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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비안 Dec 11. 2017

[공연 후기] 벨체아 콰르텟 in Seoul

가장 완벽한 사중주, 벨체아 콰르텟

벨체아 콰르텟 | Belcea Quartet
Corina Belcea, Violin
Axel Schacher, Violin
Krzysztof Chorzelski, Viola
Antoine Lederlin, Cello

2017. 12. 08 (금) 오후 8시 / 롯데콘서트홀
Program
Joseph Haydn : String Quartet No. 27, Op. 20-4 (Hob.III:34)
Gyorgi Ligeti : String Quartet No. 1 "Metamorphoses nocturnes"
Ludwig van Beethoven : String Quartet No. 13, Op. 130 with Grosse Fuge, Op. 133

2017. 12. 09 (토) 오후 7시 / 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홀
Program
Joseph Haydn : String Quartet No. 27, Op. 20-4 (Hob.III:34)
Antonin Dvorak : String Quartet No. 14, Op. 96 " America"
Felix-Bartholdy Mendelssohn : String Octet, Op. 20


목프로덕션의 2017년 마지막 기획 연주인 벨체아 콰르텟의 내한공연. 아마 2017년 연주기행(이라 쓰고 돈x랄이라 읽는...)을 마칠 때 언급을 할 것 같다. 올해 갔던 연주 중 가장 행복했던 공연 중 하나였을 거라고.

작년 이맘때 쯤 공개된 목프로덕션의 2017년 기획 연주 중에는 벨체아 콰르텟의 연주가 있었는데, 벨체아라는 이름은 노부스 콰르텟의 팬들에겐 꽤나 익숙해져 있었다. 노부스 콰르텟이 실내악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친 후였을지, 끝나갈 즈음이었을지는 모르지만 벨체아 콰르텟의 멘토쉽 프로그램의 수혜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진게 그 이유였고, 말하자면 노부스 콰르텟의 마지막 스승이었던 콰르텟 팀인 셈이다. 그래서 연초부터 기대를 많이 하던 바였고, 운이 좋게도 난 롯데콘서트홀의 가장 앞줄에 앉을 수 있었다.

벨체아 콰르텟은 보면대에 종이 악보를 놓고 넘기지 않고 아이패드에 pdf파일을 담고 발 밑에 위 아래 버튼이 있는 간단한 기능을 하는 패드를 발로 밟아서 악보를 넘겼다. 요즘 젊은 팀들은 점점 더 이 방법을 활용해가고 있는데 실제로 눈으로 본 건 처음이라서 신기했다. 

근데 개인적으로 충격적이었던 점이 있는데, 이 콰르텟은 각자 파트의 파트보만 보는게 아니라 콰르텟 스코어를 놓고 4줄짜리 악보를 본다는 거였다. 아이패드를 큰 걸 사용하긴 하는데 그래도 음표가 너무 작게 보일텐데... 그 말인즉, 4명 모두 이미 개인 악보는 암보 수준으로 익숙하게 익혀놓고, 다른 파트 악보까지 순간적으로 판단하면서 악상을 조율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Joseph Haydn : String Quartet No. 27, Op. 20-4 (Hob.III:34)

사실 청자 입장에서 하이든이라는 작곡가는 연주장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편이고, 듣고 싶은 곡으로 자주 꼽는 작곡가 역시 아니다. 하지만 현악사중주라는 장르에서는 얘기가 완전히 다른데, 하이든은 (수십인지 수백인지) 수많은 현악사중주 곡을 썼고 현악사중주라는 장르를 탄생 및 확립시킨, 음악사 전체에서 바흐만큼이나 중요한 작곡가이기 때문. 그래서 하이든의 사중주 곡은 기본 레파토리로서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기준이 되는 곡이기도 하다. 오늘 들었던 이 곡은 Sonnenquartet, 태양 사중주라고 불리는데 곡의 내용과는 전혀 관련이 없고, 단지 출판 시 악보 표지에 떠오르는 태양이 그려져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벨체아 콰르텟은 이 곡을 연주할 때 현대식 활을 쓰지 않고 고전 시대의 활을 사용하여 음의 형태를 결정했다. 또한 non-vibrato는 아니지만 비브라토를 가능한 한 절제한 것처럼 보였는데, 아무래도 하이든의 곡 중에서도 초기 곡이었기 때문에 작곡가가 의도했던 바를 충실히 구현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이 곡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악장은 2악장이었는데, (형식적으로 이해하기가 제일 쉬운) 주제와 여러 변주 형식이라서 주제가 제시되고,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변주에서 캐릭터가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훌륭한 사중주단이 항상 그렇듯 벨체아 콰르텟 역시 4명의 주자의 균형이 굉장히 탄탄하게 잡혀 있었고, 세컨 바이올린과 첼로, 퍼스트 바이올린이 각각의 변주에서 여과없이 보여주었다. 특히 첼리스트 레데르렁(프랑스어라서 우리나라 발음이 없다 르데엏렁 정도 발음인데...)의 솔로 실력이 너무 훌륭해서 사실 난 이 분 첼로 소나타나 협주곡을 듣고 싶었다는 생각이 연주 내내 끊이지 않았다. 2악장에서 이어진 3악장은 3박자의 미뉴에트와 트리오였는데, 트리오는 거의 뭐 첼로 협주곡 수준으로 하이든이 곡을 써놨는데 (물론 하이든은 교향곡에도 특히 트리오에 첼로 솔로를 넣어놓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다) 그걸 정말 멋지게 연주한 레데르렁이 더욱 빛났다.  


