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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꼼지 Sep 01. 2022

김밥 설렘 주의보

  스물다섯에 들어간 첫 직장에서 열두살 많은 사수를 만났다. 사수는 다정했다. "너는 들어가서 눈 좀 붙여."라는 말에 밤샘작업을 하는 선배들을 뒤로 한 채 아침까지 자고 나올 정도로 뭘 잘 모르던 나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사수가 자신의 결혼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섭외했던 미술가와 사랑에 빠졌고, 4년동안 뜨겁게 연애한 후 서른넷에 결혼에 골인했다는 로맨틱한 이야기였다. 허나, 나는 그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고 사수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선배. 서른넷에도 연애하면 가슴이 뛰나요?"

  사수는 내 이마에 가볍게 알밤을 먹이며 말했다.

  "얘가 서른 넘으면 사람 다 죽는 줄 아니?"

  맞아도 싸다. 다정한 사수였으니 알밤으로 끝났지, 못된 선배였으면 쌍욕을 퍼부었을지도 모를 말이었다.


  스물다섯의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이해는 된다. 그 때 나는 연애와 설렘을 포함한 핑크빛의 모든 것들이 이십대의 전유물인줄 알았다. 서른이 넘으면 뭔가 더 노련하고, 능숙한 어른의 세계에서 살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사수의 나이가 될 때까지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고, 울며불며 살 줄 알았더라면 그런 질문은 입 밖에 꺼낼 생각도 못했을 거다.


  살아보니 사수의 말은 사실이었다. 서른이 넘은 후에도 누군가를 만나면 꾸준히 마음이 뚝딱거렸다. 남편과 연애를 시작하던 서른여섯의 여름에도 나의 마음은 허공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와 함께 처음 교외로 놀러가던 날, 김밥을 싸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설레는 음식이 김밥 아닌가.

평소에는 엄마 밥만 얻어먹던 주제에 김밥 재료를 잔뜩 사들고 들어가 주방에서 설치자 엄마가 갑자기 왠 김밥이냐고 물었다.

  "나, 남자친구랑 놀러갈라고."

  "무슨 남자친구? 헤어졌다며."

  "새로 생겼어."

  "정마알?"

  말 끝을 길게 늘이는 엄마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쌀을 씻고, 참기름과 소금과 오만 것들을 찾아 정신사납게 돌아다니는 나를 따라다니며 엄마가 물었다.

  "몇 살이야? 뭐 하는 사람이야?"


  원래는 연애가 무르익을 때까지 부모님에게 꽁꽁 숨겨놓고 음흉하게 만나는 스타일이지만 왠지 이번에는 말하고 싶었다. 허나, 약속시간 전까지 김밥을 싸야한다는 부담에 대답이 건성으로 나왔다. 시원찮은 대답이 답답했던지 엄마가 내 손에서 김밥 재료들을 뺏었다. 그리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당근을 채썰고, 계란을 부치며 내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주방보조로 역할이 바뀐 내가 할 일은 엄마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하는 일이었다.


  나이 든 엄마에게 남자친구와 먹을 김밥을 몽땅 맡기는 게 민망하여 "마는 건 내가 할게."하고 김밥의 주도권을 다시 쥐어보려 했지만, 김밥을 마는 부분이야 말로 아마추어가 함부로 덤빌 일이 아니었다. 성심성의껏 말아보았으나 첫째 줄은 너무 헐렁하게 마는 바람에 속이 다 흘러나왔고, 둘째 줄은 어째선지 삼각김밥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꼴을 지켜보던 엄마가 또다시 나섰다. 김밥 발도 없이 순식간에 말아서 가지런히 썰어낸 김밥이 차곡차곡 2층 도시락에 담겼다.


  파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김밥 도시락을 열었다. 내가 쌌다고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엄마가 싸준 김밥이라고 솔직히 말했다. 남자친구는 김밥을 채 씹기도 전에 너무 맛있다며, 어머니 음식 솜씨가 최고라고 몇 번이나 칭찬을 했다. 엄마의 음식 솜씨는 자타공인 대장금을 초월하였으므로 칭찬은 당연했다.


  그가 연이어 김밥을 집어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나도 김밥 한 알을 입에 넣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맛이 없었다. 하나를 더 집어먹어보았다. 진짜 밥에서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볼이 터져라 김밥을 우겨넣는 남자친구에게 물었다.

  "김밥이 좀... 맛없지 않아?"

  하지만 그는 정답이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아니? 완전 맛있는데?"

  먹는 사람이 맛있다니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그는 2층 도시락을 가득 채운 김밥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데이트에서 돌아와 빈 도시락을 꺼내 씻으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너무 잘 먹었는데 오늘... 김밥이 좀 싱거웠어. 밥에서 아무 맛도 안 나던데?"

  그러자 엄마가 이마를 치며 말했다.

  "아이고야, 내 정신 좀 봐라. 밥에 간을 안 했다!"


  신나는 마음에 밥에 간도 안 하고 김밥을 말아준 엄마는 그날 몇 번이고 '내 정신'을 찾아대며 탄식했다. 그런 엄마를 보며 자꾸 웃음이 났다. 어머니, 드디어 딸이 시집갈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토록 신이 나셨던건가요.


  내가 다른 사람보다 좀 많이 늦게 결혼을 한 건 사실이다. 요즘 사람들은 결혼을 늦게 한다던데 어째선지 내 주위 사람들은 대부분 서른둘셋이 되기 전에 결혼했다. 서른일곱에 결혼한 나는 조리원에서도, 아기 문화센터에서 만난 엄마들 사이에서도 맏언니였다. 이렇게 결혼이 늦어지는동안 다양한 심경의 변화를 경험했다. 내 짝은 어디에 처박혀서 나타나지 않느냐며 분노하기도 했고, 이번 생에는 결혼하지 못 할 것 같다며 우울해하기도 했다. 언젠간 하겠지,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하면서 나 스스로를 받아들이게 된 건 서른다섯을 넘길 때 즈음이었고 그제서야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하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았나보다. "능력있으면 혼자 살아도 되지!"라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종종 얼토당토 않은 선자리를 들고 옴으로써 불안을 표현했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 괜찮으려나 했으나 독립한 친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교수까지 하고 있는 한 친구는 외국인 남자친구와 오랫동안 연애중인데, 엄마가 유럽까지 날아가 남자친구를 붙잡고 "결혼은 언제 할 거냐"며 다그치셨다고 했다. 부모들에게 있어서 자녀의 결혼이 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 부모들을 안달하게 만드는 걸까. 내 새끼가 혼자 늙어갈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아니면 결혼하는 것까지 봐야 인생의 숙제를 해결했다는 느낌 때문일까.


  아직 부모의 나이까지 살아보지 않았으니 그 마음의 정체는 알 수가 없다. 나도 나중에 자식을 붙잡고 결혼은 언제 할거냐며 안달하게 되려나, 아니면 시대가 변했으니 결혼 따위야 네가 알아서 하렴, 하는 초연한 엄마가 되려나. 엄마의 마음도, 미래의 내 마음도 지금은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다. 김밥을 쌀 때 너무 설레면 안 된다. 설렘이 지나치면 맛없는 김밥이 된다. 하지만 맛없는 김밥을 만들었더라도 너무 탄식하지는 말자. 그 김밥을 먹는 사람도 설레는 경우, 김밥의 맛 같은 건 크게 상관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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