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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soozin Nov 01. 2017

알바만 하고 살아도 괜찮을까? #2

직장을 떠나 알바를 한다는 것

퇴사 후 세계여행, 돌아오니 백수. 

서른살 굿수진의 좌충우돌 한국 적응기

알바만 하고 살아도 괜찮을까?



2편/

서른살 알바생이 되었다. 



어쩌다보니 프리타가 되었다. 내가 일하게 된 곳은 미군 부대 호텔 내의 레스토랑. 투고(to-go) 손님이 있어서 들린 키친에서 빠져 나오는데 바텐더 오빠가 "아 두산 요새 너무 잘해?"라며 호탕하게 웃으며 현구 오빠에게 말을 건냈다. 다른 직원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서버는 일하는 중간에 폰을 쓸 수 없기 때문에 현구 오빤 아예 레스토랑에 폰을 들고 오지 않는다. 요즘은 야구 시즌이라 현구 오빠가 엄청난 야구 팬이라 바텐더에게 틈이 날 때마다 가서 "어떻게 됐어?" 묻는다는 설명을 곁들여야 겠다. 아마도 바텐더 오빠는 다른 팀 팬인가 부지. 두 명이 기분 좋게 건내는 말에 '아 오늘 일하러 나오길 잘했다.'고 조그맣게 퐁- 기분 좋은 웃음이 떠올랐다. 백수일 땐 집에 혼자 있었다. 역시 사람은 사람들이랑 부대껴야해. 


여기서 내가 맡은 업무는 캐셔다. 돈을 정확히 계산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하지만 중요한 업무다. 캐셔의 자리는 누구에게나 오픈 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늘 돈통이 있는 쪽으로 다가와 어떻게든 모니터를 들여다 보려고 한다. 아니 저기요. 모니터 들여다 보신다고 숨겨져 있는 비밀이 보이는 건 아니거든요. 라고 한마디 붙여주고 싶지만 유니폼을 입은 캐셔인 나는 싱긋 웃으며 나인티나인 썰. 이라고 말하고 만다. 유니폼을 입는다는 건 그런거다. 나라는 정체성은 사라지고 한명의 캐셔로서 존재하게 된다. 


한국 손님이라면 "봉사료 포함해 드릴까요?" 를 잊지 말아야 한다. '봉사료' 혹은 '서비스 차지'는 팁을 둥글게 완화한 말이다. "팁"이란 단어를 쓰면 경망스러워 보이는 법이라도 있는 건지 모두들 에둘러 칭한다. "팁 말하는거에요?" 라고 손님이 물어보면 내가 슬쩍 놀랄 만큼 낯설다. 대신 하는 말은 "15% 넣어주세요." 라거나 다짜고짜 "포함해주세요."라 할 때도 있고 "들어가 있죠?" 등등 많은 버전이 있다. 어떤 버전이든 나는 이제 한달이 넘은 베태랑이니까 찰떡같이 알아듣고는 "네!"하고 답한다. 물론 내게 떨어지는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툭툭히 놓고 가는 손님이 좋다. 조금 낸다고 미운 건 아니다. 그럴 땐 1불 2불에 벌벌거리던 여행시절 내 모습이 겹쳐져 짠할 때가 있다. 


서버 언니들은 팁을 (예상했던 만큼) 못받으면 내게 와서 손님 흉을 보고 간다. 어유 돈 많다고 자랑하더니. 만원 밖에 안남기고 갔어. 아우. 하는 식이다. 내가 이틀 일해야 꼬박 모을 수 있는 돈을 하루밤 팁으로만 벌어가지만 나는 그저 웃고 만다. 서로의 역할이 다른 거니까. 하지만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 갈 때마다 몸이 꽁꽁 묶인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것들도 존재한다. 이를테면 낮잠이라거나, 늦잠이라거나, 평일의 휴일 같은 내가 누릴 수 있는 내 시간같은 것. 


