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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스 서 Mar 13. 2018

가야 하는 길

음악에세이30 - “나는 그려야만 하오.”

몇 년 만의 만남이었다. 결혼을 며칠 앞둔 후배여서 결혼 이야기와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대화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문득 그날 아침에 가방 속에 넣어둔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대화의 방향이 정확히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꺼내 들고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튼 그려야하겠다고 말하지 않았소. 이건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노릇이오. 사람이 물에 빠지면 헤엄을 잘치고 못 치는 건 문제가 될 수 없지 않소. 물에서 어떻게 하든지 빠져나오거나 그렇지 않으면 빠져죽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는 법이 아니겠소.”      


서머셋 모옴의 소설 <달과 6펜스>에 나오는 구절이었다. 시작은 내가 했지만 후배가 이내 다음 구절을 이어갔다. 소름이 끼친다고 말하면서. 내가 읽고 있던 구절은 그녀가 고등학생 시절에 깊이 감명 받아 교실 칠판에 적어놓았던 문장이라고 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찰스 스트릭랜드는 성공적인 주식 중개인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다. 누구보다도 평범했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간다. 오직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나’는 일탈한 그를 다시 일상의 궤도로 끌어오기 위해 그를 찾아간다.      


“나는 그려야만 하오.”      


그는 되풀이해서 말했다.      


“만약 당신이 삼류 화가 이상은 되지 못한다고 해봅시다. 그래도 그걸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솔직히 다른 일 같으면 특별히 뛰어나지 않아도 상관없지요. 그저 평범한 정도라도 안락하게 살 수 있겠지요. 하지만 예술가의 경우는 그와는 다릅니다.”      


“이런 바보 같은 소리!”      


“아니, 명백한 이야기를 하는데 뭐가 바보 같단 말입니까?”      


그리고 이에 대한 대답이 이 앞에서 나와 후배를 다시 강하게 맺어준 스트릭랜드의 고백이다.


글을 곧잘 쓰던 후배는 독특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타고난 재능으로 물위에서 쉽게 유영하는 듯 보였던 그녀는 한동안 전혀 글을 쓰지 못했다고 했다. 나 역시 글이란 손끝에서 저절로 나오는 것이라고 믿었던 시기도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건 언제든 안전한 뭍으로 올라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 되면 안 써도 그만이었다. 그러다가 앞으로 계속 쓰든지 말든지 결정해야 했던 때, 단 한 문장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방 안에서 말 그대로 굴렀다. 망망대해가 따로 없었다. 못 떠오르면 익사하겠구나 싶었다. 그때의 나처럼 그녀는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깊은 물에 빠졌음을 직감했다.      


몇 년 전 연말에, 한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었다. 새 해를 이틀 앞둔 한 해의 마지막 주말의 토요일이었다. 세상이 온통 들썩이는 가운데 연주회장은 고요했다.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된 방음시설 때문만은 아니었다. 연주자가 만드는 공간이 그러했다. 그의 연주를 들으며 그가 도를 닦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휴식 시간에 팸플릿을 펼쳤다. 그의 일상에 대한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사실 비참할 정도로 연습에만 매달려 산다. 만약에 내가 세상의 재미들을 하나 둘씩 알기 시작하면 더 이상 이 일을 못할 것 같아서다. 연습실에서만 사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지난 가을, 형이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자고 했다. 형이랑 자전거를 탔던 날, 진짜 너무 좋은 거다. 세상에 이렇게 재밌게 살 수도 있구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기분 좋은 와중에서 덜컥 겁이 났다. 이런 재미를 알기 시작하면 지금처럼 피아노는 못 치겠구나 싶어서였다. 결국 그날 이후 자전거 타기는 바로 중단했다.” 연습을 위해 재미와 담을 쌓았다는 한 피아니스트의 고백이다.      


그는 세상의 재미를 알고 싶지 않은 것이다. 최선의 가장 큰 적인 차선을 차단하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어느 때보다도 열린 태도와 세상과의 소통이 강조되는 요즘, 그의 이러한 태도는 꽉 막힌 듯 보일 수도 있다. 고집스러운 자기주장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말을 하는 그가 신선했다. 세상과의 타협을 합리화하는 것을 너무 쉽게 보는 까닭이다. 연주자의 철학은 말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연주로 설득된다. 그래서 연주자의 경우에는 말이 먼저가 아니라 음악이 먼저다. 그의 음악과 말이 일치할 때, 흔히 말하지만 드물게 보는 진정성이 드러난다.      





누구든지 아무도 못 말리는 무엇 때문에 산다고 한다. 그리기 위해, 연주를 위해 그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무튼, 어찌할 도리가 없다. 프로스트가 <가지 않은 길>에서 노래했듯, 두 갈래 길 앞에서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하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이다. “먼 훗날, 어디에선가 한숨 쉬며 말”하게 될지라도. 한 길을 걷는 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가야 할 그 길을 본다. 그의 앞에 얼마나 많은 길이 펼쳐져 있든, 그 한 길이 그에게는 유일하게 살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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