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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호 Jun 10. 2018

명곡은 서사를 싣고

Metallica - Enter Sandman

Metallica - Enter Sandman <Monsters of Rock 1991, Moscow, Soviet Union>


1991년 9월 28일, 모스크바 근교 투시노 아에로드롬(투시노 비행장; Аэродром Тушино). 끝을 모르고 몰려든 군중 100만여 명은 지평선을 시야에서 지워버렸다. 냉전 시대 군 비행장으로 사용되었던 드넓은 땅이란 사실은 이제 중요치 않았다. 


불과 한 달 전, 소련 인민들은 8월 쿠데타(Августовский путч: 서기장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에 맞서 공산당 내 기득권 세력이 마지막으로 반기를 든 사건)를 시민 저항을 통해 손수 진압하였고, 그 결과 소비에트 연방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모스크바 주민들은 스스로 자유로운 러시아 공화국 시민의 자격을 쟁취하였음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로 인해 발생한 흥분과 각성은 AC/DC를 필두로 하여 Metallica(메탈리카), Pantera(판테라) 등이 참여한 Monsters of Rock 페스티벌의 모스크바 공연을 통해 격렬히 표출되었다. 청바지를 입고, 혹은 군복을 입고, 성조기를 손에 든 채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의 얼굴은 한껏 들떠 있었다.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영욕을 상징하는 듯한 선율이 인상적인 곡인 'The Ecstasy of Gold(영화 석양의 무법자 OST, 엔니오 모리꼬네 작곡; 메탈리카가 편곡한 동명의 리메이크 곡이 있다)'가 역사적인 공연의 서막을 알리는 가운데, 뒤이어 지축을 뒤흔드는 묵직한 기타 리프와 드럼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전체주의 체제에 억눌려 잠자고 있던 소련 시민들의 욕망 위로 Sandman(이하 샌드맨)을 자처한 메탈리카의 무시무시한 헤드뱅잉과 선율은 달콤한 모래 가루를 뿌려댔다.


Exit, light
Enter, night
Take my hand
We're off to never-never land


육중하면서도 달콤한 굉음은 냉전 체제의 종말을 선포하는 예포였고, 서방 세계의 자유분방한 음악과 문화를 동경하던 이들을 격정으로 몰아넣은 웅장한 교향곡이었다. 영상 속 사람들의 눈빛에서는 환희, 동경, 전율 등 다양한 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 1991년 9월 28일, 록 페스티벌에서 울려 퍼진 Enter Sandman은 듣는 이를 네버랜드로 인도하겠다는 가사처럼, 한 시대의 종언과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상징하는 주제가였다.




Mariano Rivera makes final entrance at Yankee Stadium


... Greatness coming into the Yankee game for the final time, here in the Bronx


No.42 Mariano Rivera
No.42


한 코치가 불펜으로 전화를 건 뒤 투수 교체를 위해 더그아웃에서 나와 마운드에 올랐다. 불펜의 문이 열리고, 투수는 마운드 위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위대한 이가 양키 스타디움에 마지막으로 등장한다"는 해설자의 소개와 함께 장내 아나운서는 "등 번호 42번, 마리아노 리베라"를 호명했다. 그리고 장내에 울려 퍼진 건 익숙한 노래, Enter Sandman이었다. 2013년 9월 26일, 브롱스에 있는 양키 스타디움에서 야구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평가받는 마리아노 리베라는 그렇게 마운드에 올라 마지막으로 공을 뿌렸다.


뉴욕 양키스가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 9회마다 울려 퍼졌던 Enter Sandman은 상대 팀 팬에게는 절망으로 다가갔고, 양키스 팬에게는 가슴 뭉클한 설렘이자 이제 경기가 끝났다는 안도감 그 자체였다. 그렇다. Enter Sandman은 통산 열아홉 시즌 동안 1115경기에 출전하여 82승 60패 652세이브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긴 클로저, 마리아노 리베라의 등장곡이었다.


마리아노 리베라의 은퇴를 대서특필한 미 주요 언론의 헤드라인은 다음과 같았다.


Exit Sandman


잠드는 모래를 눈에 뿌려 사람들을 깊은 잠에 빠져들게 하는 요정 샌드맨. 마리아노 리베라의 애칭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샌드맨이었다. 이는 분명 그의 등장 곡에서 유래한 별명(샌드맨의 등장)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상대편을 영원히 잠들게 해야 하는 마무리 투수로서의 역할이 어린아이를 타일러 잠에 이르게 한다는 등장 곡의 가사와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여전히 뉴욕 시민, 특히 양키스의 팬들은 Enter Sandman을 들을 때면 그들이 연호했던 한 위대한 투수를 떠올린다. 




시대와 세대를 가리지 않고 회자되는 노래의 조건은 무엇일까? 물론 요인과 변수는 다양하다. 어떤 경우에는 심금을 울리는 가사가 청자의 공감을 끌어내는 반면, 뮤직비디오에 활용된 화려한 밈(meme)이 화제가 된 뒤 도리어 음악에 대한 뜨거운 인기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이는 음악을 비단 음반을 통해서만 즐기지 않고 영상, 글, 사진, 공연, 페스티벌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비하는 세태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Enter Sandman은 어떠한가?


사실 위에 서술한 Enter Sandman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에는 '거듭 회자되는 노래의 조건'과는 다른 맥락이 담겨 있다. 오히려 앞선 두 사례는 '노래는 대중에게 어떻게 각인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Enter Sandman은 밴드의 정제된 면모를 담은 앨범 Metallica(a.k.a The Black Album)의 수록곡으로,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기록했던 음반의 대표곡이었다. 다시 말해, 음악 내적인 완성도만으로도 엄청난 사랑을 받은 노래란 뜻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정치-사회적 변화란 맥락 속에서 Enter Sandman은 해방의 상징으로 새롭게 해석되어 역사 속에 그 이름을 남겼고, 수년이 지난 뒤에는 한 전설적인 야구선수를 상징하는 노래가 되어 스포츠 팬의 가슴속에 그 선명한 멜로디를 남기게 되었다. 이는 앨범 본연의 콘셉트와 기획, 제작, 유통의 영역에서 벗어난 사회적인 스토리텔링이 한 음악에 덧입혀진 사례라 할 수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곡은 무엇인가? 혹시 당신이 사랑하는 곡에는 가사나 멜로디 이외에 특별한 기억이나 이야기가 담겨 있진 않은가? 


때때로 명곡은 서사를 싣고 흐른다. 그리고 명곡은 오늘도 서사 속에서 새롭게 해석된다. 




함께 보면 좋은 영상


Pantera - Cowboys From Hell <Mosters of Rock 1991, Moscow, Soviet Union>


마리아노 리베라 데이에 양키 스타디움을 방문하여 Enter Sandman을 직접 연주한 메탈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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