캐셔에게 떨어지는 팁은 없다. 그런데 일절 없는 건 아니라서 테이크아웃을 하는 손님이 왠일로 기분이 좋아서 혹은 양심에 찔려서 혹은 습관적으로 팁을 남기면, 그건 내 차지가 된다. 그래봤자 1불 정도 남기고 갈까 말까 하는 수준이니 많지는 않다. 기대하지 않는 편이 차라리 맘 편하다. 


팁 많이 주는 손님은 늘 사랑받는다. 치사하게도 그렇다. 나마저도 투고 손님이 1불이라도 팁을 써 넣으면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드니 뭐 할말은 없다.  


손님이 체크를 받아서 캐셔에게 가져오면 나는 보통 저녁 식사는 어땠는지 물으며 손님의 기분을 살펴본다. 매도 먼저 맞는 편이 낫다고 불만이 있는 손님이라면 내가 묻고서 물꼬리를 터주는게 낫다는 걸 2주만에 깨쳤다. 하지만 보통은 "엑설런트" 라거나 "잇 워즈 판타스틱"이란 대답이 돌아온다. 그럼 손님에게 카드를 받아서 포스에 긁어 가승인 상태를 만든다. 그러면 팁, 합계 금액, 서명란만 적힌 심플한 보관 영수증이 출력돼 나온다. 이때가 관건이다. "필 디스 업 플리즈" 하고 손님에게 볼펜을 똑딱 눌러서 바로 쓸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서 함께 건내는 것. 


이 찰나, 팁을 적는 시간이 제일 재미있는 시간이다.  


팁에 민감한 사람들 말고, 언제나 자신이 정해둔 퍼센티지로 팁 내는 사람들 말고, 그 상황에서 팁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손님들의 심리 상태에 슥 개입하는 거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처음 캐셔일을 시작하고는 팁 란을 채워달라 종이를 주고는 일부러 손님을 쳐다보지 않았다. 어차피 내 것이 아닐 팁을 가지고 손님을 푸시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던 데다가,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에 내가 팁 때문에 부담스러워 외식을 하지 못했던 기억이 나서 였다. 


몇 주 일을 하고 나서 나는 되려 뻔뻔하게 "사인 플리즈"라고 하지 않고 "우 쥬 필 디스 업 플리즈"라고 말하며 손님을 칭찬하거나 빤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큰 돈을 아무렇지 않게 펑펑 쓰는 손님들에게 익숙해진 탓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어떻게 행동하냐에 따라 다른 금액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겨서 였다.  


손으로 슬쩍 종이를 가리고 쓰는 사람, 계산기를 두드려 15%를 맞추는 사람, 00으로 끝나도록 센트를 붙이는 사람, 그냥 10불 붙이는 사람, 다양한데 그 가지각색의 모습이 참 재미있다. 맞아. 난 사람들의 심리에 관심이 많았지. 그래서 마케팅을 좋아했다. 갑자기 너무 늦기 전에 다시 현업에 돌아가 비슷한 사람들과 신나게 마케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글을 쓰면서 자잘한 돈벌이나 해야겠다고 가볍게 생각하고 구한 일이었는데 그래도 소속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직접 돈을 버는 기분도 좋다. 각기 다른 매니저들이 서로 다른 룰을 들이대며 이리해라 저리해라 할 때 빼고는 말이다. 오늘 하루도 잘 마무리 지었다 라고 생각하고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가져가야 하는 아이디어의 압박 같은 건 없다. 



그렇게 몇달을 일했다. 내게 주어진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문제될 일도 없었다. 2주 만에 한번씩 스케쥴이 나왔고 한달에 한번씩 월급이 들어왔다. 직원식당은 값이 싸고 맛있었고 호텔 짐과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어 정말 좋았다. 하지만 일할 수록 이 곳에 오래 있어야 겠다는 생각보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어쩌다보니 프리타가 되었지만 프리타로 보낸 시간이 내가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여유를 마련해 준 걸지도 모르겠다. 


- 다음편은 스타트업 구직 에피소드와

- 미군 부대 호텔 레스토랑에서 알바한 이야기

- 일하고 싶은 기업을 찾은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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