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 Side Sep 07. 2021

기도하면 들어주신다?

초등학교 때 집에 자동차가 없았습니다. 자동차를 좋아하던 동생은 자동차가 있는 친구들의 집을 부러워했습니다. 당시 자동차를 살 형편이 안되던 우리 집 사정을 아는지 모를는지 동생은 우리 집도 자동차를 사자고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그런 조르기를 무마하려는 목적으로 하나님께 100일 동안 간절히 기도 하면 들어주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당신 생각엔 그러다 포기하겠지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들어주신 다는 말을 들은 동생은 기도문까지 써서 정말 100일 동안 기도를 했습니다.

정말 100일 후엔 집에 자동차가 생겼을까요?


교회에 다니면서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누가 들으면 그것도 부족하다 하겠지만, 교회생활을 열정적으로 하던 저는 당연히 기도의 기회도 많았습니다.

교인들 앞에서 대표적으로 하는 기도부터 혼자 독방에서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비밀들을 털어놓던 기도까지.

기도의 내용도 다양해 당장 내일의 시험, 우리 가족의 건강, 연애의 문제, 더 나아가 인류 구원의 거창한 기도까지. 기독교에서 기도란 신과 연결하는 전화나 문자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시시콜콜한 것부터 인류의 거창한 문제까지도 털어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이 기독교의 독특한 점일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매우 인격적이고 '한없이 무한한 아버지 비슷한' 이미지 이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혈육의 아버지에게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아무튼 그렇게 털어놓은 기도가 기도 한 데로 이루어지는걸 흔희 "응답받았다"라고 말하고 응답의 조건 또한 매우 개인적입니다. 만약 합격의 문제를 놓고 기도 한다고 할 때, 합격한 사람은 기도해서 하나님이 들어주셨다 라고 생각하겠지만, 불합격한 사람도 하나님이 안 들어주시는 이유가 있을 거다, 혹은 나에게 더 큰 뜻을 품고 계시기에 이번에 불합격된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후자를 일컬어 전자보다 "믿음이 좋다"라고 흔히 말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기도는 나름 쓸모 있는 일입니다. 개인사의 문제든, 세계 인류의 문제든 기도를 한다는 행위 속에서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 자기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시시콜콜 하든, 지나치게 거창하든 뭔가를 놓고 기도 하는 그 시간 자체가 수련이고 명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쁜 세상 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진 다는 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이면 좋을 텐데, 기독교는 늘 더 나아간다고 느낍니다. 내가 더 열심히 기도 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다, 아니 응답하셔야 한다는 생각. 혹은 어떤 일에 대해 열심히 노력했고, 기독교 인으로 기도까지 했느니,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반드시 다른 결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공포스러운 기도이자,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때 스스로도 많이 했었고 주변 기독교인 친구, 후배들에게도 많이 독려했던 "특정 민족이 하나님께 돌아오길" 그러니까 풀이해서 말하자면 "기독교 인이 아닌 특정 민족이 하나님을 모르는 죄에서 빨리 벗어나 기독교인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는 사실 기도라기보다 주술적인 주문에 가깝습니다. 인류의 모든 민족, 모든 인종이 다 기독교 인이면 그건 재앙 아닐까요? 물론 기독교 인들은 이것이 축복이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참, 그리고 당연하게도 우리 집엔 자동차가 안 생겼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교회라는 공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