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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soda Mar 25. 2016

싱가포르 거닐기

2015년 여름 #6 둘째 날 저녁

MRT를 타고 하버프런트(HarbourFront)로 가서 바로 센토사 익스프레스를 탔다.

비보시티는 꽤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고 무언가 맛있는 걸 판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과감하게 생략했다. 앞으로 이틀 동안 센토사 섬에서 묵기로 했으니, 더 늦어지기 전에 숙소에 짐을 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센토사 익스프레스는 총 네 개의 역에서 정차한다. 비보시티와 연결된 Sentosa Station이 출발역이고, Waterfront Station - Imbiah Station - Beach Station 순으로 정차한다. 센토사 섬의 중간쯤을 일직선으로 통과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해변이나 호텔 쪽으로 가려면 섬 안에서 버스 혹은 트램을 이용하여 이동하면 된다. ……이런 정보를 가지고 출발했지만, 막상 섬 안으로 들어가니 어떤 구조로 생긴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아무튼 Waterfront station에서 내리면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갈 수 있고, Beach station에서 내리면 해변과 해변을 도는 트램 및 버스를 탈 수 있고, Imbiah station에서 내리면 우리가 예약한 뫼벤픽 헤리티지에 갈 수 있다는 것만 기억하기로 했다.

센토사 익스프레스를 타고 본 풍경.


우리는 일단 Imbiah station에서 내린 뒤 호텔에 짐을 풀기로 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와서 왼쪽에 찻길 쪽으로 나가는 입구가 보였고, 그쪽으로 나가 보니 바로 뫼벤픽 헤리티지의 한쪽 면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길을 건너자, 저 멀리 센토사 머라이언의 웅장한(!) 자태도 모습을 드러냈다.

보고 깜짝 놀랐다. 밤에는 또 다르게 놀랍다.


캐리어를 들들들 끌고 호텔 안으로 들어가자, 밖에 나와 있던 직원들이 가방을 옮겨 주었다. 꽤 긴 복도를 지나서 반대편 쪽에 프런트가 있었고, 체크인을 한 뒤에 그 복도를 되돌아오니 중간쯤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원래는 바로 짐만 놔두고 해변에 갈 생각이었는데, 작은 문제가 발생했다. 호텔 어매니티를 확인해 보니, 슬리퍼, 샴푸, 린스, 칫솔 세트 등 모든 것이 하나씩 부족했다. 마리나 베이 샌즈와 마찬가지로, 이곳 또한 미리 호텔에 컨펌 메일을 보내고 답장까지 받았음에도 이인 기준으로 방을 준비해 놓은 모양이었다. 침대도 킹 사이즈 하나뿐이라, 어제 일을 생각하면 오늘도 약간 불편하게 잠을 자야 할 것 같기도 했다.


전화를 걸었다.

일단 회피 본능을 따라 문제를 내버려두고 외출을 하려다가, 그래도 시간이 좀 있으니 프런트에 전화를 하기로 했다.

"우리는 세 명이고 트리플 룸으로 예약을 했는데, 방에는 엑스트라 베드도 없는 데다 모든 어매니티가 하나씩 부족하네? 특히 너희가 남녀 기준으로 갖다 놓는 바람에 화장솜이랑 컨디셔너 같은 것도 모자라."

"그래? 미안해, 확인해 볼게. 우리 호텔에 한국인 직원이 일하는데, 그녀에게 말해서 너와 통화해 보라고 할게. 기다려 주겠어?"

굳이 한국인 직원까지 동원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들이 그런다고 하니 우리는 기다리기로 했다. 소파와 TV가 놓여있는 거실, 킹 사이즈 침대와 책상을 놓고도 빈 공간이 남는 침실, 그리고 화장실과 세면대 쪽에 칸막이가 되어 있는 욕실까지, 좁지 않은 방안 탐험을 다 끝냈다.


전화가 안 온다.

이번에는 가이드북과 지도를 펼쳐서 무슨 비치를 가볼까 고르기 시작했다. 탄종 비치(Tanjong Beach)가 그렇게 좋다고들 하니 거기를 먼저 가기로 결정하고, 체크인했을 때 프런트에서 받은 할인권이 달린 지도를 실컷 연구했다. 그래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방의 비품을 관리하는 직통 번호로 걸었다.

"방에 문제가 있어서 프런트에 전화했더니 한국인 직원이 전화를 다시 건다더라고. 그런데 전화가 안 와."

"그래? 그거 이상하네. 아무튼 미안하고, 그런데 너희 방에 무슨 문제가 있는데?"

