때까지 끈기 있게 들어보라는 조언을 나도 크면서 여러 번 들었다. 그런데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내가 모르는 표현이나 단어일 경우 백번 들어도 죽어도 안 들린다. 한국어 뉴스를 듣다가도 내가 모르는 어려운 한자어가 나오면 처음엔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하물며 영어는 어떻겠는가. 주눅 들거나 괴로워할 필요 없다. 그럴 때는 스크립트를 찾아보거나 외국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그 단어를 정확히 알아낸 다음 거꾸로 다시 그 부분을 들어보면, 이 단어를 이렇게 발음하는구나, 이렇게 생긴 단어가 이렇게 소리가 나는구나 하고 알 수 있다. 이렇게 반대로 공부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자괴감도 덜 든다.


2. writing

직업상 나는 내가 창의적으로 글을 쓰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영어로 또는 한국어로 번역을 한다. 그래서 좀 더 좋은 영어 표현 또는 한국어 표현을 많이 익혀두면 내가 번역할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고, 완성된 번역문의 퀄리티도 좋아진다. 따라서 나의 목표는 내가 좋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더 좋은 표현으로 더 정확하게  번역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방법은 한국어 또는 영어잡지를 읽으며 하이라이트를 하는 것이다. 내용보다는 표현에 집중해서 내가 몰랐던 단어, 다음에 써먹어보고 싶은 표현 등이 나오면 하이라이트를 해두고 틈틈이 다시 뒤적여보면서 기억해둔다. 통역대학원 입시 준비를 할 때 소위 "뒤집기"라는 것을 많이 한다. 연습장을 세로로 반을 접어 한쪽엔 한국어, 다른 한쪽엔 영어를 적어두고 한쪽을 가린 다음 한국어만 보고 영어를 떠올리고 또 반대로 영어만 보고 해당 한국어를 떠올리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과->apple"과 같이 한국어와 영어가 완벽하게 1:1로 match 되는 경우는 한정되어 있다. (p.s. 우리 통역사들은 다양한 전문분야의 회의 통역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래서 이 말을 들으면 다른 통역사 선생님들은 사과에도 얼마나 많은 종류가 있으며, 각각 쓰이는 전문용어가 얼마나 다양한데! 하실 것이다. 나도 100% 공감한다. 하나의 예일뿐이다.) 어차피 언어체계와 사고방식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좋은 한국어 표현을 찾아서 적어두었더라도 꼭 맞는 영어 대응 표현을 찾지 못해 비워둔 칸이 수두룩하기 일쑤였다. 영어->한국어 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한국어 표현을 들었을 때, 또는 읽었을 때 조금 있어 보이는 것 같아 다음에 활용하려고 적어두었다가 꼭 맞는 영어 표현을 찾지 못해 내가 그 한국어 표현을 영어로 번역해서 사용하려 하면, 영어로 들은 외국인들에게는 내가 느꼈던 그 "있어 보임"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한국어는 한국어로 들었을 때 자연스러운 표현, 그리고 영어는 영어로 들었을 때 자연스러운 표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뒤로는 굳이 뒤집기를 하기 위해서 1:1 짝 맞추기를 하지 않게 되었고, 좋은 한국어 표현이 있으면 한국어 그대로, 그리고 마음에 드는 영어 표현이 있으면 영어 그대로 내 머릿속의 데이터베이스 속에 넣어두려고 한다. 그러면 비슷한 맥락의 한국어가 나오면 그 좋은 영어 표현을 조금 바꿔서 활용할 수 있고, 영어에서 한국어로 갈 때도 마찬가지로 활용할 수 있다. 즉 한국어와 영어를 따로 익혀두더라도 어느 정도 데이터베이스가 차게 되면 자연스레 두 언어가 만나는 접점을 찾게 되는 것이다. 


