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mmersoda Mar 31. 2016

싱가포르 거닐기

2015년 여름 #8 셋째 날 저녁

이번 3박의 일정 중에서 유일하게 미리 엑스트라 베드를 준비해 두었던 샹그릴라 리조트.

뫼벤픽에서 짐을 찾아 Beach Station으로 간 뒤에 버스를 타고 갔다. 지도에 표시된 정류장에서 내리면 눈앞에 샹그릴라 리조트가 펼쳐질 줄 알았는데, 막상 내리고 보니 리조트는 바로 앞에 보이는데 들어가는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아래쪽에서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아저씨들에게 길을 물어보자 오른쪽에 보이는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가서야 입구가 나온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해변가를 따라서 호텔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도 있었는데, 왜 그 고생을 하며 캐리어를 끌고 가파른 오르막길로 올라가라 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프런트 직원은 친절했고, 방은 그렇게 넓지는 않았지만 청소가 잘 되어 깨끗하고 채광도 좋은 편이었다. 어매니티가 한 사람 분 부족해서 프런트에 전화를 걸었지만 사람은 오지 않았다. 결국 해변을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프런트에 들러서 받아왔다. 전화로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보다는 직접 찾아가서 말하는 편이 원하는 걸 빨리 얻을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사진 찍으며 놀기에 좋다. 모기가 많아서 책 읽기에는 좋지 않다.


샹그릴라 리조트 옆에 있는 수영을 가로지르면 아담한 프라이빗 비치가 있다. 우리가 갔을 때는 센토사 섬 전체의 해변에 그리 사람들이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만약 초성수기라 다른 공용 해변에 사람이 많다면 조금은 여유롭게 해변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야자수 밑에 선베드가 놓여 있어서 엄마와 M과 함께 잠시 드러누워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문제의 코코넛 아이스크림

그런데, 내가 센토사 섬에서 꼭 하겠다고 다짐했던 일 중 하나가 바로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었다. 엄마에게 해변에서 잠시 쉬라고 하고 M과 함께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로 가는 대장정을 시작하게 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사실 처음에는 "조금 저 앞까지만 가보자."라며 여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샹그릴라 리조트의 프라이빗 비치를 벗어나서 도로 쪽으로 약간 나왔을 때,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걸어오는 어느 젊은 남자와 조우하게 되었다. 아이스크림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었다는 것을 한눈에 파악한 나는 "아마도 조금만 더 걸으면 파는 곳이 나올 것 같아."라고 주장했고, M은 "그래, 그렇게 먹고 싶다면 한 번 가보자."고 동의해 주었다. 우리는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언제 아이스크림 가게가 나올지 모르니 트램도 타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아무리 걸어도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은 나오지 않았고, 여정을 시작한 지도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지금 돌아가도 한 시간이나 자리를 비우는 셈이니, 잠깐 저기까지 다녀온다고 했던지라 엄마도 걱정하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는 "그 남자애는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사서 트램을 타고 돌아온 게 아닐까." 혹은 "그 남자애는 아이스크림은 정말 천천히 먹거나, 혹은 걸음이 엄청나게 빠른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마도 우리가 지금 당장은 닿을 수 없는 어딘가 먼 곳에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파는 환상의 가게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숙소로 되돌아왔다.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다시 찾으러 갈 거야."

그렇게 다짐하면서 다시 리조트로 되돌아왔을 무렵에는 해가 벌써 뉘엿뉘엿 넘어가려는 시각이었다. 호텔 뒤로 비치는 석양이 또 어쩜 그리 아름답던지.


막 해가 진 뒤의 샹그릴라 리조트.


저녁은 리조트 안에서 해결했다.

집에서 찾아봤을 때에는 실로소 비치 부근에 있는 야외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유니버설 스튜디오 일정에 코코넛 아이스크림 찾는 여정까지 더해져서 너무도 다리가 아팠기에 리조트 안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살펴본 후기에서는 주로 저녁 뷔페를 이용했다고 되어 있었는데, 우리는 그다지 배가 고프지는 않았기 때문에 단품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뷔페 레스토랑을 지나쳐서 복도를 따라가면 마지막에 나오는 곳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가격대도 그리 비싼 편은 아니었고 전혀 맛이 없어 보이는 식당과 요리의 겉모습과는 달리 맛은 나름대로 괜찮았다. 

대충 이런 걸 먹었다. 맛이 없어 보이지만 의외로 맛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끝내고 계산은 호텔 방에 걸어두려고 했는데, 방 번호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름으로 찾아준다고 했지만 그것도 뭔가 제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라 한참을 헤맨 끝에 겨우 해결했다. 그러고는 밖으로 나와서 이번에는 바로 보이는 바에서 칵테일을 한 잔 하려 했는데, 옆에 있는 바비큐 식당에서 어찌나 메케한 연기가 날려 오던지. 오 분도 안 돼서 포기했다.


결국 싱가포르의 마지막 건배는 방에서.

옆에 바로 누울 수 있는 침대가 있다면 술도 두렵지 않다! 내가 그렇게 주장했기에 우리는 싱가포르 슬링을 세 잔 시켰다. 냉장고에 들어있던 웰컴 바구니와 다른 과자와 함께 먹기 시작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음…….

그러니까, 칵테일 양이 너무 많은 게 문제다.


저래 보여도 일단 안에 들어간 술의 양이 많아서 나에게는 엄청 괴로웠다. 엄마와 M은 롱 바에서 마신 싱가포르 슬링만은 못하다는 평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맛있게 마시는 것 같았다. 나는 중간이랄까 삼분의 일도 채 못 마신 시점부터 나가떨어져서 침대에서 씩씩거리고 있었는데, 역시 술 한 잔을 다 마시겠다고 욕심을 내는 건 나에게 무리였던 듯했다. 아무리 침대가 옆에 있어도 말이다. 오래간만에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을 맛보았기 때문에, 덜컥 겁이 나서 한참을 침대에 누워 생수를 들이켰다.

그리고 저래 보여도 샹그릴라의 웰컴 바구니에 들어있던 정체 모를 과자들이 참 맛있었던 게 기억난다.


내일은 드디어 마지막 날이다. 돌아가기가 아쉬워서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며칠 동안 쌓인 피곤 때문에 엄청나게 빨리 잠들고 말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싱가포르 거닐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