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느끼지만 세상에는 놀랍도록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단순히 혼자만 이상하면 괜찮겠지만 그들은 결코 혼자 가만히 있지 않는다. 자기 성질대로 되지 않으면 상대방의 입장 따위는 상관없이 욕설을 내뱉고 막말을 지껄인다. 그런 사람들을 이 직장에서 무수히 많이 봐오면서 '세상 사람이 다 착하다고 생각한 나는 한낱 우물 안 개구리였으며 약해빠진 토끼에 불과했구나.'라고 생각했다. 저런 독사보다도 더 악랄한 인간들이 득실대는 이곳에서 어떻게 참 잘도 꾸역꾸역 참아내고 잘 살아가고 있구나,라고 스스로에게 씁쓸한 위로를 건넸다.
어제, 오늘 연달아 본 인터넷 뉴스에는, 지하철과 기차 안에서 누군가 자신에게 마스크를 끼라고 지적하자,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여 상대방을 폭행하고 침을 뱉고 욕을 한 괴물들이 나왔다. 정말 수준 이하의 사람들을 보고 분노가 치밀었다. 그냥 마스크를 다시 쓰면 될 일을 가지고 인성 저 밑바닥 수준까지 드러내 보이며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다니. 저런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얼마나 밑바닥 인생을 살았으면 매 순간 화가 들끓고, 그것을 스스로도 주체하지 못할까. 정말 씽크홀에 파묻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매일매일 만나는 나는 정말 사람에게 환멸을 느낀다. 그동안 우리 조직에 엉터리 민원을 지속적, 일괄적으로 넣으며 매일끈질긴 장시간 전화로 직원들을 괴롭히는 악성 민원인이 있었다. 수년 째 전국구로 이어져오는 같은 행각에 직원들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였고 결국 감사실에서 고발하여 대법원까지 간 끝에, 그는 보호관찰과 징역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그렇게 사건이 종결되는 듯하였으나, 며칠 전 따르릉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바로 그 악성 민원인이었다. 보호관찰 조치 조항에서 '전화 금지, 제보 금지' 조항이 민원인 인권 문제로 삭제되는 바람에 아무리 대법원 판결을 받았어도 그는 또다시 자유의 몸이 된 것이었다. 그의 말도 안 되는 질문과 요구에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그는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할 말만 하였고, 무리한 부탁을 하고 욕을 하였다. 올해 80살이라는 이 사람은 인생의 낙이 이렇게 공무원들을 괴롭히는 것밖에 없구나. 참 불쌍했다. 스스로의 인생을 좀 더 빛나는 곳을 위해 쓸 수 있었을 텐데.
일의 특수성 때문인지, 세상엔 정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것을 느낀다. 근로자도, 의사도, 사업자도, 학원 선생님도, 점집 무당도, 스님도, 목사도, 공무원도. 전부 다 똑같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고 환멸만 남는 이곳.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라고 했던가. 출근길 고양이 한 마리밖에 내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어디에나 또라이는 존재한다고 한다. 그 질량은 보존된다고. 굳이 그 질량이 보존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함께 더불어 가는 세상에 악랄한 존재는 마땅히 사라져야 한다. 그렇다면 또라이들은 보존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태워 없애야 하는 것 아닌가. 그들은 질량 보존법칙에 의해 당연하게 우리 옆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그들을 응징하고 타개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