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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Aug 18. 2021

끈질긴 생명력으로 되살아난 허블 우주망원경

  

2009년 촬영한 허블 우주망원경 (by NASA)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2021년 6월 13일 컴퓨터 고장으로 가동이 중단되었던 허블 우주망원경이 결국 다시 살아났습니다. 허블 우주망원경은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이 공동으로 개발한 최초의 우주망원경으로 1990년 우주왕복선에 탑재해 저궤도에 띄운 이후 30년이 넘게 태양계 저편의 광활한 우주를 관측하며 천문학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워 왔습니다. 지난 6월 망원경의 각종 과학장비를 통제,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페이로드 컴퓨터’가 작동을 멈춘 뒤 여러 방법을 동원해도 되살릴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망원경은 NASA가 고장 원인을 파악하면서 7월 16일부터 다시 정상 작동에 성공했습니다. 관측을 멈춘 지 거의 한 달 만에 수리된 것입니다.





첫 궤도 진입 후 3년 동안 무용지물로 떠돈 우주망원경


1990년 허블 우주망원경을 싣고 발사되는 디스커버리호 (by NASA/exploitcorporations)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그런데 인류는 왜 지상에서 관측하지 않고 우주로 망원경을 띄워서 관측하는 것일까요? 예로부터 천체 관측은 지상에서만 이루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구름이 하늘을 가리면 천체 관측이 어려웠고, 공기 중 작은 입자들에 의해 빛이 산란되거나 대기층에서 자외선·적외선·감마선·X선 등의 다양한 파장의 빛이 흡수되기 때문에 우주 밖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에 1946년 예일대 교수로 있던 미국의 천문학자 라이먼 스피처(1914~1997)가 “거대한 망원경을 우주에 띄우자”는 획기적인 제안을 했습니다. 그는 "망원경을 우주로 보내면 더 멀리,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1960년대 말 허블 우주망원경에 대한 개념이 NASA에서 받아들여져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우주망원경의 개발은 1970년대 중반이 넘어서 진척되었고, 1986년 미국 챌린저호의 폭발 사고로 2년 간 우주왕복선의 임무 수행이 중단되는 등 여러 차례 일정이 미뤄졌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1990년 4월 24일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가 우주망원경을 싣고 궤도로 날아올랐습니다. 


우주망원경의 이름은 외부 은하계의 존재를 발견한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1889~1953)의 이름을 땄습니다. 주 반사경의 지름은 2.4m, 경통 길이 13m, 중량은 12.2톤에 달하며 지상 610km 고도에서 초속 8km의 속도로 97분마다 한 번씩 지구를 돌고 있습니다. 동력은 경통에 부착된 두 개의 태양전지 패널에 의해 제공받으며 내장 배터리에 전력을 비축해 햇빛이 없을 때 사용합니다.


  




5차례에 걸친 대수술 


1993년 첫 정비 임무를 수행 중인 우주비행사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당시 과학자들은 지상에 배치된 망원경과 달리 지구 대기의 간섭 없이 해상도와 빛의 민감도가 높은, 인류가 가진 가장 강력한 망원경의 관측 데이터를 받아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허블 우주망원경이 관측한 천체 사진은 초점이 흐릿했습니다. 원인파악에 나선 NASA는 반사경에 빛이 모이는 자리가 설계보다 약 1.3mm 정도 아래쪽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렇다고 망원경을 지구에 다시 가져올 수도 없었고, 그대로 포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NASA는 1993년 우주왕복선 인데버호를 발사해 12월 2일부터 13일까지 11곳의 장비와 부품을 교체하고 반사경의 초점을 보정하는 정비를 실시했습니다. 당시 수리를 담당한 4명의 우주비행사들은 한 번에 6~7시간씩 5회 이상의 우주유영을 했습니다. 햇빛을 받을 때는 우주유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태양이 지구에 가려졌을 때 플래시에 의지한 어두운 상태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 뒤로도 허블 우주망원경은 큰 수술을 4차례나 더 받아야 했습니다. 두 번째 정비는 1997년 2월 11일부터 21일까지 장비 업그레이드를 위한 교체작업이었습니다. NASA는 7명의 우주비행사를 보내 우주에 떠있는 먼지 안개를 뚫고 은하 중심부의 블랙홀까지 탐지할 수 있는 근적외선 파장의 관측장비를 설치하고 일부 장비를 교체했습니다.


세 번째 정비는 단순한 예방 및 보수 임무를 위해 1999년 12월 우주비행사를 보냈지만 허블 우주망원경에 내장된 항법장치인 자이로스코프 3개가 고장나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임무 개시 며칠 전 자이로스코프의 추가 고장이 발견되면서 정비 작업은 2002년 3월 한 차례 더해져 우주비행사들이 태양전지판을 교체하고 기존 카메라 대신 7600만 달러짜리 최신 관측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덕분에 허블 우주망원경의 시력은 기존보다 10배나 높아졌습니다.