Gyorgi Ligeti : String Quartet No. 1 "Metamorphoses nocturnes"

참 들을 기회 없는 곡인데 벌써 두번째다. 작년에 처음 들은 이후로 사실 자주 즐겨 듣지는 않았는데, 오늘 연주는 정말 귀에 쏙쏙 들렸다. 단악장의 곡이지만, 20여번의 템포 변화를 가지고 구획을 나누는 곡인데 이번 감상에서는 템포의 빠르고 느림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집중해서 들었다. 이 곡만큼은 벨체아보다는 비올리스트 호젤스키의 컨트롤이 빛을 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어떤 곡이든 벨체아가 모든 순간에 직접적인 통제나 호흡을 주는 건 지향할 방향은 아니지만, 이 곡은 비올라와 첼로가 템포와 음향을 결정하는 부분이 많아보였고, 호젤스키의 발구름과 자리에서 들썩들썩 움직였던 제스쳐가 다른 곡에서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Ludwig van Beethoven : String Quartet No. 13, Op. 130 with Grosse Fuge, Op. 133

대망의 베토벤 사중주. 베토벤이 말년에 쓴 5곡의 사중주와 번외 악장 대푸가를 놓고 보면 대푸가만큼 '강렬한' 곡이 없다. 원래 베토벤의 의도대로 사중주 13번과 함께 연주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감상 포인트일 것 같다. 사실 베토벤의 후기 현악사중주는 정말 연주되는 경우가 잘.. 없다...... 어려운 것은 이해하지만 너무 아쉽고, 더더욱 이 연주에 기대가 되었다. 

벨체아 콰르텟은 몇년 전에 베토벤 사중주 전곡을 녹음하고, 빈 콘체르트하우스 상주음악가로 있으면서 연주도 올린 걸로 알려져 있어서 베토벤과 현악사중주 음악 전반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이 음악을 연주할 때의 지배적인 감정은 자유에 대한 갈망,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진실을 알고자 하는 끝없는 욕망인 것 같다.

베토벤이 살던 시대에서 가졌던 깊은 고뇌와, 청력이라는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인 고통을 겪었음에도 더 높은 차원의 자유로운 음악을 추구했던 점을 실제로 연주에도 담고 싶다는 의지가 돋보인다.


어쨌든, 연주 얘기로 다시 돌아간다면, 이 곡은 정말정말 어렵다. 글을 쓰기 전에 이 스코어를 다시 한 번 봤다. 처음 본 것이 몇년 전이었는데, 그때보다 음악적인 지식이나 내공이 조금은 많이 쌓인 지금도, 이걸 보고서는 이게 사람이 카운트할 수 있는 악보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템포를 놓고 네개의 악기가 모두 다른 리듬으로 연주를 하고, 당김음이 정확한 타이밍에 나와야하고 그러면서도 템포가 조금도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곡의 이름처럼 푸가를 얼마나 잘 구현하냐는 것인데, 즉 네 대의 악기들이 서로가 표현하는 것을 따라 모방하고 대립하고를 겹쳐서, 결과물로서는 하나의 음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호젤스키와 레데르렁의 제스쳐는 정말 이 곡의 별명처럼 헤비메탈을 연주하는 듯, 스포르잔도를 연주하는 부분에서 굉장히 강한 헤드 뱅잉과 발구름을 보였고, 샤셰르와 벨체아는 엄청난 속주 속에서도 피아노와 포르테의 다이나믹 차이를 어마어마하게 가져가고 유도했다. 사실 특별한 감상이랄게 없었다. 그냥 놀라서 와, 저런 연주도 세상에 가능한거였구나, 참... 감탄만 이어갔을 뿐이었다.


벨체아의 내한 공연 둘을 한 글에 쓰려고 했으나 쓰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아무래도 서울 연주로 1편을 마무리하고 대전 연주는 2편으로 이어나가야 할 것 같다.

맨 앞이라 뒤에서 기립박수가 얼마나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연주를 듣고 황홀해 하며 박수를 치느라 정신이 없었어서 돌아보지 않아서 모른다. 분명한건 네 명의 주자가 홀의 여러군데를 눈짓하며 행복한 표정으로 눈인사를 곁들이며 인사를 했다는 것이고, 호젤스키가 앵콜에 앞서 이야기하기를,

너무 고맙습니다. 정말 대단한 청중과 좋은 홀에서 연주할 수 있었어서 너무 기쁘네요. 앵콜로는 쇼스타코비치의 3번 3악장 스케르초를 들려드릴게요.

그러고서 들려준 쇼스타코비치를 듣고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얘네는 방금전에 베토벤 대푸가를 단일곡도 아니고 130의 마지막악장으로 연주해놓고 이걸 할 체력과 집중력이 어떻게 이렇게 남아 있을까... 너무 강렬하고 자극적인 쇼스타코비치였다. 다음번에 벨체아가 언제 내한할지는 모르겠지만 쇼스타코비치의 여러 곡이나, 아니면 얼마전에 낸 음반에서 처럼 베베른과 베르크, 쇤베르크를 프로그램으로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근데 그리고 또 한곡 더 했다. 드보르작 사중주 아메리카의 2악장까지. 고향을 찾는 향수병 짙은 선율을 너무나 아프게 연주하는데, 첼로 피치카토가 쿵, 쿵하고 들리는 것이 그렇게 아픈 심장소리가 또 있었을까. 여기서 그치지 않고 또 첼로로 옮겨간 멜로디는 더 애절하게 사그라들고 말았다.


지금 엘지아트센터에서 2018년 프로그램을 발표했는데 아르테미스 콰르텟과 파벨 하스 콰르텟이 내한한다더라는 소식을 접하긴 했는데, 거기 갈 돈으로 그냥 벨체아 콰르텟의 음반 전집을 사는게 더 좋지 않을까...

우리나라도 피에르 불레즈 잘 Pierre Boulez Saal 같은 좋은 연주장 있어서 벨체아 콰르텟이 상주 음악가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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