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두의 과학 Nov 03. 2021

금성에는 바다가 있었을까?

금성은 지구와 가장 닮은 쌍둥이 행성입니다. 금성의 반지름은 지구 반지름의 95%이고, 질량은 80%입니다. 보통 태양계에서 지구와 가장 비슷한 행성, 또는 생명의 흔적을 찾아볼 만한 행성이라고 하면 화성을 먼저 떠올리지만, 화성은 정작 지구의 절반 크기에 불과하고 질량은 지구의 11% 수준입니다. 금성과 지구, 화성을 나란히 늘어놓은 아래 사진을 보면 세 행성의 크기 차이가 직관적으로 다가올 거예요.

나란히 늘어놓은 금성-지구-화성. 금성의 크기는 지구와 거의 비슷하지만, 화성은 지구의 절반 크기에 불과하다

사진 출처: 금성(Original image by NASA/JPL, Public Domain), 지구(Original image by NASA, Public Domain), 화성(Original image by ESA & MPS for OSIRIS Team MPS/UPD/LAM/IAA/RSSD/ INTA/UPM/DASP/IDA, CC BY-SA 3.0 IGO)






금성, 환상을 벗고 실체를 드러내다


금성에 대한 과학적 사실이 많이 축적되기 전에 사람들은 금성도 인간이 충분히 살아갈 만한 환경일 거라고 상상했습니다. 태양에 가깝다 보니 지구보다는 덥겠지만 크기도 지구와 비슷하고 대기도 갖고 있으니까요. 표면이 모두 바다로 덮여 있고, 섬이 떠 있다거나 온통 늪으로 이루어진 열대 행성이라고 상상한 소설가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의 금성 탐사선 덕분에 이런 환상은 사라졌습니다. 소련의 베네라 4호와 미국의 매리너 5호가 최초로 금성에 가까이 다가가 조사해 본 결과, 금성의 표면 온도는 450°C에 달하고, 표면의 압력은 지구의 90배나 되었습니다. 금성 표면은 너무나 뜨거워서 납덩어리가 녹아 액체가 되고, 지구에서는 바닷속으로 1km는 잠수해야 금성 표면과 같은 압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바다나 늪은 고사하고 한 방울의 물도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금성의 하늘을 뒤덮고 있는 두꺼운 구름은 물이 아니라 황산입니다. 가끔 황산 비가 쏟아지지만 지표면이 너무 뜨겁기 때문에 땅에 닿기도 전에 다시 증발해서 구름으로 올라가지요. 그야말로 지옥입니다.

소련의 금성 탐사선, 베네라 13호의 자료로부터 재구성한 금성 표면의 사진. ‘사파스 몬스(Sapas Mons)’라고 이름붙은 화산이 보인다 by NASA/JPL, Public Domain







금성의 과거에 대한 두 가지 시뮬레이션,

결과는 왜 정반대일까?


과거에는 어땠을까요? 화성의 표면은 지금 거의 다 말라붙어 버렸지만 과거에는 바다와 호수가 있었던 것처럼, 과거의 금성에도 어쩌면 바다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만약 과거의 금성이 정말 바다로 뒤덮여 있었다면 금성과 지구는 지금보다 훨씬 비슷한 환경이었을 겁니다. 어쩌면 지구에서처럼 생명이 생겨나고 진화했다가 급격하게 뜨거워진 기후를 이겨내지 못하고 전부 사라졌을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2016년 발표한 논문에서 이와 비슷한 결론을 내린 적 있습니다. 금성의 물질 구성과 자전 주기를 바탕으로 시뮬레이션을 진행한 결과, 약 7억 년 전까지 금성의 표면에 바다가 존재할 수 있을 만큼 온도가 낮았다는 결과였지요. 금성은 태양에 가깝기 때문에 뜨거워지기 쉽지만 희고 두꺼운 구름이 햇빛을 대부분 반사한다면 안정적인 온도와 대기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완전히 말라붙은 오늘날의 금성 사진(왼쪽), 그리고 ‘바다로 뒤덮인 금성’의 상상도(오른쪽)

사진 출처: 왼쪽(Original image by NASA/JPL, Public Domain), 오른쪽(Original image by NASA, Public Domain)



하지만 2021년 10월 13일에 제네바 천문대 연구진들이 발표한 연구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들의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금성 표면에는 태양계가 탄생한 뒤 단 한 번도 물이 안정적으로 고여서 바다가 된 적이 없었다고 해요. 금성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불구덩이였고 생명은 탄생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고작 5년의 차이를 두고 실력 있는 연구소 두 곳이 정반대의 결과를 내놓은 셈인데,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행성의 초기 상태가 중요하다


