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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Feb 15. 2023

<다음 소희>와 지금 우리들

게임회사 사업 PM으로 일하면서 CS(Customer Service, 고객센터) 담당자들과도 많은 접점이 있었다. 특히 유료 아이템이나, 콘텐츠 업데이트, 계정 문제 등과 같은 민감한 사안에서 문제가 생기면 고객센터는 필연적으로 화난 고객들의 '감정쓰레기통'이나 '욕받이'로 기능했다. 기업들이 그렇게나 떠드는 '고객만족'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면서도 회사에서는 가장 후진 취급을 받는 부서 중에 하나이다. 그나마도 경영 효율성을 앞세워 대부분은 계열사로 분사시킨 후 본사에서 주는 여러 복지 혜택이나 보상들에서 배제시키기 일 수였다. 


<다음 소희> 영화에 등장하는 콜 센터도 대기업 통신업체의 계열사다. 직업 고등학교에 다니는 소희는 고3 취업 활동 중이다. 소희 담임은 취업 영업을 하고 있다. 그는 활기찬 사람으로 아이들과도 허물없이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어렵게 확보한 '대기업 콜센터' 일자리는 평소에도 믿음직했던 소희에게 돌아갔다. 


패기의 신입 사원인 소희는 진상 고객들의 쓴맛을 보면서 회사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나간다. 여기서 적응한다는 것은 '고객을 사랑하느라 지쳐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춘'의 모든 에너지가 헤드셋 너머로 빠져나가고 있어도 콜 수를 채우지 못한 소희는 오늘도 정시에 퇴근하지 못했다.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슬픈 예감은 나를 피해 가는 법이 없고 소희는 현실을 견디지 못한다. 이중 고용 계약, 강도 높은 노동에 비하면 매우 하찮은 보상, 지급할 생각이 없는 인센티브라는 신기루, 비인간적인 전시적 성과주의, 이런 조직의 부조리함을 그대로 방치한 대가는 이제 막 사회에 한 발을 내디딘 18살 아이의 목숨이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8492


아무도 이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그럴 아이가 아니다'라는 손쉬운 오해. 유쾌한 담임선생은 영혼을 잃은 소희의 눈동자에서 그 어떤 것도 읽어내지 못한다. 서로 다른 곳을 보며 밥을 먹는 '식구'들. 저마다의 고민을 안은 친구들. 삶의 무게는 모두에게 버겁기만 하다. 


시종일관 나를 헷갈리게 한 것은 유쾌하거나 다정한 멍청이들이다. 소희의 담임선생과 새로 부임한 센터장이 그렇다. 이들은 학교와 조직에서 비합리적인 상부의 지시를 누구보다 더 성실하게 실행해 내는 인물들이고, 활기찬 웃음과 다정한 협박을 겸비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 척하고 있다. 밥벌이에서 분별력이란 내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고민과 마음고생만을 가져올 뿐이기 때문이다. 무지와 무시는 이럴 때 도움이 된다. 순간 나도 이런 인물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소름이 끼쳤다. 


죽음 뒤에도 소희의 삶은 손쉽게 조작되고 지워진다. 이제 슬픈 마음은 거두고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 고객들은 내 안위에는 관심이 없고, 어떤 상황에서도 이 죽일 놈의 "사랑합니다. 고객님"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청년들과 취업, 노동환경에 대해서 상당히 다양한 이슈들을 다루고 있는데 스토리가 탄탄해서 2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정주리' 감독은 한국의 '켄 로치'라 불릴만하다. 계속해서 이런 영화들을 찍을 수 있기를 바란다. 또 배두나 배우에게 반했다. 

나는 분노한 배두나가 교감의 귓방망이를 날렸을 때 속이 너무 시원해서 박수를 칠뻔했다. 겁이 많은 샌님으로 자란 나는 누구에게 맞은 적도 없고 누구를 때려 본 적도 없다. 예전 회사에서 어떤 미친 상사 놈이 술자리에서 나에게 접시를 던졌는데 나는 잽싸게 피할 수 있었다. 하여튼 맞지는 않았다. 그 후 나는 '그 새끼 제발 좀 죽여달라'라고 기도를 많이 드렸다. 종교의 힘을 빌려보려고 했지만 신도 안철수 양반처럼 극중립의 노선을 타고 있는 것인지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망할. 


영화 내내 고작 18살인 소희가 감당해야 하는 이 불합리한 상황들을 함께 경험하며 나는 괴로워했다. 상영관 안에서도 이 얼마 되지도 않는 관객들이 만들어내는 비통한 한숨 소리 때문에 가뜩이나 차가운 공기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실제 사건에서 원청이었던 LG유플러스는 책임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모두는 하여튼 개인의 책임이고 우리는 '각자도생' 해야 한다. 나는 이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너무 결연하고 무섭게 들려서 주먹을 꽉 지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소희의 죽음 이후 얼마나 달라졌는지 잘 모르겠다. 세상은 지금 뒤로 가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다음 소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학생 때 허튼짓을 하지 말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가능하면 '갑'이 되는 기회가 많은 삶을 살아야 하고, 이왕이면 금수저, 정치인의 자식으로 태어나야 한다. 그래야 20대에 퇴직금으로 한 50억 쯤 챙긴 뒤 남은 여생 욜로하며 편히 살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다음 병채>가 되는 것을 노려 볼 수도 있다. 


씁쓸하다. 나는 오랜만에 다시 기도의 힘을 빌려 본다. 


신이시여. 제가 제 삶의 무게에 함몰되지 않게 하시고, 다른 사람들의 안위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부조리에는 귓방망이를 날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 옵소서. 또한 유쾌하거나 다정한 멍청이가 되어 뭣이 옳은지도 모른 채 왈왈 되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대신 이제 저 놈들을 다 죽여달라고 기도 하지는 않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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