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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예 Jun 05. 2020

묘한 행복

내가 고양이라면, 행복할까?

    알람시계가 울 때즈음, 우리집 고양이(수능이)는 내 방문을 긁는다. 마치 엄마가 깨워주듯이. 실상은 때가 되었으니 밥을 내놓으라는 협박이지만. 그래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밥을 찾는 부지런한 수능이를 보며  '그래 너도 일어나는데 나도 일어나야지.' 하는 마음으로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내 내가 출근 준비를 마쳤을 때 수능이는 우리집 소파에서 완전히 뒤집어져서 자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출근을 할 때면 수능이가 너무 부러워서 미치겠다. 


    “나도 너처럼 푹 자고만 싶다.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는 고양이가 되고프다!”


    수능이는 길냥이(길고양이)었다. 수능 한파가 닥친 몇 년 전 수능 날, 태어난 지 두 달도 되지 않은 채 어미를 잃고 하루종일 혼자 바들바들 떨고 있던 새끼 고양이.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에 얼어죽을 것 같다는 안타까운 마음에 데려온 수능이지만, 지금 집에 있는 수능이를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고양이 팔자가 상팔자다. 집사가 매일 일정한 시간에 밥 주지, 심심하다고 보채기만 하면 집사가 놀아주지, 더울 땐 시원한 곳에서 추울 땐 따뜻한 곳에서 잘 수 있지. 가만히 보면 정말 아무 때나, 아무데서나 자리 깔고 잔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해야 할 일 없이 마음껏 잘 수 있다는 것이! 수능이가 되고 싶다는 노래를 부르자 지나가던 이모가 한소리 했다. 


    “수능이가 과연 행복할까? 네가 수능이면 행복할까? 임신도 못하고, 자식 키우는 즐거움도 모를 거고, 마음대로 산책도 못 다니는데? 물론 추위에 떨다가 죽은 것보다는 낫겠지만.”


    수능이는 행복한가.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래도 당연히 길고양이들보다는 행복하지 않을까. 자식 좀 안 키우면 어떻고 산책 안 나가면 어떤가. 내가 수능이라면 행복할 것 같았다. 꼭 해야만 하는 일 없이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는 한없이 권태로운 나날을 보낼 수 있으니까. 어떠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따뜻하고 배부른 삶을 살 수 있으니까. 게다가 길고양이들처럼 교통사고로 일찍 죽을 일도 없고. 그야말로 완벽한 삶 아닌가.


    수능이의 행복을 걱정하던 이모도, 추위로 인한 죽음 보다는 집 고양이의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번 겨울이 되기 전, 이모는 수능이를 너무나도 닮은 길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올지 한참 고민했다. 사실 얼마 전부터 내 눈에도 밟히던 아이였기 때문에 나는 이모를 부추겼다. 결국 우린 그 아이를 데려오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일명 ‘길냥이 납치 계획’. 우선, 먹이로 케이지까지 오도록 유인한다. 그리고 냥이가 케이지에 들어오면 집으로 데려온다. 사람을 잘 따르고 우리에게 갸릉거리던 고양이를 생각하면 실현 가능성이 높은 계획이었다. 


   급작스럽게 쌀쌀해진 어느 날, 우리는 ‘길냥이 납치 계획’을 이행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 아이를 조심스레 관찰했다. 바람에 굴러가는 낙엽을 잡기위해 집중하고 있던 냥이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근처로 와서 한참을 갸릉거리다가, 우리가 가져다 준 물을 마시고는 다시 낙엽 사냥을 시작했다. 

    우리는 계획을 잠시 중단했다. 그 아이가 너무 행복해보였다. 


    물론 날씨가 추워지면 길고양이들이 살기 힘들다는 것은 사실이다. 죽는 고양이들이 많다. 그래서 마음 여린 사람들의 냥줍(길고양이를 자체적으로 입양하는 행위)도 많이 이뤄진다. 하지만 그냥 불쌍하다는 생각만으로 길냥이들을 쉽게 입양해서는 안된다. 사람의 손을 탄 고양이들은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다. 


    수능이의 행복에 대한 고민이 다시 시작되었다. 수능이는 우리에게 온 이후로 따뜻한 곳에서 배불리 밥을 먹으며 집을 마음껏 누빌 수 있지만, 어미를 잃었고 야생성도 잃었고, 새끼도 밸 수 없게 되었다. 

    그에 비해 야생에서 사는, 수능이를 닮은 그 아이는 너무 행복해 보였다. 익숙한 사람이 오면 친한 척 좀 해주고 먹을 것을 받고, 가고 싶으면 훌쩍 가버리고. 언제든지 하고 싶은 대로, 가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그게 아늑한 집보다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계획은 영구 중단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수능이에게 밥을 주며 물었다. 너는 행복하니? 우리가 너의 행복을 빼앗은 건 아닐까? 내가 너였다면, 과연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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