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드어웨이 매거진 VOL2
"숨을 곳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하이드어웨이가 이번에 선택한 주제는 'The Runaway 도망'이다. 그들이 추구하고, 추구하기로 선언한 방향과도 너무나 딱 들어맞는 키워드가 아닐 수 없다.
잡지는 '도망'이란 주제로 통일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보여준다. 영화나 책에서 발견한 '도망'에 대한 담론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일상 속 도망을 보여주기도 하며, 도망가기 딱 좋은 국내외 도시들과, 가게, 숙소 같은 정보를 알려주기도 한다. '도망'이란 주제로 개인의 경험과 생각이 담겨있는 여러 인물의 칼럼도 볼 수 있었다. 패션, 예술, 정보, 칼럼, 인터뷰 등 다양한 범위에서의 '도망'을 다양한 형식으로 묶고 정돈하여 소개한다.
'도망'이라는 게 특정 분야나 물건이 아니라, 상태나 행위를 지칭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도망'이란 키워드에 담을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했다. 무엇으로부터 도망을 가는지, 어떤 도망을 하는지, 도망의 목적지는 어디인지에 따라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엮었고, 평상시엔 별개였던 이야기들이 '도망'이란 주제로 통일성을 가지게 되었다.
흥미로웠던 건 이 잡지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이 '도망'이란 키워드에 담기자 조금 더 다정하고 친밀해졌다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생각을 가지든, 누구든 삶에서 '도망'이란 키워드를 마음 한편에 담아두고 있어서일까.
사회적인 시선에서 '도망'은 회피, 합리화, 외면 등과 같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수반하지만, 이 잡지는 '도망'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조건 긍정하는 것도 아니고, 진짜 편견 없이 '도망'을 대한다. 그런 태도가 모든 글에서 보인다. 그 태도가 마치 우리가 마음 한편에 간직하고 있지만 쉬쉬하는 '도망 욕구'를 알아주는 듯하여 묘한 친밀감과 다정함을 느끼게 한다. 시시콜콜하고 볼품없는 이야기까지 대화 주제로 오르는 친한 친구와의 술자리 토크 같다. 근데 그게 참 좋다.
나도 '도망'이란 단어가 참 친숙하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여기는 단어가 친숙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그 단어에 담긴 의미와 멀어지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사람인 경우가 많지 않을까? '결핍'을 그리지만, 자신의 '결핍'을 외면하고 혐오한다는 이 잡지 속 인터뷰에 실린 이도담 작가처럼 말이다. 나의 경우도 그렇다. 나는 스스로를 쉽게 도망친다고 생각했고, 그렇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많이 다그쳤다. 일기장에도 '도망'은 자주 등장한다. "외면하지 말자, 도망치지 말자."라는 문장과 함께.
그래서 그런지 잡지를 읽으며 묘한 편안함과 포근함을 느꼈다. 더불어 나의 '도망'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전에 편견이란 색안경을 끼고 나 자신을 과하게 다그친 건 아닌지란 생각도 들었다. 도망의 ㄷ자만 나에게 발견되어도 패배자가 된 양 소스라치게 놀라는 꼴이었으니까.
아, 잡지의 맨 앞 소개 문구가 떠오른다. "친숙하지만, 그래서 전형적 이미지에 갇혀 고루해진 일상적 가치와 삶의 태도를 낯선 시선으로 발견하고자 합니다"란 문구. 어쩌면 우리가 들여다보고 생각해야 하는 많은 것들이 친숙한 것보다 낯설고 외면하는 것에 있구나란 생각이 스친다.
얼마 전 카카오크리에이터스데이 강연에 가서 이런 말을 들었다. 잡지 그것도 패션 잡지는 "내가 짱이야, 앞서 있어"라는 자신감과 태도가 필요해서 항상 글을 쓸 때 독자들에게 가르치듯 적어야 했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이 떠오르며 이 잡지의 다정함이 새삼 소중해졌다. 다정한 잡지라니!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writer 심록원
문화예술플랫폼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