2004년 NASA는 허블 우주망원경의 유지·보수·개선을 위한 우주왕복선 계획은 더 이상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초 허블 우주망원경의 설계수명은 15년이었으니 2005년이면 수명을 채운 셈입니다. 하지만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허블 우주망원경의 운영을 유지하자는 여론이 뜨거웠습니다. 이에 2009년 5월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호가 다섯 번째 정비를 위해 비상했고, 망원경에 새로운 컴퓨터와 자이로스코프, 배터리, 단열재 등이 장착됐습니다. 또한 망원경이 퇴역할 때를 대비해 궤도 이탈이 용이하도록 망원경 바닥에 장치도 부착했습니다. 


  




31년 동안 활약해온 ‘우주의 눈’


허블 우주망원경은 지난 31년 동안 수많은 우주의 신비를 포착했습니다. 허블 우주망원경이 성운, 초신성, 은하 등의 이미지를 촬영한 뒤 지구로 전송하면, 천문학자들은 여기에 색을 입히는 보정 과정을 거칩니다. 망원경이 촬영한 이미지에서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색 정보를 추가로 입히는 것입니다.


1995년 한 천문학자가 아주 엉뚱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아무것도 없는 우주공간을 찍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망원경을 한 번 사용하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미친 짓이라 반대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발상은 받아들여졌고, 1995년 12월 18일부터 28일까지 10일 동안 망원경은 텅 비어있는 하늘 한 곳만을 관측하였습니다. 촬영한 지점의 면적은 100미터 거리에서 바라본 테니스공 크기 정도로, 우주에서는 한 점에 지나지 않는 극도로 작은 범위입니다. 


관측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허블 우주망원경에 달린 카메라(WFPC2)가 10일 동안 연속 촬영한 342컷의 이미지를 한 데 담은 사진 한 장에는 진화 단계가 각기 다른 최소 1500개의 은하가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NASA는 ‘허블 딥 필드(Hubble Deep Field)’로 불리는 이 사진을 공개하면서 1969년 인류 최초로 달 표면을 밟은 닐 암스트롱의 명언을 본 따 “우주의 작은 부분을 살짝 들여다본 것이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위대한 도약(One peek into a small part of the sky, one giant leap back in time)’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허블 딥 필드’ 이미지 (NASA; ESA; G. Illingworth, D. Magee, and P. Oesch, 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Cruz; R. Bouwens, Leiden University; and the HUDF09 Team)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허블 우주망원경의 또 다른 공로 중 하나는 우주의 나이를 추정하는 범위를 좁혔다는 것입니다. 기존에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나이를 100억~200억 년 사이로 추정했습니다. 오차 범위가 무려 50%나 됩니다. 그러나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처녀자리 은하단을 관측한 결과를 토대로 천문학자들이 산출한 우주의 나이는 80억~120억 년으로 오차 범위가 크게 줄었습니다.


2019년에는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천문 역사상 가장 밝은 ‘퀘이사(Quasar)’도 발견했습니다. 퀘이사는 블랙홀이 주변 물질을 흡수하는 에너지에 의해 형성되는 거대한 발광체로, 그 중심에 무거운 블랙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발견된 퀘이사의 밝기는 태양의 600조 배였습니다. 


  

지상 관측에서 시작해 허블 우주망원경을 거쳐 차세대 망원경에 이르기까지 더욱 정밀해지는 우주의 나이 추산 (by NASA)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퇴역을 앞두고 부활을 거듭하다


이처럼 우주의 신비를 밝혀내려는 인류의 작지만 커다란 발걸음에 디딤돌이 되어 온 허블 우주망원경은 극심한 온도 변화와 강력한 우주선(cosmic ray)이 쏟아지는 우주 공간에서도 설계 당시의 기대 수명인 15년을 훌쩍 넘겨 30년 이상을 버티고 있습니다. 허블 우주망원경은 2018년 임무를 마치고 회수돼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에 보관될 것으로 논의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허블 우주망원경을 대체할 제임스 웹 망원경(JWST)의 발사가 수차례 지연되면서 허블 우주망원경은 인류를 대신한 ‘우주의 눈’으로 여섯 번이나 죽었다 되살아나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https://ko.wikipedia.org/wiki/%ED%97%88%EB%B8%94_%EC%9A%B0%EC%A3%BC%EB%A7%9D%EC%9B%90%EA%B2%BD

https://namu.wiki/w/%ED%97%88%EB%B8%94%20%EC%9A%B0%EC%A3%BC%20%EB%A7%9D%EC%9B%90%EA%B2%BD

2020, 조혜인, 허블 우주망원경 - 우주 훑은 30년의 대기록, 과학동아 5월호, pp.60-65.

https://www.nasa.gov/mission_pages/hubble/servicing/index.html

https://www.space.com/29507-hubble-space-telescope-repair-tool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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