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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로망 Aug 17. 2022

욕망의 진화 3 : 내 노래가 하나 있었으면

근본 없는 10대의 무작정 작곡 도전기

어느 정도 악보 보고 반주가 가능해지고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따로 집에서 연습하지도 않았던 기타는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가서 조금씩 하지만 꾸준히 깔짝 거렸던 시간이 누적되자 어느새 웬만한 악보집 안에 있는 CCM들은 얼추 반주가 가능한 수준이 되었습니다.(물론 최소한의 반주로서 구색을 갖춘 것일 뿐 퀄리티나 세련됨을 바랄 수준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치다 보면 쓰게 된다

그러다 보니... 슬슬 사람이 욕심이 생기더군요.

마음에 새로운 욕망이 피어오른 계기는 바로 교회 중등부 시절 주일학교 선생님이자 연극 지도 선생님으로 알게 된 어느 집사님에 의해서였습니다.


당시 교회 선생님이 직접 만드셨던 나름 교회에서의 히트곡


어느 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교회에서 즐겨 부르던 찬양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땐~"으로 시작하는 찬양이 바로 그 집사님이 만드신 곡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경외심과 함께 "어떻게 하면 사람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만들 수 있지?"라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교회 문학의 밤 행사로 연극 조연을 담당하여 연습을 하던 어느 날 (연극 연출 겸 지도를 겸하시던) 그 선생님께 어떻게 하면 작곡을 할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선생님의 대답은 예상외였습니다.


계속 밴드(연주)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능하게) 돼


당시만 해도 작곡이라는 영역은 주법 몇 개를 배우고 이를 익혀 반주/연주에 활용할 수 있는 악기 연주와 달리 뭔가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이들만 가능한 전문영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물론 작곡의 전문성을 부정하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악기를 통한 반주가 익숙해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코드의 흐름을 몸으로 익히게 되고 이에 따라 코드 진행을 어렴풋이나마 유추할 수 있는 단계가 된다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멜로디에 코드를 입히는 일은 그 세련도와 완성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수년 뒤에 깨닫게 되었을 때 당시 그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자연스럽게 가능해진다"라는 말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1-6-4-5"의 코드 반복에 가사와 멜로디를 입히다.

어느 날 너무나도 유명한 Canon의 코드 진행만큼이나 CCM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6-4-5의 코드 진행에 노래를 만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C - Am - F - G

D - Bm - G - A

E - C#m - A - B

...


위와 같은 순서로 이루어진 정말 흔한 코드 패턴인데요, D - Bm - G - A라는 코드 진행을 반복하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가사로 붙여보다 보니 조금씩 구조가 잡혀갔습니다.


D                       Bm          G             A
사랑에 지쳐 본 지 오래    이별에 슬펴해 본 지 오래
섣부른 기대에 잠 못 이룬 것도 오래오래 오래오래

https://youtu.be/seLc_-1JQUY

Oreo Rae, 조대득밴드


이보다 더 단순할 수 없는 코드 진행에 "~오래"라는 가사 뒤에 운을 맞춰 당시 솔로로 있던 처지를 푸념하다 보니 어느새 가사가 완성되었던 이 곡은 제가 만든 곡 중에 가장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곡이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투박하지만 풋풋했던 20대의 감성으로 쓰인 곡이라 애착을 가지고 있는 곡 중 하나입니다.


오랫동안 글쓰기의 치유효과를 연구해온 미국 심리학자 제임스 페니베이커 James Pennebaker는 두 집단에 일기를 쓰게 했는데, 한 집단에는 그날 한 일을, 다른 집단에는 그날 느낀 감정을 쓰라고 했다. 일을 쓴 집단은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으나, 감정을 쓴 집단은 정신적·육체적으로 이전보다 훨씬 건강해졌다. 글을 쓰면서 부정적인 감정에서 헤어난 것이다. 배설은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
<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 저>


그저 '세상에 나의 언어와 감성을 담은 노래 하나쯤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호기심에서 무작정 도전해 본 것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무모한 도전을 감행한 나 자신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서툴지만 그렇게 저의 감정을 표출하는 카타르시스의 수단이 생겼다고 할까요?


처음 노래를 만들던 당시엔 이걸로 뭘 해보겠다 하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저 노트에 적어놓은 시나 일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주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대체로 비공개인 글들처럼요. 하지만 고정된 멜로디와 가사로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하며 부를 수 있는 어느 정도 완성된 형태가 되었을 때 "드디어 내 노래가 생겼다!"라며 마냥 기뻐하던 것도 잠시, '이 좋은 걸 나만 감상할 수는 없지'라는 나르시시즘이 폭발하며 남들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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