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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출 Nov 21. 2019

씨앗 냄새

2부-죽음의 이야기들.1

1

 죽음이란 이승과 작별하고 영혼과 결혼하는 성스러움이다. 상갓집 신발들의 울음소리와 웃음소리가 왁자지껄한 공간은 단순한 인간의 감정일 뿐, 어둠을 뚫고 죽음들이 다가온다. 낡은 벽 속에서 할머니의 외마디 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린다.
  초등학교 3학년 적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당시, 할머니가 왜 아팠었는지, 무슨 병을 앓고 있었는지는 조차 알지 못했다. 내 머릿속에는 할머니의 병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동네 개구쟁이들과 신나게 뛰어노는 것밖에는 몰랐었다.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할머니의 모습은 여장부답게 풍채가 좋고 얼굴이 아주 무서운 분이셨다. 특히, 동네 남정네들조차 맞상대하기에 버거운 존재가 우리 할머니셨다. 그렇게 대단했던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마당 한가운데 쓰러지신 후,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중병을 얻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주고받는 얘기를 엿들어보니 할머니의 병은 중풍이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할머니가 풍을 단단히 맞았다!”

중풍이 무서운 병이란 것을 몰랐던 나는 그냥 “할머니가 매우 아프신가 보다.”라는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어머니는 수년 동안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의 똥오줌을 받아내고 정성껏 돌보셨다. 안방에서 진동하는 할머니의 배설물 냄새는 벽을 타고 작은방까지 스며들었다. 고리타분한 냄새는 오랫동안 우리 집안에 가득 남아 있었다. 할머니는 어머니의 희생적인 보살핌의 보람도 없이 삼 년 동안 꼬박 고생하시다가 결국 돌아가셨다. 권력과 부와 명예를 가진 어떤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우리 집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삽시간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야말로 도떼기시장처럼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분주하게 장례를 준비하는 동네 사람들의 고함과 상주들 곡소리가 난무한 화음은 그야말로 인생의 저잣거리였다. 죽음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별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을 때 얼마나 아플까?’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이렛날 이른 아침에 울긋불긋 꽃상여가 대문 밖에 도착했다. 할머니를 태우고 염라대왕 앞으로 가자는 저승사자의 독촉장이었다. 나도 상여 앞에 동네 형들과 함께 앞다투면서 줄을 섰다. 대나무 꼭대기에 매달은 명정대, 공포대, 운삽 및 부삽 그리고 조기 중 한 가지를 들면 돈 몇 닢 받을 수 있기에 상여 깃대를 드는 것 또한, 아이들의 은근한 눈치 경쟁이었다. 꽃상여는 소리꾼 선창에 따라 천천히 장삼불(長杉火)로 향했다.

 앞소리꾼이 상여 머리를 잡고

 “가네! 가네 나는 가네/ 살던 살림 헌신같이 벗어버리고/대궐 같은 집을 빈집같이 비워 놓고/ 청춘 같은 사람에게 어린 자식 맡겨 놓고/극락세계로 내가 가네!”

 소리꾼이 상엿소리를 힘차게 선창 하면 상여꾼들은 후렴을 힘차게 부르면서 천천히 집을 나섰다. 어머니를 비롯하여 작은어머니, 큰누나는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그 울음소리가 아직도 내 달팽이관을 맴도는 듯하다.

 “어하아, 어이 어 하,”

 상여는 비탈진 언덕배기를 올라 장지에 도착하여 할머니를 하관하고 평토제가 끝나면서 상례는 모두 마쳤다. 그런 후 아래채에는 할머니 혼을 모시는 빈소가 마련되었다. 할머니 빈소를 자주 기웃거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어머니는 할머니 빈소에 드나들며 삼 년 동안 꼬박 절을 올렸다. 철이 조금 나면서 이런 풍습이 바로 삼년상이란 것을 알았다.

 그 후부터 많은 세월이 흘러간 지금까지도 많은 죽음은 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일주일 전, 고향 친구 부친께서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받고 친구 몇 명과 함께 고향 상갓집을 찾았다. 좁은 동네인지라 상갓집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입구부터 양옆으로 부동자세로 줄을 서 있는 화환들이 수십 개는 족히 되어 보였다. 그것은 이미 죽은 이를 위한 것이 아닌, 살아 이는 자들의 보신 같아 보였다. 벌써 문상객들은 여기저기 진을 치고 술잔을 기울이며 왁자지껄하다.
  향내가 가득한 빈소 정면에 친구 아버님의 영정 사진 하나가 놓여 있다. 사진틀 안에 친구 아버님은 근엄한 표정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친구 아버님을 마지막으로 뵙고는 오늘 염치없이 불쑥 얼굴을 내밀고 있으니 나 자신이 민망하다. 살아 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뵈어야 했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게으름을 피우다가 꼭 부음을 듣고 달려오는 내가 싫어졌다. 상주인 친구는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이 그렇게 평화롭고 편안할 수가 없다면서 호상이란 수식어를 동원하며 애써 슬픔을 감추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이 죽음인데 친구의 마음이 얼마나 비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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