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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실물보관소 Mar 07. 2023

2. 자신감 아니, 자만심

단지, 니어링 부부처럼 조화로운 삶을 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서울에서 모든 것을 처분했다. 마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그리고 이번에는 홀로 떠났다. 아무 연고도 없는 전라북도 장수에서 살 집을 구했다.

3년 동안 비어 있던 폐가였는데, 그 집을 직접 수리했다.



뭘 믿고 그래 겁이 없나?     

20대 처음으로 배낭여행을 갈 때 가이드북도 없이 아무것도 모르고, 혼자 인도로 떠났다.

가장 저렴한 항공권을 달라해서 갔는데...

여행사에선 설명을 자세히 해줬지만, 내가 흘려들었나 보다.     

인도가 아닌 네팔에 도착했다. 때는 어두컴컴한 밤...     

치안이 안 좋은 나라는 밤에 도착하면, 공항에서 아침이 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카트만두 공항 의자에 앉아 멍 때리는데, 공항 close time이라고 나가란다.     

시골 기차역만 한 공항.

당황스럽게 쫓겨 나왔는데... 까만 얼굴 수십구가 나를 둘러싸고, 웅성 인다...

그렇게 내 첫 배낭여행은 시작됐다.

수십 배의 택시비를 물고, 몇 배의 호텔비로 첫 밤을 보내고, 가장 먼저 한 일이 게스트하우스를 돌아다니며 한국사람을 찾는 거였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즐거운 추억이 될 수 있었다.

내 지난 추억 속에 주인공들에게 고맙다. 그중에 몇몇은 아직도 주변에 남아있음에도...      

조립 컴퓨터가 유행하던 시절.

컴퓨터도 하나도 모르면서, 인터넷으로 조립방법을 보니, 대략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용산으로 달려가서 적어간 부품을 다 사 왔고, 용감히 조립을 감행했다.

결국, 조립을 했는데도 컴퓨터가 켜지지 않아, 무거운 본체를 들고 지하철을 몇 번이나 갈아타서, 전문가의 손길을 기다려야 했다.  

일단, 저질러 놓고 문제가 생기면 최선을 다해 수습한다. 이것이 방식이라면 방식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좀 더 꼼꼼해지긴 하지만, 아직도 버릇은 못 고쳤다.     

귀촌도 그렇게... 아내와 생후 4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시작했다.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고, 시골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으니 용감할 수 있었나 보다.

뭐~ 인생을 대략 이렇게 일단 부딪치고 풀어나가는 식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을 수밖에...


시골 생활은 그렇게, 일단 부딪쳐서 풀어보는 내 특유의 저돌성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시골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즐기지 못했다.  

공기 좋은 곳에서 살면 다 나을 줄 알았던 아내의 한포진은 쉽게 낫지 않았고,

우리가 사는 마을에서 제일 젊은 사람이 60대이다 보니,  주변에 말벗할 친구가 없었다.

그건 자라날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젊으니까, 외국도 아니고 시골에서도 뭐든 해서 먹고살 수 있지만, 그러려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니까.


게다가, 시골은 '꿈에 그리던 자연 속의 생활'이 아니라, '체험 삶의 현장'이란 문구가 더 어울리는 곳이었다.  

단지, 니어링 부부처럼 조화로운 삶을 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리고, 난 어디로 가든, 누구와 함께 하든, 잘 살아낼 자신감 아니,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마음가짐이 장애가 되어서, 나는 그곳에 뿌리내리지 못했나 보다.


시골의 허름한 폐가를 고쳐서 살았고, 어린아이들이 있었고, 집에서 쥐가 나왔고, 여름에 덥고 겨울엔 추웠고, 아내가 한포진을 앓고 있었고, 기타 많은 이유 때문에....  

내 집에 대한 욕구만 커져갔고, 집을 짓는 것에 대한 연구는 매일 밤 인터넷을 통해서 했다.

간과한 게 있었다면, 직접 짓는 현장을 가본다거나, 사람을 만난다거나... 등의 실제적인 경험은 할 수 없었다. 어린아이와 아내만 남기고 출타를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렇게 인터넷만 보고 내 집을 지을 결심을 했다.


집을 지으려면 우선 내 땅이 필요했다.

검색창에 '초등학교 옆 땅'이라고 쳤다.

아이들은 커갈 것이고, 시골에서 아이들을 차로 통학시키는 일은 생각만 해도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터넷을 통해서 알게 된 땅이 지금 우리 집터다.

거의 4년간의 깡촌생활을 접고, 그래도 도시와 가까운 지금의 시골로 이주한 셈이다.


1년 6개월 만에... 아니, 이 세계의 시간이란 개념으로 따지기 힘든,

내 얼굴이, 내 몸이 10년은 늙어버린 -주관적이지만은 않은- 긴 시간이 지나서... 우리 집은 완성이 되었다.

이 집에 사는 소소한 느낌이라면 안도감 그리고 충만감.


아내가 이유도 모른 채 8년간 앓던 한포진이 나았다는 것.이다.

아내가 잠깐씩 행복하다는 사실을 잊을 때쯤.

상기시켜준다.

"아픈 거 나았는데, 우리가 왜 웃지 못하는 거지? "


마을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

이 집과 저 집을 마치, 자기 집인 양 천연스레 드나들며, 뛰노는 아이들의 너무나 즐거운 모습.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실컷 뛰어놀고도 내일은  뭐하고 놀지? 한다.

아이들이 부럽다. 다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신이 꿈꾸는 어떤 곳을 가든... 당신이 꿈꾸는 누구를 만나든...

양이 있는 곳에, 음이 있고. 선이 있는 곳에 악도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란 곳은 그렇고 그런 게 모두 다 섞여 있는데, 

좋은 것만 취하기 위한 노력은 어리석은 것인지도 모른다.


단지, 내게 속한 세상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아름답게 꾸밀 것인지 생각한다면 

지금 이곳, 내 안에 실마리는 있다.


"나의 모든 잘못을 다 감싸준, 나의 동네에 올해 들어 처음 내린 비"- 김현철의 동네


한 인간이 자라는 동안 얼마나 수많은 잘못과 실수를 하며 성장하는가.

그 많은 실수와 잘못도 따듯한 마음으로 안아줄 그런 아빠, 혹은 동네 아저씨가 되고 싶다.


나는 예전보다

힘든 일을 더 하고,  좀 적게 벌지만.

앞으로 또 어떤 충동을 받아, 어떤 길을 선택할지 알 수 없지만.

소소한 일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았으니까.


사랑합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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