"응, 우리는 세 명이고 트리플 룸을 예약했는데 어매니티가 모자라. 엑스트라 베드도 없는데, 너희한테 남는 엑스트라 베드가 없는 거야?"

"응, 미안하지만 엑스트라 베드 남는 게 없네."

"그럼 그건 됐고, 어매니티만이라도 좀 채워주겠어?"

"알겠어. 내가 사람을 보내줄게. 조금만 기다려."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나가야 하거든. 조금 빨리 와주면 좋겠어."

"물론이지!"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로 빨리도 사람이 왔다.

어라? 엑스트라 베드도 왔다. 전화로는 없다더니, 확인하니까 있었나 보다. 약간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는 엑스트라 베드를 방 안으로 끌고 들어와서 설치하고, 하얀 시트를 깔고, 이불까지 깔끔하게 장만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산더미 같은 어매니티를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필요한 것만 몇 개 챙기고 나머지는 돌려보냈는데, 왠지 짜장면 먹으러 가서 단무지 더 달라고 한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왜, 보통 단무지 더 달라고 하면 산더미처럼 쌓아주지 않나. 사람 민망하게 말이다.


마침내 바닷가로.

Beach station에서 내린 뒤 트램으로 갈아탔다. 분명 붐빌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트램에는 사람들이 거의 타고 있지 않았고, 심지어 탄종 비치까지 가는 도중에 모두들 내리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트램은 한 시간쯤 운행을 멈춘다는 안내까지 들려왔다. 약간 불안한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센토사에서는 탄종 비치가 가장 물도 깨끗하고 해변도 좋다고 하니 한 시간 정도야 충분히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해 지는 탄종 비치


그런데 트램에서 내리는 사람이 우리뿐이었을 때 이미 짐작했지만, 탄종 비치에 들어가 보아도 사람이 거의 없었다. 너무 늦게 온 듯했다. 몇몇 눈에 띄는 사람들도 이제 그만 자리를 정리하고 어딘가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보였다.

바람 부는 널찍한 해변을 따라 웨딩 촬영을 하고 있는 커플이 하나 보여서, 그들을 마음의 등대로 삼아서 해변 끝까지 모래를 해치며 나아가 보았다.


바다 위로 해가 막 지려는 참이었다. 구름이 끼고 무수한 배가 떠 있는 수평선 위로 붉은 해가 선명하게 떠올라 보였다. 달력에나 나오는 큼직한 일몰이 아니라, 반지 위에 달린 조그맣고 빨간 보석 같은 해였다.

손가락 사이에 끼워도 보고 손바닥 위에 올려도 보면서 한참 동안 사진을 찍었다. 실제로 각도만 바꾸어서 찍은 사진이 폴더에 굉장히 많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나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딘가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것처럼 느껴진다. 그 뒤로는 그렇게나 불안했는데 말이다.


걸어서 섬을 걸었다.

탄종 비치에서 해가 떨어지는 모습을 본 뒤에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로 했다. 트램은 운행을 중지하는 시간대였기에, 천천히 길을 따라 걸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막 해가 지고 땅거미가 깔리는 시간.

왼쪽에는 사람이 없는 해변, 오른쪽에는 수풀이 무성한 동산이 있었다. 

그리 먼 길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갈림길도 없어서 길을 잃을 염려도 없었는데, 어쩐지 굉장히 쓸쓸하고 불안한 기분이 들었던 게 생각난다. 무엇보다 우리 외에는 길을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자전거를 탄 커플이 엄청난 속도로 지나갔다) 때문이리라. 그리고 엄청난 모기떼.


팔라완 비치(Palawan Beach)로 돌아오자 너무도 기뻤다.

마치 숲 속을 헤매다가 우연히 마을 축제가 열리는 골목으로 내려온 것 같았다. 사람들이 왁자지껄 놀고 있는 모습을 보자 어쩐지 배가 고파졌고, 아까부터 줄곧 불어오던 바람도 더 이상 을씨년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사람들도 많은 관광지에서 유난스럽기도 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원래 축제가 열리는 공터 옆의 어두운 숲 속이 가장 쓸쓸한 법이 아닌가.

라이트업의 시간.


미리 조사했을 때 센토사 섬 안에서는 딱히 맛있게 먹을 만한 건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따라서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유니버설 스튜디오 앞의 딘타이펑으로 갔다. 마침 저녁 시간이라서 조금 기다려야 하기는 했지만, 타이완에서 먹었던 것만큼은 아니어도 그럭저럭 맛있고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약간 무서운 머라이언.


모든 일정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오자, 길 건너편에서 센토사 머라이언이 눈에서 광선을 발사하며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아팠던 다리를 멈추게 할 정도로 나름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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