3. reading

무조건 많이 읽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 이 문장이 바로 위에서 말했던 어색한 뒤집기의 예가 될 수 있겠다. 영어식 표현이라 한국어로 번역해서 사용하니 어색하게 들리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무언가를 읽을 때 하이라이트를 해가며 읽는 버릇이 있어서 어떤 글이든 읽는 속도가 굉장히 느리다. 통역대학원을 다닐 때 한 교수님께서도 "우리는 그래서 뭐든 빨리 못 읽어~" 하셨던 게 기억이 난다. 심지어 술술 읽혀야 할 한국어로 쓴 소설책을 읽을 때도 "있어 보이는" 단어가 나오면 표시하고 싶어서 연필을 찾게 된다. 고려대학교에서 국제법 석사과정 course work를 할 때에는 영어로 쓴 국제법 교과서, 논문 등등 학술적인 글을 많이 읽었고 또 그 당시 외교부에서 인하우스로 일하고 있을 때라 회사에서 일을 할 때에는 조약문, MOU, 정부문서 등등의 법률문서들을 많이 읽고 번역했다. 그래서 나는 영어로 쓴 말랑말랑한 소설보다는 딱딱한 조약문이나 계약서 같은 법률문서가 훨씬 더 잘 읽힌다. 소설, 잡지, 신문기사, 전공서적 등등 장르를 불문하고 무조건 많이 읽는 것은 분명히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고 필요한 분야의 글들을 많이 읽으면 자신의 필요에 맞게 활용할 수 있다. 나의 경우 눈으로 많이 읽어서 익숙해진 법조문, 계약서의 표현이나 단어들이 번역을 하거나 통역을 할 때 비교적 쉽게 나오기 때문에 일할 때 많은 도움이 된다. 가끔 한국어->영어 번역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어떤 영어 표현을 써놓고는 "내가 이런 표현을 어떻게 알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교수님께 여쭤보니 평소에 읽어서 머릿속 데이터베이스에 들어있었던 표현이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셨다. 많이 읽어서 눈으로 익혀두면 필요할 때 써먹을 수 있다. 


통역을 하다 보면 그 회의의 주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는 연사들이 굉장히 많다. 건축 시스템 관련 국제회의를 통역하러 갔는데 갑자기 한 연사가 런던에서 있었던 테러로 인해 목숨을 잃은 분들을 추모하는 취지의 메시지를 말하기도 한다. FTA 협상자리에서 ice breaking 차원으로 메이저리그 야구경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평소에 신문, 잡지를 부지런히 읽으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두루두루 알아두고 각 상황에서 주로 쓰는 key words를 익혀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야구에 전혀 관심이 없더라도 적어도 연사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듣고 사고 없이 통역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즐겨 읽는 잡지는 통역사들의 바이블과 같은 The Economist, 몇 년 전부터 좋아하게 된 Monocle 등이 있고 외교부에 다닐 때에는 Foreign Policy 같은 잡지를 주로 봤는데 startup 관련된 일을 많이 하게 된 요즘엔 Bloomberg Businessweek를 종종 본다. 신문은 FT, Guardian을 좋아하고 New York Times도 가끔 읽는다. 그리고 나만의 습관이 하나 있는데 극장에서 외국영화를 보면 꼭 그 책을 사서 읽어본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 놓쳤던 대사나 잘 알아듣지 못한 표현들을 책을 읽으면서 다시 이해할 수 있어서 좋다. 


