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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스 서 Jul 25. 2016

당신은 내 운명

음악 에세이 24 - 운명은 이렇게 준비된다.


“감사할 것 없다. 만나야 해서 만난 거야.”


선생님께서는 표정의 변화도 없이 이렇게 대답하셨다. 가르침에 감사하다고 인사드린 것이 무안해졌다. 갑자기 나 자신이 마치 입에 발린 말이라도 한 것 같이 느껴졌다. 다음 말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몰라 말을 고르는 사이에 선생님께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셨다.


선생님께 감사함도 표현하지 못하나 싶어 서운했지만 이후에 선생님의 대답을 곱씹어봤다. 흔들림 없었던 선생님의 얼굴과 어조는 오히려 이 만남이 우연이 아님을 확신케 했다. 몇 마디 말로 정리될 수 없는 만남.


   

선생님과의 첫 만남을 기억한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음악에 대한 새로운 배움의 열망이 커지고 있었던 때였다. 아주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연주를 위해 처음에 부탁바이올린 연주자가 다른 연주자를 소개해줬다. 그녀는 바이올린을, 나는 피아노를 연주했다. 연주를 앞두고 그녀가 자신이 배우는 선생님께 한 번 가자고 했다. 그렇게 밤 10시 경에 선생님 댁으로 갔다.


나는 레슨 후에 밖으로 나와 자정이 넘은 시간에 본 밤풍경을 잊지 못한다. 레슨을 받기 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한밤이 마치 대낮 같았다. 그렇게 맑고 환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께서는 제도권 교육에서 벗어나서 오랜 시간 독학으로 음악 공부를 하셨다. 한국말로 제대로 번역된 음악사 책 한 권 없던 시절이었다. 어느 시기가 지나자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찾아왔다. 그렇게 찾아온 이들에게 아낌없이 당신이 아는 것들을 가르쳐주셨다. 힘들게 얻은 것을 쉽게 알려줄 수 있는 것 자체가 그분께 보람과 보상이 된다는 것을 제자들은 배우는 동안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음악과 삶과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늘 강조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을 바꾸기 위해서는 나를 바꾸어야 하고, 좋은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야만 했다.


연주자들이 항상 고민하는 문제인, 무대에 나가서 ‘왜 내가 갑자기 이럴까?’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바로 그것이 내 본 모습이니까.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것을 알기 위해서 음악을 하고 무대에 서는 것이라고 하셨다. 진실한 인간의 모습과 소리를 보여주고 들려주기 위해서.


그리고 '당신이나 나나 사실 알고 보면 다를 것 없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 그것이 음악을 통한 진정한 소통이라고 하셨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나 자신을 알아야 했다. 자신에 대한 환상을 깨야 했다. 내가 나라고 믿고 싶은 나와 실제의 나.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은 가차 없었고 가혹하게까지 느껴졌다. 지금의 나를 형성한 것은 지난 시간의 배움이다. 그것을 되짚어가며 좋은 것과 버려야 할 것, 보완할 것을 점검해야 했다. 현재 나의 문제는 과거가 답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또 한 분의 잊지 못할 선생님이 계신다. 초등학생 때부터 내게 음악을 가르치신 선생님이다. 철학과 음악을 함께 공부하신 선생님의 학생들 대부분이 고등학생이었는데 예외적으로 나는 그분께 초등학생 때부터 배울 수 있었다. 워낙에 엄격하신 분으로 소문이 자자했는데, 나에게만은 너무 어려서부터 가르치셔서인지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부어주셨다.


그것은 내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음악을 전공하는 다른 학생들과는 상당히 다르게 대하셨다. 연습 점검하거나 기술적인 측면을 알려주시기보다는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 철학적인 고민, 음악에 대한 애정을 계속해서 심어주셨다.


레슨 풍경은 이러했다. 선생님 댁의 피아노 방에 앉아서 피아노를 치면 선생님께서는 거실 의자에 앉아 파이프 담배를 피우시며 들으셨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동안 대개는 노래를 따라 부르셨다. 연주가 끝나면 피아노 방으로 와서 음악의 큰 선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음악과 철학에 대해 논하셨다. 악보에는 독일어, 영어, 한문 등으로 아름다움의 개념에 대한 문장이 채워졌다.


지금 봐도 어려운 내용들이지만 음악과 학문에 대해 한결같은 열정으로 말씀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에서 나는 음악을 한다는 것이 대단한 일이구나라는 것을 어려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의 레슨은 한 마디로 음악의 아름다움을 철학적으로 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입시 레슨과는 전혀 동떨어진 이러한 레슨을 받은 결과, 나는 대학교에 들어가서 스케일을 제대로 못 치는 피아노 전공생이 된 것이었다! 작품 위주로만 배웠지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거의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운지법, 페달, 테크닉, 자세 등을 혼자서 터득해야 했던 나는 그 후로 오랜 시간 고생을 해야 했다. 머리를 손이 못 따라 가고, 마음이 음으로 표현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선생님을 만났던 것은 지금도 내게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평생 추구해야 할 가치를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따라갈 수 없었던 수많은 이들이 스스로 음악의 길을 포기했다. 헤매도 음악 안에서 헤매야 한다는 신념이 없었다면 나 역시 지금까지 음악을 계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포기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 많고 해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이기 때문에 그 한 가지를 붙잡는 것이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방황이 끝나고 나이가 들면 드디어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때는 몸이 안 된다. 그래서 나이 든 사람이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너만 받으라고 가르치는 것 아니다. 배운 것 남김없이 후배와 학생들에게 전해주어라. 인류의 진보는 이렇게 이루어지는 거다.”


운명은 이렇게 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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