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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스 서 Jun 17. 2023

길 위에 음악이 있다.

음악에세이31 - "나는 하나의 페르마타로 길 위에 존재했다."

2017년 봄에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베네치아에서 한 달간 머물렀다. 베네치아의 한 동네를 산책하다 이정표를 보니 ‘via G. Verdi’였다. 작곡가 베르디가 방향을 지시하는 곳이라니... 신기하다. 조금 더 걷다보니 이번에는 ‘via Respighi’라고 쓰인 이정표가 보인다. 레스피기 방향으로 걷는 기분이 낭만적이다. 

     

볼 때마다 즐거운 것은 정류장에 쓰인 ‘Fermata’이다. 페르마타는 음악 용어 아닌가! 음악에서 잠시 멈추었다 가라는 지시표. 이곳에는 페르마타 표지판 앞에 발걸음을 멈춘 사람들이 있다. 달리는 버스는 페르마타에서 가던 길을 잠시 멈춘다. 음악적인 지시와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도시가 신선하다.     


어느 토요일 저녁, 특별한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산 마르코 광장 주변을 거닐고 있었다. 지나가다 보니 산타 마리아 델라 피에타 성당에서 그날 밤 연주회가 있었다. 연주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표를 사고 산책을 계속했다. 부드러운 회색빛과 황금빛 노을로 물들고 있는 도시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걷다 보니 어느덧 연주시간이었다. 


비발디 연주에 서서히 빠져들며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2년 전에 우연히 들른 이 성당이 비발디가 활동했던 성당인 것을 알고 가슴 벅찼던 기억이 났다. 그때도 연주회가 있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 아쉽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번에 베네치아에 오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장소 중 하나가 피에타 오스페달레 성당이었다. 2년 전에 공사가 한창이었으니 이제는 공사가 다 끝났으리라 생각하고 왔던 나는, 이 도시의 템포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던가.       


변화가 극도로 빠른 한국에서는 10년 정도가 지나면 건물 자체가 없어지는 일이 다반사다. 20년 전에 보던 건물이 다른 건물로 바뀌어서 어리둥절한 적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10년 전에 다니던 건물이 없어지고 새 건물을 짓기 위한 터를 닦는 것을 보았다.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하는 서울이라는 공간의 특수성도 이러한 현상의 이유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기억보다 공간이 빠르게 사라지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가쁜 호흡으로 바쁘게 살다 그곳에 가니 기다리고 멈추는 문화가 처음에는 낯설었다. 사람이 먼저 지나가도록 차가 기다려주다니. 서울에서는 차가 빨리 지나가도록 사람이 얼른 길을 내주었었는데. 버스를 타는 일은 계속 달리는 버스에 사람이 거의 뛰어 올라타는 격이다. 무슨 일이든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혼자 도태된다.     


연주가 끝나고 긴 상념에 빠진 상태로 산마르코 광장으로 걸어갔다. 광장은 카페 세 곳에서 연주되는 음악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광장 바닥에 그대로 앉았다. 한참을 그렇게 머물러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하나의 페르마타로 길 위에 존재했다.      



베네치아에서의 마지막 날, 레지던스 프로그램 작가들과 함께 보트를 탔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바람과 물결을 가르며 베네치아를 즐기다 근처의 작은 섬 체르토자에 들렀다. 예정에 없던 쉼표였다. 한적한 체르토자에는 작은 리조트 호텔이 있었다. 일행이 음료를 사는 동안 홀에 있는 피아노에 시선이 멈추었다. 피아노 위에는 악보가 놓여 있었다.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의 프렐류드 1번 C장조였다. 이 작품은 베네치아 전시회에서 내 글과 함께 음악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서 펼쳐놓았던 바로 그 곡이었다.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바흐의 프렐류드를 시작으로 몇 곡을 더 연주했다. 그 자리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긴 꿈같던 베네치아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한국의 한 항공사 비행기에 올랐다. 좌석에 앉자마자 곧 음악이 나왔다. 기내에 베토벤, 모차르트, 바흐의 곡들이 울려 퍼졌다. 전혀 낯선 소리 같이 들렸다. 거의 평생을 클래식 음악 속에서 살았는데 이런 이질적인 느낌이라니... 그러고 보니 내가 음악을 전공했다고 하니까 베네치아에서 만난 한 이탈리아인이 동양음악을 전공했냐고 물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 서양음악을 전공했다고 대답하면서 느꼈던 갑작스러운 어색함과 이 생경함이 연결돼 있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베네치아에서는 연주회장을 찾아가거나 노천카페, 혹은 거리에서 음악가들이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클래식 음악을 들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한국에 오르는 길부터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새삼스러웠다. 호숫가를 산책하는데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며, 지하철역의 화장실에서는 모차르트의 교향곡이 힘차게 연주되고 있었다. 또한 대학 도서관의 넓은 로비는 비발디의 사계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뿐인가. 아침 출근길 빽빽한 버스에 틀어놓은 클래식 라디오는 경직된 공간을 한결 느긋하게 풀어놓았으며, 지하철역 지하상가의 한 꽃집에서 흘러나오는 화사한 바이올린 협주곡은 생기 있는 꽃들과 함께 공간에 생동감을 더했다. 언젠가는 한 국밥집에 갔는데 음악 감상실을 연상시킬 만큼 베토벤의 교향곡이 크게 울리고 있어서 슬며시 웃음 지은 적도 있다.      





어느덧 한국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일상의 자연스러운 배경음악이 되고 있는 듯하다. 옛날 유럽의 음악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음악처럼 말이다.      


늘 듣고 있었지만 잠시 떠나 있기 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격식을 갖춰 음악회장을 찾지 않아도 클래식 음악은 많은 순간 우리 길에 동행 하고 있었다. 한국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오니까 비로소 클래식을 많이 듣게 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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