4. speaking

나는 소위 말하는 "네이티브"가 아니다. 그래서 통역사로 일하면서도 항상 내가 네이티브가 아니라는 점을 내 스스로 약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국인 친구에게 내가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뜻밖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친구는 한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쳐봤는데 영어를 네이티브 수준으로 잘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지만, 자신의 말이 아닌 다른 사람이 한 말을 잘 통역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영어만 조금 잘하면 통역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도 "영어를 잘하는 것"과 "통역을 잘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라고 힘주어 주장하곤 했는데, 정작 나는 그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뒤로는 다시 마음가짐을 고쳐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더 채워나가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위에서 말한 listening, reading, writing 이 세 가지 모두가 탄탄히 잘 되면 speaking을 잘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이 되는 셈이다. 거기에다 조금의 skill을 더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고향이 부산인데 지리적 영향 때문인지 부산 사투리에는 일본어 표현이 굉장히 많고, 부산사람들이 일본어를 하면 굉장히 잘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억양이 비슷해서 그렇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영어로 말을 잘할 수 있는 skill을 연습할 때 중요한 것 하나가 바로 억양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어려운 단어를 사용해서 완벽한 문법에 맞춘 문장을 말하더라도 아무런 억양이 없는 한국어처럼 영어를 말하면 절대 잘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을 것이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유학을 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도 국제학술세미나에서 발표를 할 때 영어발화가 그다지 좋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좋은 방법 중 하나는 shadowing이다. 내가 닮고 싶은 앵커가 있으면 제일 좋다. 외국방송 중 하나를 골라 그 방송을 따라서 말해보는 것이다. 실제로 따라 해 보면 그냥 들을 때 보다 굉장히 속도가 빠르게 느껴질 것이다. 통역사들은 한국어 발화도 좋아야 하기 때문에 한국어 뉴스를 따라서 말하는 연습을 하기도 하는데, 모국어인 한국어로도 따라서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어방송을 들으면서 찰나의 간격을 두고 앵커의 억양과 pause 등을 똑같이 따라 말해보는 연습을 많이 하면 내가 혼자 말할 때 fluency가 좋아지는 것 같다. 나는 통역이 있는 날 아침에는 잠깐이라도 shadowing을 하고 간다. 운동선수들이 시합 전 스트레칭으로 몸을 푸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외국인 친구와 lesson 시간을 가진다. 발음 교정도 받고, 통역하면서 너무나 한국적인 표현으로 통역할 수밖에 없었던 내용이나 어려웠던 내용을 좀 더 자연스럽고 좋은 영어 표현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의논하기도 한다.


   

통역은 1:1 단어 바꾸기가 아니다. 한국어로 말했을 때 한국사람들이 느끼고 인지하는 것을 영어로 옮겼을 때 외국사람들이 똑같이 느끼고 인지하는 효과를 내는 것이 통역이다. 즉, 단어 하나하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가장 알기 쉬운 예로, 기자회견 통역을 가면 진행자가 기자분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질문이 있으신 분은 손을 들고 소속을 밝힌 후 질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이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시켜보면 통역을 처음 배우는 학생들은 자신 있게 "If you have any question, please raise your hand and..." 까지 말하고 나서 잠시 멈칫한다. 

"소속"이 영어로 뭐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소속"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한국적인 표현이다. 한영사전에서 찾은 단어로 통역을 하면 아마 외신기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표현은 "please identify yourself."이다. 이 말을 들은 외국기자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속한 방송국과 이름을 밝히고 질문을 할 것이다. 즉, 소속을 밝혀달라는 한국어를 들었을 때 한국 기자들이 "네, 저는 OOO방송국 OOO 기자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외국기자들은 "소속"이라는 한국어 단어에 해당하는 영어단어가 아닌 "identify yourself"라는 말을 듣고 자신의 "소속"을 밝히게 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통역"이다. 한국어를 듣고 한국사람들이 반응하는 것과 동일하게 영어를 듣고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반응하도록 하는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 이것이 통역이고 내가 좋아하는 거부할 수 없는 언어의 매력이다. 


아주 작은 예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통역이라는 것, 즉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넘나드는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면서도 가장 어렵게 느끼는 일이다. 인하우스로 일했던 기간을 포함하면 올해로 벌써 7년 차이지만  "오늘 통역 정말 잘했다"라고 느꼈던 적은 부끄럽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다. 통역을 한 날 밤엔 언제나 실수했던 부분이나 스스로 느꼈던 부족한 점에 대해 자책하느라 잠을 못 이룬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래서 항상 긴장하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습하게 된다. 






[법과 영어 연구소 아우디오 랩]

https://www.instagram.com/audiolab.chl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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