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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스 서 Nov 12. 2017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와  첼로 소나타

음악에세이28 - "나는 오직 나의 음악으로 말합니다."

보수냐 진보냐, 그것이 문제로다.         

  

애매모호와 우유부단은 비단 브람스만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그를 평가하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브람스는 과연 보수주의자인가, 아니면 진보주의자인가? 그의 색깔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브람스는 그가 활동하던 낭만주의 시대에 전통을 고수한 보수주의의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됐지만, 한편으로는 20세기에 와서 대담한 화성적 전환·다양한 리듬 구조·발전적 변주 기법 등의 특징으로 쇤베르크에 의해 ‘진보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쉽게 결론 나지 않는 이 문제 앞에서 많은 이들은 ‘고전적 낭만주의자’라고 평하며 중도적 입장을 취한다.     


그런데 내면에 수많은 대립과 모순을 품고 있던, 과묵하고 신중했던 브람스는 자신을 둘러싼 무수한 오해와 입장 표명의 요구 앞에서 무어라 말했던가?      


“나는 오직 나의 음악으로 말합니다.”     


그가 평생 가슴에 품었던 클라라 슈만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이다. 클라라 슈만조차도 브람스가 평생 낯선 사람 같았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그의 음악을 들을 때 비로소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을 듣고는 어떤 이도 자신만큼 이 소나타에서 황홀하고도 슬픈 느낌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 소나타를 자신의 음악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브람스에게 편지했다.     


내향적인 브람스에게 소수의 인원이 깊게 소통하는 실내악은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중요한 통로였다. 브람스는 극음악이나 교향시 등의 표제적인 작품이 아닌 음악으로 음악을 말하는 절대 음악, 그중에서도 전통적인 구조의 실내악 작곡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실내악 작품을 통해 음악의 다양한 표현 가능성을 실험·확장·개혁했다. 평생 동안 브람스의 창작의 중심에는 실내악 연주와 작곡이 놓여있었는데, 그가 남긴 지극히 완성도 높은 실내악 작품들은 심원하면서도 서정적인 그의 내면의 정수를 드러낸다.      


브람스는 특히 피아노가 포함된 실내악을 선호했는데, 20여 곡의 실내악곡 중에서 피아노가 포함된 실내악은 16곡에 달한다. 이 중에서 브람스는 모두 7곡의 독주 악기와 피아노를 위한 이중주 소나타를 작곡했다. 첼로 소나타 32곡과 바이올린 소나타 3곡, 그리고 클라리넷 소나타 2곡(이 두 소나타는 브람스가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로도 편곡했다)이 그것이다.      


브람스의 독주 악기와 피아노를 위한 첫 2중주 소나타는 첼로 소나타이다. 깊이와 무게가 있는 첼로의 음색은 그의 성격과 상당히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작품 발표에 매우 신중했던 브람스는 오직 두 개의 첼로 소나타만을 남겼다. 소나타 제1번은 Op.38은 1862-1865년에 작곡했고, 소나타 제2번은 Op.99는 1886년에 작곡했다. 무려 21년이라는 간격을 두고 작곡한 두 개의 소나타는 악장수와 분위기, 표현 방식 등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각각의 성격의 특징이 뚜렷한 두 개의 첼로 소나타는 베토벤 이후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첼로 소나타로 평가받으며 깊은 사랑을 받고 있다.      


세 곡의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두 곡의 첼로 소나타와 마찬가지로 그 수가 매우 적다. 그렇지만 교향곡 2곡과 바이올린 협주곡 1곡, 그리고 10곡의 실내악을 작곡한 이후인 1879년, 그의 나이 46세 때 첫 바이올린 소나타를 발표한 만큼 세 곡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모두 내면적 원숙미가 뛰어나다. 실제로 브람스가 작곡했던 바이올린 소나타는 몇 곡 더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엄격한 브람스의 자기비판 과정을 거치고 살아남은 소나타는 오직 Op.78·Op.100·Op.108뿐이다.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가 그러하듯이 이 세 곡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베토벤의 거대한 기념비의 그늘에 가려지지 않는, 위대한 작품으로 빛나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립되는 요소를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던 브람스. 그의 음악에서는 모순조차도 하나로 통합된다. 그리하여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전통적인 요소와 실험적인 요소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융합되어 새로운 조화를 이룬다. 그는 전통적인 형식을 지속적으로 계승하면서 그 틀 안에서 독창적인 음악 어법을 발전시켜나갔다. 음악적 유산인 형식을 새롭게 발전시키기보다는 내용을 새롭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의 핵심적인 작곡기법은 한 악장이나 또는 한 작품을 아주 단편적인 주제 동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작품 전체에 다양한 형태로 변형, 발전시켜나가면서 작품을 불가분의 유기체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특별히 내적인 성격의 실내악은 그의 성향과 일치했다. 이 장르를 중심으로 브람스는 작곡 가법을 다양하게 실험하고 발전시켜 그의 전 작품에 사용함으로써 자신만의 고유한 음악 언어를 창조했다.          







브람스의 삶과 음악에는 두 가지 모티브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베토벤과 클라라 슈만이었다. ‘어떻게 하라고’ 거인 베토벤이었고, ‘어떻게 할 수 없게’ 스승의 부인 클라라 슈만이었다. ‘하필이면’ 브람스 앞에서.      



그렇지만 이 두 모티브는 결국 그의 삶을 이끌고 가는 동력이 되었다. 그의 앞에 벽과 같이 버티고 있는 거인 때문에 그는 오히려 위대해졌고, 손 닿을 수 없는 별로 인해 더욱 깊어지고 간절해졌다.     



오늘 우리 앞에는 자신을 뛰어넘게 만드는 거대한 벽이 있는가? 우리 안에는 죽을 때까지 품을만한 고귀한 가치가 있는가? 브람스의 삶과 음악이 우리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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