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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묘 Jun 17. 2017

무한 루프

나도 그래

사진 출처 Pixabay


작은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한 잔 앞에 놓고 앉았다. 한 시간 남짓 짬이 생겨, 며칠 째 찔끔찔끔 읽던 책에 속도를 붙여 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책 속의 글자보다는, 근처에 앉은 두 친구의 수다가 더 쏙쏙 들어오고 있다. 자리를 옮겨 볼까 했지만 워낙 작은 공간인지라 카랑카랑한 둘의 목소리를 피할 곳은 마땅치 않아 보였다.


에라 모르겠다, 들릴 땐 그냥 들어버리자, 게다가 내가 당사자에서 벗어난지도 이미 너무 오래, 요즘 20대 초반의 여성들은 무슨 얘기들을 하려나, 하는 심정이 되자 눈동자는 행간 어디쯤에서 고정이 되어 버렸다. 둘은 대학교 3학년생으로, 둘 중 하나가 다음 학기에 휴학을 할 모양이었다.  


"휴학하면 뭐 할 거야?"

"토익 점수도 만들고, 알바도 하고, 여행도 다녀오고."

"그래서 뭐부터 하려고?"

"알바해서 돈을 벌긴 해야   같은데, 돈을 벌고  뒤에 뭔가를 하려면 그걸  하고 계속 돈만 벌고 싶어질  같아."

"그럼 다른 뭔가를 먼저 해. 방학 때 여행 먼저 다녀오고 나서 알바를 하든가?"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해."

"그럼 일단 공부 시작해서 토익 점수부터 만들어!"

"그것도 돈이 있어야 해. 학원 가야 하잖아."

"그럼 그냥 알바부터 해."

"돈 벌고 난 뒤에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그럼 지금부터 아무것도 하지 마!"

(갑자기 둘이서 까르르)

"지금 휴학하고 나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는 있는데, 토익 점수 만들고, 여행도 다녀오고, 알바해서 돈도 벌었다 치자. 근데 그걸로 고민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 죽을 순 없으니까."

(또 까르르)

"복학할 때 되면 그건 그거대로 또 고민 시작, 졸업할 때 되면 또 고민 시작, 계속 그러겠지?"

"대학 들어왔으니까 이제 다 지났나, 싶으면, 아니네 지금 지나고 있네, 싶고, 또 다 지나갔나 싶으면, 지나고 있고, 계속 그렇게 지나고 있네."


그치 그치? 나는 어느새 속으로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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