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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원 Jun 29. 2022

행복을 배울 수 있다면


 내겐 블로그 친구가 2명 있었다. 오늘 그중 한 명을 구독 취소했다. 2명의 블로그 친구 중 A는 내가 대학생이었던 10년 전쯤 알게 됐다. 그때 A가 아마 고2쯤이었을 거다. A는 블로그에 노래를 올리기도 했고 그날 있었던 일, 기분 등을 일기로 쓰기도 했고 철학책이나 시의 일부를 적어 놓기도 했다. 가끔 서로의 글에 좋아요를 눌러줄 때도 있었고, 정말 가끔은 댓글을 달거나 안부를 묻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인스타가 생기고 브런치도 생겼다. 블로그에는 점점 광고, 정보성 글들이 많아졌다. 점점 블로그에 글 쓰는 일이 재미없어졌다. 그동안 썼던 글을 비공개 처리하고 이웃목록을 정리하고 구독은 A와 B만 남겼다. 또 몇 년이 지나, 주간일기 챌린지 이벤트를 하려고 오랜만에 블로그를 둘러보다가 새글목록에서 A의 글이 보였다. A가 아직도 글을 쓰고 있다는 게 반가워 얼른 A의 블로그에 들어갔다.


 그동안 내가 놓친 글들이 많았다. 그중 최근에서 3번째 글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고 '일, 연애, 가족, 생활 모든 면에서 요즘 나는 행복하다.'라는 요지의 글이었다. A의 글에서 이런 내용은 처음 본 거 같았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누군지도 모르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A가 성장해서 자기 자리를 잘 잡았다는 게 오래 알아온 사람으로서 기뻤다. A는 이제 혼자 설 수 있는 어른이 된 거 같다. 그리고 A는 글에서 자신이 행복하다고 했다. 다른 매체 보다는 더 내밀한 얘기를 할 수 있는 블로그에서, 그것도 일기에서,  행복하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아마 정말 행복할 것이다.


 A가 행복해진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아쉬웠다. 어른이 된 A는 더 이상 타인의 관심이나 격려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뭐랄까 동생이 어느새 커서 형인 내 도움이 필요 없게 된 기분? 그리고 이제 A의 글에서 내가 얻을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한 사람의 글이 좋기란 불행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만큼 어려울 테니.


 살면서 실제로 행복한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인스타그램에서는 다들 행복해 보이는데 역시 직접 본 건 아니니 뭐라 말을 못 하겠다. 지금 나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잠깐 기쁠 때가 있지만, 행복하지는 않다고 말할 거다. 


 행복한 사람들이 행복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걸 수도 있다. 시기와 질투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행복한 사람을 보고 시기하지 않고 질투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 주변에서 행복한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한 것은 어쩌면 내가 행복한 사람을 보지 않으려 했기 때문 아닐까? 나는 행복한 사람을 친구로 둘 수 있는 사람인가? 내가 행복해지면 행복한 사람을 친구를 둘 수 있을까?


 답할 수 없는 질문들. 행복이 배울 수 있는 거라면 좋았을 텐데. 그럼 A에게 행복해지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을 텐데. 아주 가끔 오는 기쁨으로도 삶은 살아지니 오히려 다행인가. 이웃목록에서 A를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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