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현주 Jul 20. 2021

콜미 바이 유어 네임

영화&책 리뷰

변덕스러운 월요일 날씨다. 오후에는 천둥과 함께 소낙비가 쏟더니 몇 시간 만에 무지개가 뜬 해 질 녘의 하늘은 완연한 여름의 얼굴이 된다. 이런 날들이 견딜 수 없게 좋아 나는 곧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다. 

무지개가 뜰 무렵,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을 다 읽었다. 하필이면 바로 그 순간, 이렇게 낭만적일 게 뭐람.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열린 창으로 말끔해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엘리오와 올리버가 처음 만난 날의 날씨가 꼭 이랬을 것만 같다. 새삼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에게도 '마음 중의 마음'이라고 일컬을 만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책 보다 영화가 더 좋았다는 사람들의 의견이 대다수인 작품이지만, 난 정확히 그 반대였다. 여름의 강렬함, 젊음이 시크린에서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나의 마음을 붕 뜨게 했던 것은 사실임에도, 어찌 된 일인지 아주 깊이 있게 몰입되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엘리오(티모시 샬라메 분)와 올리버(아미 해머 분)가 마지막 여행을 위해 로마로 가는 장면에서 멈추곤 했다. 

워낙에 호평을 먼저 접했던 작품인지라 내가 단지 힙스럽고 싶은 욕망 때문에, 혹은 어느 쪽이든 내 취향이 될 수 있는 잘생긴 남자 둘 때문에, 아니면 아름다운 음악과 배경에 취했기 때문, 이 아니라 작품을 작품으로 냉정하게 판단하고 싶었다. 분명 내가 멈춰 선 부분은 영화의 절정이었다. 금지된 사랑에서의 여행이라니. 그것도 로마라니. 슬프게 끝날 이 사랑의 운명이 처절한 아름다움으로 그려질 터였다. 나를 놔 버리고 분위기에 취해버리기보다는 마음을 단단히 붙들자, 했다. 되도록이면 영화라는, 그리고 허구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어쨌든 나의 이런 시도는 꽤 성공적이었고, 끊어서 본 탓인지 마음이 덜 아팠다. 심지어는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는 엘리오의 눈물을 한 발자국 떨어져 감상하는 여유마저 보았다. 오~ 티모시 샬라메 연기 꽤 하네. 라며.  


이렇게 영화를 끊어 본 덕분에 책을 먼저 끝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활자가 주는 감동은, 그리고 마지막의 충만한 여운과 마음에 들었던 결말이 영화를 끝낼 수 있는 용기를, 그 이별을 감당할 용기를 줬다. 

게다가 책을 읽을 때마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티모시 샬라메와 아미 해머의 얼굴을 한 주인공들의 편에 서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이탈리아 도시와 여름 공기의 청명함이 손에 잡힐 듯이 뚜렷하게 펼쳐졌고 활기와 타오르는 생명력, 그리고 약간의 광기조차 지금, 여기 나와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만 같다. 


소설의 초, 중반은 주인공 캐릭터인 엘리오의 감정에 맞춰져 있다. 영화는 언어로 된 그의 심리를 빛이라든지 색, 표정 등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책에서는 아주 예리한 칼로 조각하는 것 같다.  뭉뚱그려서 알던 그 분위기를 아주 섬세하게 느끼게 된다. 그러니까, 엘리오에게 더 깊은 공감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엘리오의 응답받지 못한 사랑의 마음이 마치 내 것인 것만 같고, 올리버의 작은 몸짓 하나에, 그리고 그의 존재 혹은 부재로 인해 내 마음도 기뻤다가도 또 두려워지며 덩달아 널을 뛰었다. 

그러다가 올리버 또한 처음부터 엘리오에게 끌렸다는 것을 둘 다 인지하는 순간이 오는데, 그 순간부터 이 둘의 사랑은 너무나 완전하고 인상적으로 보인다. 어느 순간 이 사랑이 영원하길, 응원하고 있다. 남성과 또 다른 남성의 결합이 아닌, 완전한 인간과 또 다른 완전한 인간의 결합처럼 느껴지는 건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필연적으로 빼놓고 갈 수 없는 것이 '퀴어'코드다. 캐릭터들이 갖는 지성과 아름다움이 동성애라는 사회적 편견을 해방시킨다.(물론 이 부분은 작품의 한계이기도 하다. 어쩌면 여성학적인 관점에서 오히려 비판받을 만할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완전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이 사랑의 형태는 진짜 사랑의 모습을, 이성애이든 동성애가 든 간에,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 지점은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에서도 살짝 언급되고 있지 않은가. 동성애에 대한 미화조차 타자화에 속할 수 있다는 것.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이나 '브로크 백 마운틴'을 보고 동성애에 대한 환상을 가졌다가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고 와장창 깨졌다고 하니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어쨌든 이 부분에 대해서 판단은 유보하기로 하고, 내가 진정으로 감동을 받은 부분은 아버지와 엘리오의 대화에서였다. 책에다가 밑줄을 쫙쫙 그은 부분이기도 했는데, 감독 역시 이 부분을 감동적으로 연출하고 있다. 


여기에 애치먼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임을 잃지 않는 것, 기쁨이든, 슬픔이든, 그 인간 고유의 감정을 충만하게 느낄 수 있음을, 단 한번뿐인 인생에서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영화는 이 둘의 사랑을 새드 앤딩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소설은 우리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나는 그 결말이 퍽 마음에 들기 때문에 영화를 본 사람들도 책을 꼭 읽으라는 말을 하고 싶다. 물론, 중간에 아주 긴 지루함을 이겨내야 할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랑이 있고, 어떤 사랑은 시간이 지나도 결코 변하지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청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