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허생 Dec 10. 2019

이상의 탄생

이상

이상 김해경과 구보 박태원. 나는 절망의 무대 경성에서 낭만을 연기한 두 사람을 좋아한다. 이상은 언제나 껄껄 너털웃음을 지었고, 구보는 언제나 헤헤 멋쩍게 웃었으나, 둘은 언제고 울고 있었다. 


홀로 있을 때보다 나란히 놓았을 때 더 잘 보이는 것이 있다. 이상과 구보도 그렇다. 둘은 함께 있을 때 보다 선명해진다. 천재 이상과 모더니스트 구보. 그들의 불안과 고뇌, 낭만 그리고 문학을 엿보고자 둘을 나란히 놓고 바라보기로 했다.





1926년 10월 1일. 한 건물의 완공식이 열렸다. 왕이 기거하던 경복궁을 떡하니 가로막고 선 건물. 왕이 행차하던 광화문을 밀어내고 지어진 건물. '식민통치의 심장'이라 불린 조선총독부다.


9600평에 달하는 규모에, 지상 4층. 외부는 대리석으로 마감하고 지붕엔 권력의 상징인 4.5m의 돔을 얹었다. 공사기간만 10년에 달하는 동양 최대 규모의 서양식 건물이었다. 그 상징적 위치며 외압적인 모습이며, 조선총독부 건물은 너무나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를 지배했다고.


1925년 완공된 조선신궁과 경성역에 이어 총독부까지. 이로써 식민지배의 시각적, 공간적 틀을 완성한 일제는 조선인들에게 충성을 겁박했다.


남산에 세워진 조선신궁(현 백범광장)



떠날 수 없다, 경성을


1926년, 보성고보(지금의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찍던 날이었다. 소년티를 제법 벗은 학생들이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사진기 앞에서 포즈를 잡았다. 17세가 된 이상도 그중 하나였다.


촬영을 끝낸 이상이 졸업 앨범에 써넣을 글을 고민하고 있을 때, 한 친구가 그에게 다가왔다.


"나는 일본 간다."


"참말로?"


"응."


"참말로 일본에 간다고?"


이상은 부러운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거듭 물었다. 말이 없어,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다고 불리던 이상이지만, 이번엔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화가가 되기 위해선 일본 유학을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형편상 유학은 꿈도 못 꾸던 이상이었다.


"너는?"


"나는 못 가. 나는 경성을 떠날 수 없다."


"너 집이 딱하면 내가 학비를 대줄 수 있다."


"싫구나. 내가 네 신세를 입는 것은 첫째 나 자신이 불쌍해진다." 


친구의 제안을 이상은 딱 잘라 거절했다. 자존심만 앞선 철부지의 답이라기보단 현실을 일찍 알아버린 고학생의 답이었다. 아무리 가까운 교우라 한들 천문학적인 돈이 드는 일본 유학비를 대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날 이상에게 호기롭게 유학비를 대주겠다고 한 친구는 도쿄대 정치학교 졸업 후 한국인 최초의 외무관, 해방 후 초대 외무부 장관을 지낸 장철수다.


보성고보 졸업앨범에 실린 이상의 사진



이상의 탄생


유학길이 막힌 이상은 경성고등공업학교(경성고공)에 입학한다. 경성고공은 3년제 전문대학으로 학문보다는 당장 쓸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었지만, 일제의 식민지 교육 정책으로 경성제국대학을 제외하곤 변변한 대학이 없던 당시 경성고공은 최고 수준의 대학 중 하나였다. 지금으로 치자면 서울대 공대에 해당한다 할 수 있다(실제 경성고공은 서울대 공대가 됐다).


경성고공에는 총 6개의 과가 있었다. 건축과, 염직과, 응용화학과, 요업과, 토목과, 광산과 중 이상은 건축과를 택했다. 표면적으로는 총독부 건축기사였던 큰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건축기사가 되기 위한 경로로 보이지만, 이상의 뜻은 달렸다. 


이상은 순전히 그림을 그리기 위해 경성고공을 택했다. 조선에서 그림을 공부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 경성고공 건축과였기 때문이다. 그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큰아버지를 기만했으리라. 경성고공에 가서 훌륭한 건축기사가 되거라, 는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김해경이 경성고공을 지망한 건 오로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건 나중에 그 학교 건축과 미술부에 함께 소속되면서 그가 나한테 그렇게 언명을 한 확실한 사실이지요."

오오스미 야지로(이상 경성고공 학우)


가세는 점점 기울어갔으나, 이상은 가시밭길을 헤쳐나가듯,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내에서 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찾아가며 화가를 향해 나아갔다. 든든한 형 구본웅은 언제나 이상의 편이 되어주었다.


이상이 경성고공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자, 구본웅은 그에게 화구상자를 선물했다.



현미빵을 팔아 학교를 졸업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던 이상이 너무나 가지고 싶었던 화구였다. 이상은 기쁨을 숨기지 않고 이를 훤히 드러내고 웃었다. 가족들과 달리 구본웅 앞에서는 자신을 숨길 이유가 없었다.


구본웅에게 거듭 감사를 표한 이상은, 대단한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형한테 큰 빚을 졌습니다. 참말 고맙습니다. 내 오늘을 기념해 아호를 지으리다!"


"아호? 어떤?"


"화구상자의 상자 상(箱)자를 넣고, 음... 상 앞에 성씨를 붙이는 건 어떻겠소?"


"김 씨, 박 씨, 이 씨, 임 씨, 권 씨 같은 성을 말인가?"


"김상... 박상... 이상... 이상! 이상 어떻습니까?"


"이상이라... 이상한 이상! 해경이 너와 꼭 들어맞는구나!"


경성고공에 입학하던 해, 김해경은 자신의 아호 겸 필명을 '이상'으로 정했다. 이상향의 이상, 이상한의 이상, 일본어 리상으로도 읽힐 수 있는 중의적인 단어를 택한 것이 모든 것을 감추고 속내를 알 수 없는 그와 꼭 들어맞았다.


그렇게 이상은 가족이 내려준 김해경이라는 성과 이름을 모두 내던졌다. 가문의 장손이 아니라 인간 이상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이자 천명이었다. 이상의 탄생이다.



벌판한복판에 꽃나무하나가있소. 근처(近處)에는꽃나무가하나도없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를 열심(熱心)으로생각하는것처럼 열심으로꽃을피워가지고섰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 나는막달아났소. 한꽃나무를위(爲)하여 그러는것처럼 나는참그런이상스러운흉내를내었소.

꽃나무(1933.7) / 이상


매거진의 이전글 문인을 꿈꾼 소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