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에세이 20 - 사랑은 두려움을 이긴다.
“시를 쓰려면 일종의 노출증이 있어야 하는데...” 그분이 시를 쓰지 못하는 이유라고 한다. “음... 노출하는게 아니라 노출되는거 같은데요...” 반사적으로 대답이 나갔다. 마치 항변이라도 하듯이. 물론 나는 시인이 아니다. 하지만 시인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꽃봉오리가 아무리 수줍은들 어떻게 만개를 막을 수 있을까? 그 안에 아름다움이 가득 차면 어느새 벌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감각적이고 은밀한 속살을 감탄하며 바라본다. 그리고 어찌 그것이 단지 관음증에 불과할까?
얼마 전에 한 연주회에 갔다. 하이든의 <가상칠언>을 연주했는데, 시인 수녀님으로 유명한 분의 <가상칠언> 묵상 시를 각 악장 사이에 낭독했다. 연주를 마치고 그 수녀님을 무대로 모셨다. 조용히 인사만 하고 들어가실 줄 알았는데, 수녀님이 마이크를 잡으셨다. “연주를 듣는 중에 왠지 이런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라고 하시며 갑자기 가지고 나오신 책을 펴셨다. 그분이 지으신 책이었다. 수녀님은 그 중에서 시 하나를 낭독하셨다. 그런데 박수가 나오자마자 “시에도 앙코르가 있다고 생각하고 또 하나 읽겠습니다”라며 시 한 편을 더 낭독하셨다. 다시 박수가 터지자 “이 시는 제 허락도 없이 여기저기에 많이 인용되는 시라서 여러분이 좋아하는 시라고 제 마음대로 착각하고 또 한 편 더 읽겠습니다.” 그렇게 당신이 지은 세 편의 시를 연달아 읽으시고는 무대에서 내려가셨다.
처음에 나는 약간의 당황했다. 엄숙하고 경건한 그 자리에서 어떻게 그분은 그렇게 거리낌 없을 수 있을까? 내세우기보다는 물러서고 드러내기보다는 숨긴다는 것이 수녀님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나의 편견이었다. 그렇지만 그분이 무대 위에서 내뿜은 생기와 활력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무대 위의 그분은 예술가였다. 자신에게 솔직하고 충실한 그 모습에 교만이나 겸손이라는 잣대를 대는 것은 무의미했다. 70대의 그분은 현재 암으로 투병중이시다. 새삼 명예에 대한 욕심으로 자신의 시를 낭독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는 볼 수 없는 사심 없는 태도와 표정이었다.
수녀님은 젊었을 때는 코스모스 같았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이 수녀님을 보고 국화꽃이 떠오른다고 한다는 기사를 봤었다. 여전히 마음이 발그레해지는 일을 간직하는 수줍은 소녀의 감성이 느껴졌다. 그런 분인데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게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시를 드러낼 수 있었을까? 연주회보다도 수녀님의 모습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어느순간 아름다움이 그분에게 그런 용기를 준 것은 아닐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아, 그분은 자신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을 나누어주고 싶은 것이구나... 머뭇거리거나 다음을 기약하기에는 만남은 짧고 시간이 없다. 자신의 시라서가 아니라 세상에 풀어내지 않고 마음에 품고 가기에는 아쉽고 아까운 아름다움.
천여 명의 청중들이 시인 수녀님의 육성으로 시 세 편을 대가 없이 받고 갔다. 그날 나는 시인의 영혼의 비밀을 조금 엿본 듯 했다.
그런데 노출에 대한 문제는 시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연주자는 연주로, 작곡가들은 작품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그런데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혹은 거창함이라든지 위대함이라는 가치에 경도돼 웅변조로 과감히 쏟아내는 이들에 대해서는 잠시 내려놓기로 한다. 피우기보다는 활발히 누비며 획득하는 그들을 ‘식물’의 범주에 묶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쉽게 공감하거나 잘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것이 옳다. 이내 두 사람이 떠오른다. 쇼팽과 브람스가 그들이다.
쇼팽은 극심한 무대 공포증이 있었다. 그는 청중 앞에서 강한 압박감을 느꼈으며 두려움에 얼어붙었다. 그는 마음결이 지독히 섬세한 피아노의 시인이었다. 그는 아더 헤들리의 표현대로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조차 ‘닫혀진 책’과 같은 태도를 취했다. 그는 작품에 담긴 자신의 마음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밝히지 않았다. 예민한 감수성과 정교한 감각을 지닌 그는 그러나 소심한 남자로 소리없이 사라지지 않았다. 연주가 아닌 그의 속내가 담긴 작품으로 인해.
사실 나는 최근까지도 쇼팽이 불편했다. 구구절절이 호소하는 그의 음악은 늘 울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그의 음악을 들으면 감동을 받기보다는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얼마 전에 우연히 온 나라가 열광한다는, 울부짖는 창법으로 부르는 가수의 노래를 듣다가 쇼팽의 음악을 들었다. 그때 비로소 쇼팽이 얼마나 격조 있게 우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마음결을 스치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천지를 진동하듯 포효하는 것이 아니. 만약 그가 끝내 울음을 삼키고 삶을 마감했으면 어쩔 뻔 했을까...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
한편 브람스는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였다. 조금이라도 부족하다 싶은 것에 대해서는 절대로 섣불리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밖으로 내보이기보다는 안으로 응축시키는 작곡가였다. 첫 작품을 발표하기까지 그가 얼마나 고심했는지, 또 첫 교향곡의 발표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스승의 부인인 클라라 슈만을 흠모했다. 그렇지만 경솔히 고백하지 않았다. 그리고 비워지지 않는 사랑은 작품으로 꽃피웠다.
“당신은 내 삶의 가장 아름다운 경험이요, 가장 위대한 보물이며 가장 고귀한 내용입니다.” 클라라가 70세가 넘어서야 한, 브람스의 고백이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서 아무리 품고 또 품어도, 또 응축시키고 또 응축시켜도 품을 수 없는 마음은 작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은밀하지만 끝까지 은폐시킬 수 없었던 아름다움이 담겨있는.
아름다움을 깊이 품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사실 수줍음도 많고 자기 검열도 치열하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자. 아무거나 공개하고 아무렇게나 노출하는 세상이 보이지 않는가? 쉽게 눈에 띄는 주변의 추함 앞에서 단지 눈살을 찌푸리는데 그칠 것인가,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말 것인가.
사랑은 두려움을 이긴다. 스스로에게 갇혀있는 꽃을 상상할 수 있는가,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억누르는 꽃을 상상할 수 있는가.
하여 망설이는 꽃이여, 그대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라. 마음 속 울림이 온 세상에 울리는 그때, 시끄러운 세상은 숨죽이고 바라볼 것이다.
피워라,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