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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밈 Feb 27. 2020

15. 코로나의 습격

아아, 여긴 대구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처럼 모바일 뉴스를 본다. 옛날에는 정치, 경제, 사회 등 골고루 기사가 올라왔다면 요즘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기사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제 대비 확진자 수가 몇백 명 더 늘었더라, n번째 확진자가 사망했다더라 등등.


기사가 쏟아지면 물어뜯기 좋은 숙주를 찾아낸 것처럼 바이러스들이 몰려온다. 그것은 바로 댓글들. 무능한 정부를 욕하는 댓글, 중국을 욕하는 댓글, 의료진을 위로하는 댓글, 지역 혐오에 비아냥거리는 댓글, 빠른 검진 시스템을 칭찬하는 댓글 등. 가지각색의 바이러스들이 수만 개 몰려와 우글우글거린다.


탁. 뉴스를 꺼버린다. 아무리 세상이 요란해도 나는 오늘도 똑같은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시끄러운 인터넷 세상에서 빠져나오면 고요한 나의 일상이 펼쳐진다.


그렇다. 정말 길거리는 폭풍전야처럼 고요한 적막감이 감돈다. 그렇게 출근을 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현재 1,132명인 대구의 어느 정부기관으로.




분명 어제와 똑같은 오늘인데 미묘하게 달라졌다. 출퇴근 시간, 버스에는 사람들이 고작 1~2명밖에 없다. 그동안 내가 마주친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지,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지 알 수가 없다.


이용하는 타 회사 구내식당도 외부인 출입금지로 바뀌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모두가 도시락을 사 먹게 됐다. 근처 식당들은 장사가 안되지만 도시락 업체는 오히려 반짝 매출이 상승한다. 역시 세상은 자연적으로 균형이 맞춰지는 것인가. (-)가 있으면 어딘가 (+)가 발생한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고. 찬성이 있으면 반대가 있고. 슬픈 날이 있으면 기쁜 날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렇다면 올해 겨울, 대구에 상상도 못 할 만큼 좋은 일들이 마구 발생해야 한다. 지금 이 코로나 사태 때문에 기울어진 균형을 맞추려면.


출근할 때부터 퇴근할 때까지, 사무실에서도 주야장천 마스크를 끼고 있다. 너무 답답하지만 화장을 안 해도 되는 장점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아침에 조금 더 이불속에서 꼼지락거릴 시간이 생겼다. 장단점은 정말 사소한 것에도 있구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업무에도 차질이 생겼다. 진행하는 업무가 대민 업무다 보니 당분간 중단해야 했다. 매일매일 코로나 관련 회의와 보고가 이루어지고, 진행 업무는 중단하라고 공문이 내려온다. 일은 못하게 되었지만 출근은 해야 하는 아이러니다. 하지만 어김없이 장점은 있다. 모든 일을 갑자기 멈추게 되니, 하루에 여유가 생겼다. 그동안 시계도 쳐다보지 못하고 책상에 코를 박고 일하다 고개를 들면 퇴근 시간이었는데. 이제 시계도 보고 창밖의 텅 빈 도로를 쳐다볼 시간도 생겼다.


그리고 각 지역에 사는 친구, 친지, 동기들이 연락 온다.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사람들까지도. 이런 상황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대구 괜찮아?"

"응. 대구는 모르겠지만 난 괜찮아"


아마 일본 후쿠시마나 중국 우한에서 살고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다들 이 도시와 내 안위를 걱정해준다. 당장이라도 바이러스가 이 도시를 잡아먹고 밖에 나가면 내가 잔혹한 감염병에 걸릴 것처럼 뉴스가 떠들어대니 이해할 만도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평소처럼 일하고 아주 멀쩡하지만, 창밖의 대구는 조금 낯설게 변했다. 대구는 괜찮지 않은 것 같다. 사무실에서 주어진 일만 하는 나는 크게 체감을 하지 못하지만,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은 타격이 클 것이다. 거리에 유령도시처럼 사람이 없는 게 너무나도 확연히 느껴지니.




긴긴 겨울을 이겨내고 모처럼 봄이 오나 했는데 그 사이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와버렸다. 그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모두들 집 안에서 꼼짝도 못 하고 있지만, 곧 꽃이 피고 훈훈한 봄기운이 만연하게 되면 2020년의 액땜은 이제 그만 이쯤으로 하고 끝났으면 좋겠다.


작년 A형 독감을 지독하게 앓았었다. 폐가 찢겨나갈 것처럼 기침을 하고 두통에 열이 올라 눈물을 흘리며 밥을 먹었는데. 정말 감기와는 차원이 다르구나 하고 느꼈다.


지금은 또 다른 차원의 바이러스가 퍼져나가고 있으니 모두가 스스로 조심하자.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죽음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프면 몸이 힘든 시기를 겪어야 하니, 자신을 위해서라도 조심하자.


힘든 시기를 겪을 때는 내편과 남의 편이 눈에 띄게 잘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똑같은 일을 겪고 있는 한 편이다. 서로 물어뜯고 으르렁거릴 때가 아니라 서로 편을 먹고 위로하고 힘을 내고 이겨내야 한다. 모두들 지나친 불안과 걱정은 멀리 하되, 내 주변과 스스로의 몸은 잘 챙겨 굳이 느끼지 않아도 될 아픔을 겪는 일이 없길 바란다.


그리고 내가 사는 도시, 대구도 얼른 회복해서 뜨거운 여름을 보여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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