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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로망 Sep 30. 2022

욕망의 진화 6 : 원 맨 밴드를 해보고 싶었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던 신해철,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처럼 원 맨 밴드를

통기타와 보컬만으로 구성된 녹음은 여러모로 장르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리듬악기가 없이 통기타와 보컬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보컬의 자질을 가지지 못한 것이 가장 주효했습니다.


원 맨 밴드를 해보고 싶은 마음은 당시 즐겨 듣던 3명의 아티스트에 의해서 생겨났습니다.

신해철의 Techno Works, 서태지의 1집 앨범, 달빛역전만루홈런의 앨범들의 공통점은 리듬 프로그래밍(드럼)에서부터 기타, 베이스, 키보드, 보컬의 모든 역할을 한 사람이서 다 해낸 원 맨 밴드 앨범이라는 점입니다. 


카세트테이프나 시디로 새로운 앨범을 구입해 잘 뜯기지 않는 비닐을 벗겨낸 뒤 플레이어 재생 버튼을 누르고 첫 정주행을 하곤 하던 설렘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미리 듣기도 없던 시절, 입소문으로 혹은 팬심으로 음반을 고르던 시절인지라 구매한 뒤에 설레이는 마음으로 플레이어의 재생 버튼을 누르고 처음 듣게되는 신곡과의 만남은 그 앨범을 구매해서 누리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였습니다. 정주행을 하며 함께 포함되어 있는 재킷과 부클릿을 읽으며 가사와 각 곡별 작사/작곡/연주자를 확인하는 재미 역시 쏠쏠했는데요, 전에는 그저 넥스트라는 밴드의 모든 곡의 작사/작곡을 담당하는 보컬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신해철의 Techno Works의 Staff 정보는 당시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신해철 - 프로듀서,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 보컬, 랩, 편곡, 건반, 컴퓨터 프로그래밍, 코러스, 기타, 무그, 녹음·믹싱(신해철 자택 스튜디오)...


말 그대로 제가 꿈꾸던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 고를 다 한 앨범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건반이야 기존 넥스트 시절 당시 키보드와 신디사이저를 연주했으니 그러려니 했는데 리듬을 프로그래밍하고 직접 기타를 연주해서 혼자서 밴드로나 가능할 법한 사운드를 만들어 낸 사실에 "저런 원 맨 밴드 나도 해볼 수 있을까?"라는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원 맨 밴드를 향한 저의 도전은 그나마 가장 친숙한 악기인 통기타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통기타를 칠 때에 잡는 고난도의 하이코드(바레코드)에서 가장 낮은음에 해당하는 부분이 대체로 베이스 기타가 연주하는 베이스 음이라는 사실과, 기타에서 1,2번 줄을 제외한 4줄만 놓고 보면 그것이 베이스 기타의 음계와 (옥타브만 다를 뿐) 동일하다는 사실이 베이스 기타를 배우는 것에 대한 심리적, 배경적 진입장벽을 크게 낮추어 주었습니다. 일단 악보에 적힌 베이스 코드를 보고 어느 프렛을 운지해야 할지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접한 베이스 기타이기에 뭔가 단순한 패턴의 베이스 연주는 얼추 바로 흉내 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베이스 기타의 매력에 빠지는 바람에 '이참에 베이스 주자로 전향해버릴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그래도 홀로 방구석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반주할 만한 악기는 통기타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을 이내 자각했고, '우선 기타나 열심히 연습하자'는 결심과 함께 베이스 연주자는 잠시 두번째 자아로 뒷켠에 남겨두기로 합니다.


문제는 밴드 음악을 구성하는 데에 있어 빠질 수 없는 드럼을 녹음하는 것이었는데요,

당시 아무런 기초 없이 날림으로 배운 저의 드럼실력이 메트로놈 박자에 맞춰서 일정하게 박자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 못되었거니와 적정 수준 이상의 연주를 녹음하기 위한 녹음 환경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이제 막 작곡에 관심을 가진 학생의 신분으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결국 "드럼은 MIDI로 찍어서 이를 합칠 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단순하게 마이크에 특정 악기와 목소리를 담아내는 하드레코딩을 넘어 DAW내에 가상악기들을 연주하고 녹음하는 과정에 대해서 좀 더 찾아보고 공부를 해보려 했습니다... 만 당시 컴퓨터로 가상악기의 연주를 녹음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조건을 만족해야 했습니다.


1. DAW 구동이 가능한 컴퓨터 : 고등학교 때는 개인 PC가 없어 학교의 컴퓨터실 PC로 3년을 보냈습니다. 개인 PC는 대학에 들어가서야 겨우 저사양으로 하나 소유하게 됩니다.

2. Low Latency 입출력이 가능한 오디오 인터페이스 : 군 복무 후 복학한 뒤에 처음으로 오디오 인터페이스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3. 가상악기를 사용할 수 있는 DAW 숙지 : 대학에 들어가 처음으로 Cakework(이후 Sonar로 명칭이 변경된)에서 비트를 찍는 법을 배웠습니다... 만 찍은 비트를 어떻게 음성파일로 변환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저의 첫 번째 비트는 Cakework의 비트를 재생하고 그 출력을 Aux케이블로 연결하여 녹음하는 아주 원시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4. 드럼 비트(를 포함한 가상악기)를 녹음하기 위한 미디 키보드 : 인터넷으로 정보검색이 용이하지 않던 시절에는 이 과정이 가장 난감한 과제였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보니 DAW를 통해 직접 자신이 만든 곡을 녹음하는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 선배들에게 "제발 저에게도 그 지식을 전수해 주소서"라고 삼고초려했지만 결국 음악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세팅한다는 것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환경과 장비를 모두 똑같이 지르지 구 매 하지 않는 한 결국 그들과 동일한 작업환경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당시 저는 학자금 대출로 빚을 지며 겨우겨우 학기를 버텨가는 가난한 학생이었으니까요.


결국 위와 같은 여러 장벽에 의해 마음먹기와 달리 원 맨 밴드를 위한 최소한의 환경 세팅은 미루고 미뤄져 복학하는 2008년 즈음에 이르러서 시도하게 됩니다. 손가락 드러머(MIDI 드럼)라는 나의 자아 3이 영입되기 전까지, 내 안 또 다른 자아 1, 자아 2인 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는 새 멤버를 학수고대하며 나름의 팀워크를 조금씩 맞춰가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간 완전체의 원 맨 밴드가 되는 날을 희망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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