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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꼼지 Aug 30. 2022

이별의 맥주가 변신하던 순간

  만나던 사람과 헤어지고 일주일 후, 나는 소개팅 자리에 앉아있었다. 헤어진 지 열흘도 되지 않아 소개팅을 하는 건 배신인가? 잠시 생각하다가 환승이별도 하는 마당에 배신은 무슨, 하며 생각을 떨쳐냈다. 하지만 “주말에는 주로 뭐하세요?”라는 질문에 결국 헤어진 사람을 떠올리고야 말았다. 지난 주말에 나는 이별을 하고 있었으니까.


  하필 토요일 아침에 헤어지는 바람에 주말을 고스란히 집에서 보내야 했다. 첫 애인과 헤어졌을 때처럼 밥을 굶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 수는 없었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으니까. 이별의 아픔을 속으로만 삭이느라 위경련이 왔다. 꼬박 이틀동안 앓는 내게 엄마가 물었다. 무슨 일 있냐.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헤어졌다고 말했다. 엄마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네 나이가 이제 내일모레 마흔인데...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첫 출근을 하는 지하철에서 조금 울었다. 주말동안 미뤄두었던 이별의 슬픔에 한껏 빠져있고 싶었지만 맞은편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서둘러 눈물을 닦았다. 휴대폰의 친구목록을 살폈다. 그의 부재로 비어버린 시간들을 어떻게든 잘  견뎌야 했다. 하지만 사라져버린 애인을 대신해 나를 만나줄 사람이 없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결혼을 해서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엔 아이를 돌보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 친구들에게 나의 별을 위로해달라 부탁할 염치가 없었다.


  직장동료들에게 SOS를 보냈다.

 “나 헤어졌다! 술 먹으러 가자!”    

  얼음맥주를 판다는 이자카야에서 이별을 안주삼아 맥주를 들이켰다. 한여름의 해는 길어서 알딸딸해질 때까지 맥주를 마셔도 바깥은 여전히 밝았다.


  그런데 누군가 창밖에서 유리창을 톡톡 두드렸다. 내가 이별 소식을 타전하며 술 마시고 꼬셨던 또 다른 동료였다. 다른 약속이 있어서 오늘은 함께 할 수 없다더니 우리와 같은 건물의 카페에서 친한 형을 만나고 있었다고 했다. 


  화장실에 가다가 우리를 발견했다그는 내 옆에 슬쩍 엉덩이를 걸치더니 말했다.

  “누나, 나 지금 같이 있는 형이랑 소개팅할래요?”

  소개팅?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만나던 사람과 헤어졌으니 언젠가는 소개팅의 세계로 돌아가할 것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남자와 파스타를 먹으며 로의 취미를 물어야하는 그 세계로.


  하지만 선뜻 그러겠다고 할 순 없었다. 명색이 이별을 애도하기 위해 모인 자리이지 않은가. 게다가 나의 술친구들이 이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리 나이가 꽉 차다 못 해 넘쳤어도 너무 급해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었다. 형이 몹시 잘 생겼다고 꼬드기는 그를 쫓아냈다. 


  그런데 내 앞에 앉아있는 두 여자의 눈이 반짝였다.

  “언니. 여기로 오라고 해요.”

  “언니. 잘 생겼다잖아요. 만나나봐요.”     

   나의 동료들은 “진짜 잘 생겼는지 보고 오자!”하더니 낼름 팔짱을 끼고 술집을 나가버렸다. 저들이 저렇게 대담한 인물들이었던가. 역시 술이 문제다.


  잠시 후 돌아온 그들은 그가 제법 훈훈하니 만나보는 게 좋겠다고, 그들이 우리의 술자리에 합류할 예정이라고 했다. 무슨 짓을 하고 온거냐는 나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왠지 그들은 몹시 신나있었다.


  결국 나는 이별의 맥주를 마시던 자리에서 낯선 남자와 합석을 하게 됐다. 그렇게 함께 앉아서 무엇을 했냐하면 또, 맥주를 마셨다. 다행히 소주가 아니라 맥주를 마시고 있었기에 심하게 취하지 않았고, 처음 보는 남자 앞에서 나의 이별 이야기를 들먹이는 대참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첫눈에 반했다거나 마음이 들썩인다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그냥 아무말이나 하면서 실컷 놀다 헤어졌다. 그게 다였다.


  그런데 술자리에서 만났던 남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둘이 제대로 다시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헤어진지 일주일만에 소개팅이 성사됐다. 이별 후유증으로 탈이 나버린 뱃속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으므로 소개팅에서 나는 음식을 반도 못 먹고 남겼다. 하지만 그는 나를 마음에 들어했고, 나 역시 그가 괜찮아보였다. 몇 번을 더 만나다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이별 3주만의 일이었다.


  대치않게 시작된 연애는 좋았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어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나는 종종 내가 싫었다. 그토록 좋아하던 사람과 헤어진지 한달도 되지 않아 또 다른 남자와 손을 잡고 다니는 게 맞는걸까.


  처음으로 둘이 야구장에 갔던 날, 나는 야구를 보며 나의 연애를 반성하고 있었다. 불과 한달 전만 해도 반대편에서 다른 남자와 SK를 응원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 남자와 기아를 응원하고 있구나. 나는 대책없는 금사빠인가, 아니면 전에 만나던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이토록 가벼웠던 것인가.


  한동안 나를 혼란스럽게 하던 질문의 답은 알랭 드 보통의 책에서 찾았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랑에 빠지는 일이 이렇게 빨리 일어나는 것은 아마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에 선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별의 맥주를 마시던 순간이 새로운 만남의 순간으로 변신하게 된 것 역시 그 때문이었던것 같다. 헤어져서 슬픈 만큼 다른 누군가를 만나 빨리 사랑해버리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어쩌면 빨리 사랑할만한 사람을 만나 빨리 결혼하고 싶었던 나의 마음이 그를 불러들인건지도 모른다. 


  가끔 결혼하지 않은 동생들이 묻는다. 결혼할 사람을 만나면 딱 이 사람이라는 느낌이 오냐. 정말로 종소리 같은 것이 울리냐.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내가 이별의 맥주를 마시던 자리에서 만난 남자이자 지금의 남편은 운명의 종소리 대신 술집 출입문의 종소리를 울리며 나타났다. 다만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흘러 넘치던 순간에 내 눈앞에 나타나줬으니 그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일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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