두 시뮬레이션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금성 역사의 출발점을 다르게 설정했다는 데 있습니다. NASA 연구에서는 태초의 금성에 바다가 있었다고 가정하고 시뮬레이션을 진행했습니다. 여기서 던진 질문은 “금성에 원래 바다가 있었다면, 그 바다는 언제쯤 끓어올라 사라졌을까?”인 겁니다. 금성은 지금 지구 시간으로 224일에 한 바퀴 자전하는 등 아주 느리게 회전하는 행성인데요, NASA의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금성의 낮인 쪽에 두꺼운 구름층이 몰리면서 햇빛을 모두 반사해 버려서 온도도 급격하게 뜨거워지지 않고 바다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내용이지요.


반면, 제네바 천문대의 연구에서는 태초의 금성에 바다는 없었고 모든 물이 수증기의 형태로 금성 대기를 메우고 있었다고 설정하고 시뮬레이션을 진행했습니다. 이제 질문은 “금성 대기가 수증기로 가득 차 있었다면, 수증기가 식어서 금성 지표면에 고여 바다를 만들 수 있었을까?”인 거죠. 대기에 수증기가 너무 많으면 온실효과를 일으켜서 태양으로부터 공급된 열이 금성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됩니다. 덕분에 금성은 점점 뜨거워지기만 했고, 대기를 메우고 있던 수증기는 단 한 번도 지상에서 고여 바다나 호수가 되지 못한 거죠.



이렇게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난 것은, 구름이나 수증기가 행성의 온난화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 아주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행성 표면 중 낮인 곳, 즉 햇빛이 비치는 곳에 두껍고 흰 구름층이 생기면 햇빛을 대부분 반사해 버리기 때문에 태양열이 행성으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같은 양의 햇빛을 받더라도 뜨거워지지 않는 거죠. 반면에 구름은 없지만 수증기는 많아서 대기가 습하다면 물 분자들이 햇빛을 반사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흡수하기 때문에 태양에서 공급된 열이 행성을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온실 효과가 일어나고 행성은 뜨거워지겠지요.


행성의 초기 상태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만약 NASA 연구진의 가설대로 금성 표면에 바다가 처음부터 존재했다면, 금성에 있는 물은 대부분 지표면에 고여 있었을 거고 대기 중에는 그렇게 수증기가 많지는 않았을 겁니다. 금성의 물은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대신 구름이 되어 햇빛을 반사하는 역할을 주로 했을 거고, 그 결과 약 7억 년 전까지 금성 표면에는 바다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면 제네바 천문대 연구진의 가설대로 금성의 물이 애초부터 수증기 상태로 대기를 메우고 있었다면 물이 태양열을 흡수해서 금성은 빠르게 뜨거워집니다. 금성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생물이 살아갈 만한 온난한 환경이었던 적이 없었을 겁니다.







외계행성 연구의 전성시대: 

인간이 거주가능한 환경을 찾아라!


201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디디에 쿠엘로(왼쪽)와 미셸 마요르(오른쪽) by ESO/L. Weistein/Ciel et Espace Photos, CC BY 4.0

21세기는 외계행성 연구의 전성시대입니다. 2019년 노벨물리학상은 최초로 외계행성을 발견한 디디에 쿠엘로(Didier Queloz), 미셸 마요르(Michel Mayor) 교수에게 수여되었습니다. 우리가 외계행성에 그토록 관심을 갖는 이유는 언젠가 인류가 우주로 진출했을 때 살아갈 만한 곳이 있는지 궁금해서일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외계행성이 발견되면 그 행성이 자신의 모항성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대기의 조성은 어떻게 되는지 등을 조사해서 생명이 살 만한 환경인지 점쳐보곤 합니다.


하지만 금성의 역사를 다룬 이번 연구는 행성의 거주가능성이 대단히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개념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태양과 금성은 외계행성에 비해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관측을 많이 하고 연구해온 천체임에도 불구하고, 시뮬레이션 초기 조건을 조금만 바꿔주더라도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오고 있으니까요. 우리로부터 수십, 또는 수백 광년 떨어진 먼 행성이 인간이 거주가능한 환경일지 예상하는 건 훨씬 어려운 일일 겁니다. 앞으로 외계행성과 항성에 대한 더 많은 관측 자료는 물론이고 이번 연구 결과처럼 더 많은 조건에서의 시뮬레이션과 이론적인 연구가 축적되어야 할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온도와 촉각 수용체의 비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